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6
지유네 집은 진해에서 손가락에 꼽는 부잣집이다. 지유 아빠 홍명덕의 아버지 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부자였다. 전쟁 때 북한군에 밀려 밀려 피난을 온 셀 수도 없는 피난민들은 당시 살 곳도, 먹을 것도 없었다. 홍명덕은 피난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장복산 아래 집을 짓고 살라며 땅을 내주었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 수 있도록 논도 내어 주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진해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진해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계속 살고 싶어 했다. 홍명덕은 한동안 고민했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토지를 피난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실지가 고민의 요지였다. 홍명덕은 고민 끝에 토지를 계속 쓰는 것을 허용했다. 양쪽 모두 계약서는 쓰지 않기로 했고 대신 피난민들은 홍명덕의 논에서 소작을 하기로 했다. 수확하는 곡식은 반씩 나누기로 약속했다. 처음에는 그것도 감사하다 했던 이들은 몇 대를 거치면서 집을 지었던 토지를 자신들의 소유로 등기했다. 소작을 하던 논은 절반이 아닌 3할로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홍명덕은 개의치 않았다. 재산을 유지하는 것에 큰 욕심이 없었던 것이다.
교회 가는 길에 만났던 소작농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교회의 목사는 사이비 종교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도는 늘어만 갔다. 피해자들은 점점 늘어갔다. 홍명덕의 소작농 중에도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었다. 교회가 진해에 들어온 지 삼 년이란 세월 동안 소작농들 중 절반 정도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홍명덕은 사이비 종교로 피해를 입은 소작농들에게 일 년간 수확량 전부를 그들이 가져가게끔 했다. 그래서였을까? 홍명덕의 집안은 진해에서 인덕이 높기로 자자했다.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담장 옆 돌배나무에는 동네 꼬마 녀석들이 돌배만큼이나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담을 넘어간 무화과나무와 단감나무는 꼬마 녀석들이 차지해간 지 오래였다. 간혹 지유네 형제들과 가깝게 지내는 녀석들은 담장 안에 들어와서 과일을 한 아름 따서 가져가기도 했다. 가을이면 지유네 집 정원은 풍요로운 천상 낙원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유네 형제들도 정원에서 과일을 따느라 여념이 없었다. 벌써, 따 놓은 단감이 수백 개는 넘을 것 같은데 나무에 달린 감이 더 많이 있었다. 아이들이 매달려 있는 담장 옆 돌배나무와는 달리 전문가의 손길을 탄 배나무에는 막내 머리통만 한 배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신문지로 싸놓은 배에서 나는 단내가 온 집안을 달콤하게 풍겨내고 있었다. 두 아들은 벌써 맨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배를 껍질 채로 물고 있었다. 옷의 앞섶은 단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어디서 모여든 것인지 날파리떼와 아이들이 경쟁하듯 배즙을 쪽쪽 빨아대었다.
아이들을 지켜보던 홍명덕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정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동네 꼬마 녀석들은 홍명덕과 마주치곤 부리나케 도망칠 것이 분명했다. 돌배나무만큼은 아이들에게 제공한 선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예상했던 대로 순식간에 흩어져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내일이면 또다시 몰려와 있을 아이들이다.
오후 두 시가 다 되어갈 즈음, 삼륜 트럭 한 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트럭 뒤에는 얼마 되지 않는 짐이 실려 있었다. 홍명덕의 집 뒤로는 더 이상의 인가가 없는 데다 인근에 딱히 화물차가 들어온 일이 없기에 자신의 손님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시느라 고생하셨네요. 짐은 이것밖에 없나요?”
홍명덕은 트럭의 조수석에서 내린 여인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아빠! 누구예요? 혹시 새로 오신 선생님이세요? 아니면 지행이, 지명이 유모 아줌마예요?”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돌아오던 지혜와 지숙이었다.
“안녕~ 얘들아.”
