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1
봄 볕에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 내보낸다고 했었던가. 따가운 가을 햇살 덕에 밭에는 수확을 앞둔 식물에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산밖에 보이지 않는 강원도 평창의 외딴 골짜기다. 그 안쪽 깊숙한 곳에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오래된 집 한 채가 누웠다. 사실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름하다. 평창의 여느 주택들과 비교하면 폐가라고 해도 될 정도다. 게다가 대충 지어진 것이어서 사람이 살 것 같지는 않았다. 한옥도 너와집도 흙집도 아닌 허름한 집. 하지만 유심히 잘 살펴보면 누군가의 인적을 느낄 수 있다. 두 평 남짓한 마루에는 집주인이 말리려고 널어놓았을 빨간색 고추가 정겹다. 집보다 세 배는 더 넓어 보이는 마당에는 귀리, 수수 같은 곡식과 버섯, 더덕, 도라지, 보리수, 오가피, 구기자, 당귀 같은 한약재들이 체계적으로 말려지고 있다. 슬레이트 지붕 끝에 대롱대롱 걸린 처마 밑으로는 감자, 호박, 단호박, 수세미가 박스 채 쌓여있다. 누군가에게 판매할 목적은 아닌 것 같다. 마당 앞쪽으로는 몇 백 주나 되는 두릅나무가 뾰족한 가시를 바짝 세우고 있다. 집 뒤편에는 수백 그루나 되는 잣나무가 빽빽하다. 잣나무 숲 속에는 청설모 몇 마리가 겨울 준비를 하려는지 참외만 한 잣송이를 따서 잣잎 수북한 바닥에 떨어뜨린다.
키가 큰 사람이 아니라도 고개를 깊이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좁다란 문은 격자로 된 나뭇결에 창호지와 두꺼운 비닐로 덧붙여져 있다. 서울의 십이월 한낮보다 더 추운 평창의 시월 밤을 버티기에는 애매한 문이다.
아직 점심 식사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가파른 언덕길을 뛰어오르는 여인이 있다. 여자가 집으로 오르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챈 건 육 개월도 채 되지 않은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다 못해 엉덩이까지 흔들어 댄다. 언덕을 오르는 여자는 노년기에 갓 접어들었을 것 같다. 여자는 날씬한 체구의 농사꾼이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든 여자는 허겁지겁 언덕을 오른다. 밭에서 가을 거지를 하다 급히 뛰어온 것인지 얼굴은 사색이 된 것처럼 경직된 모습이다. 허름한 집으로 접어든 여자의 얼굴은 오랜 농사일로 검게 탔다.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동시에 일할 때 입었던 옷을 툴툴 벗어던졌다. 옷을 벗는다기 보다는 옷이 분리되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그 행동은 숙련된 것이라기보다는 매우 급한 일이 있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자는 불과 십 분도 되지 않아 다시 집 밖으로 나왔다. 분명히 옷을 갈아입은 것 같지만 상의는 입는 둥 마는 둥 걸치고 나온 듯했다. 여자는 다시 집을 나서는 중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은 원래 시건장치가 없었던 것인지 조선시대 문고리 같은 원형 고리를 존재조차 미심쩍게 생긴 걸쇠에 걸어두는 게 전부다. 여자는 부랴부랴 뛰어나가는 듯싶더니 다시 돌아와 마루와 마당에 널어놓은 것들을 대충 걷어 창고에 버리다시피 던져 넣었다. 집 아래에는 언제 도착했는지 사륜구동 5인승 포터 한 대가 시동을 걸어놓은 상태로 기다리고 있다. 운전석에는 차주인 듯한 상기된 표정의 나이 많은 여자가 허름한 집을 향해 목을 뺀 채 쳐다보고 있다. 순식간에 마당 정리를 마친 여자가 언덕을 구르다시피 뛰어 내려갔다. 여자가 조수석에 앉기 바쁘게 포터는 흙먼지를 날리며 내달렸다. 한창 농사일이 바쁠 시간에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는 두 여자의 목적지는 진부 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허름한 농가에 살고 있는 여자는 불과 사십 분 전 작은 아들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여자는 감자를 캐던 호미를 손에서 떨구었다. 다행히 농사일을 할 때 쓰는 간이 의자 덕분에 뒤로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여자의 머릿속은 이미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바로 건너 이랑에서 감자를 고르던 이웃집 여자는 손이 빠르던 여자가 시선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 놀라 다가왔고 망연자실한 표정의 여자를 흔들어 깨웠다.
진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인천으로 가야 하는 여자는 직행으로 가는 노선이 없어 원주 터미널에서 다시 인천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다. 원주까지라도 태워다 주겠다는 포터 주인의 호의를 끝내 사양한 여자는 원주행 버스를 기다리는 십여 분이 하루같이 길었다. 포터 주인은 여자의 옆에 앉아 말없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얼마나 큰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지, 여자의 어깨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포터 주인은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여자의 괴로움을 그저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외엔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한가한 평일 오전, 진부 시외버스터미널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정적 속에서 그녀들은 가슴속 울음소리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여자는 울었고 어깨를 토닥이던 여자도 울었다. 소리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