여인은 방긋 웃으며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얘들아. 들어가자.”
홍명덕은 아이들을 먼저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영태 아저씨 좀 나오시라고 해라!”
“네~ 아빠.”
잠시 후 정원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던 사십 대 사내가 지게를 가지고 나왔다. 홍명덕은 짐을 안쪽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하곤 여인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들 새엄마가 온다더니 예쁜 샥시가 왔네.”
영태 아저씨라는 사람은 여인의 뒤태를 보며 그들의 행복을 기원했다. 아이들은 아직 배나무 아래서 놀고 있었다.
“지혜야!”
“네~”
막내에게 배를 먹이던 지혜가 돌아보며 대답했다.
“애들 데리고 거실로 모여주겠니?”
“네~ 아빠!”
“한 명도 빠지지 말고 다 데리고 와. 유모도 오시라고 하고.”
홍명덕은 여인과 함께 집안으로 향했다. 여인은 집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예쁘게 꾸며진 집안 곳곳엔 여자의 손길이 가득 묻어 있었다. 일곱 아이들의 장난과 손때가 뭍은 벽과 돌들은 아기자기했다. 여인에게는 아이들의 작품이 예쁘게만 보였다.
거실에는 이미 식모가 다과를 한 상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아이들은 그 여인이 선생님이네 유모네 하면서 나름대로의 추리를 하느라 거실이 시끌벅적했다.
“얘들아. 조용조용!”
홍명덕은 번잡한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얘들아. 아빠 말 잘 들어. 이 분은 오늘부터 너희들의 엄마란다. 예쁘지? 너희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서 아빠하고 같이 살면서 너희들과 함께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기로 했어. 엄마에게 인사해라.”
아빠의 일방적인 포고는 대략 두 가지 반응을 일으켰다. 첫째, 셋째, 여섯째는 표정이 굳어버렸고 둘째, 넷째, 다섯째는 매우 좋아하는 듯 환호성을 질러댔다. 막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나 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라는 단어를 듣고는 이유 없이 좋아했다. 한 번도 의견의 불화를 일으킨 적이 없었던 지유네 집에는 처음으로 의견 대립이 생길 분위기였다. 물론 홍명덕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할 줄 알았던 지유가 반대급부에 들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 가장 큰 변수였다. 아이들에게 새엄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실 지유 때문이었다. 교회를 다녀온 후 지유는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학교에 가는 것조차 거부했었다.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더 들어가면서 홍명덕은 지유에 대한 사랑이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다. 엄마를 닮았다고만 생각했던 지유가 점점 자신을 빼다 박은 것처럼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명덕은 지유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토록 엄마를 원했던 지유는 친엄마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뿐이었다. 홍명덕은 지유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헤아리지 못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지유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있었지만 이미 머릿속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지유는 새로 엄마의 자리를 꿰차고 온 여인이 곧 자신의 아빠를 독차지할 것이라는 불안함에 가슴이 아파왔다. 이미 결정 난 사실이라는 것도, 자신이 떼를 쓴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막내는 뭣도 모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둘째 언니와 아래 동생 지유, 지서가 새엄마를 반기는 것이 못마땅했다.
지유와 큰언니는 저녁식사가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홍명덕은 좌불안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심기가 어지러웠다. 새엄마로 들어온 여인의 이름은 서인혜였다. 홍명덕이 근무하는 학교의 교장선생님의 소개로 마산에 있는 국민학교 교사를 소개받은 것이다. 시집가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남편이 사고로 급사해서 홀로 된 여인이었다. 홍명덕은 아이들 몰래 그녀를 만나면서 아이들에게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 지유의 교회 사건을 계기가 아니었다면 마음을 굳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인혜는 이미 양쪽 집안의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혼례 같은 절차는 생략하기로 했고 결혼 예물도, 결혼 예물도, 살림도 필요 없고 몸만 들어와서 백년해로하기로 약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