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에 독일에 온지 7년이 넘었습니다.
작년 10월 1일부터 일하기 시작한 두번째 독일 회사에서 6개월 프로베짜이트(수습기간)이 끝났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던 동료 2명 중 한명은 6주만에 해고되었고, 다른 한명은 프로베짜이트 끝나기 2주전에 해고되었다. (프로베짜이트 기간 동안 해고 통지 기간은 2주이기 때문. 프로베짜이트 기간이 끝나면 해고 통지 기간은 3개월이 됨) 업무 성과는 물론 자신 역할에 대한 만족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고 업무가 해당 직원에게 적합치 않으면 다른 오픈 포지션에 맞는지까지 확인 후에 결정을 한다. 두사람 모두 베를린의 값비싼 사립 대학원 출신이지만 인턴쉽 경험만 있어서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맞는 실무 능력은 충분치 않았다. 특히 첫번째 해고된 인도인 동료는 불안정한 비자 상태(학생 비자에서 취업 비자로 전환해야하는)였는데도 프로베짜이트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안일하게 회사 생활하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는데, 나의 예상보다 빨리 해고 되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프로베짜이트를 통과한 무기한 계약의 정규직이라면 그나마 안정적인 고용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방심하면 안된다. 특히 EU 시티즌이 아닌 외국인이라면.
지난 4월 1일이 우리 가족이 독일에 온지 7년째가 되는 날이었고, 우리의 독일 생활도 8년차에 들어섰다. 중간중간 고비도 있었고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많지만, 이제는 우리 부부나 아이들 모두 독일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서 얼마 안있으면 내 전체 경력 중 1/3을 곧 독일에서 채우게 될 것이다. 새 회사에서 지난 6개월은 혼자서 ChatGPT o1 pro mode와 함께 서비스 MVP를 만드느라 무척 바쁘게 지나갔고, 다행히도 그 결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제부터는 실제 서비스를 위해 외부 시스템과의 연동을 위한 개발을 바쁘게 진행 중이다. 내가 합류할 때만해도 4명 밖에 안되었는데 지금은 12명으로 늘었고, 6월엔 25명이 넘는 직원이 함께 쓸수 있는 사무실로 옮길 예정이다. CEO와 CTO는 처음 만날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고 있고,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미팅을 가지면서 수시로 피드백을 주면서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나의 업무에 만족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매일 7시 4분 기차를 타고 7시 37분에 사무실에 도착하고, 12시부터 12시 30~50분 사이에 점심 도시락을 먹은 다음 업무를 마치고 5시에 사무실을 나서서 5시 11분 기차를 타고 5시 40분에 집에 도착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살때는 병원에 거의 안가던 내가 다른 가족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의사를 만나고 있다.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수시로 가정의 선생님을 만나서 건강 검진과 처방은 물론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 상담을 하고 별도로 심리 상담을 받거나 물리 치료를 받기 위한 진단서를 받는다. 작년에 한창 힘들때 심리 상담 진단서를 받아놓은 덕분에 좋은 의사를 만나 영어로 심리 상담을 받아오고 있는데, TK(공보험)에서 12회 상담을 지원해줘서 지금까지 받아왔고, 12회 상담을 추가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상담비 전액 지원) 그리고 가정의 선생님께서 12회 물리치료 위버바이중을 발행해준 덕분에 3개월간 꾸준히 1회 20분씩 물리치료를 받아왔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터키인 친구가 추천해준 이후 우리 가족 모두 이용하는 치과에서는 작년에 잇몸 치료를 받았고, 얼마전에는 어금니 발치를 했다. 환자의 70%가 외국이라는 치과는 한국 치과 못지 않게 시설이 좋고 시스템이 잘되어 있고, 한국인(또는 한국계) 의사나 간호사가 있고 영어로 소통이 가능해서 큰 도움이 된다. 지난달에는 캘린더를 보니 2회 심리 상담, 2회 물리치료, 2회 치과 검진 약속이 있었다. 무엇보다 편리한 것은 주말 한밤중에 치통을 느끼게 되거나 언제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물리 치료를 받고 싶으면 Doctolib 앱으로 최대한 빠른 시간에 맞춰서 진료 약속을 예약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연봉이 많이 올랐어도 작년부터 5년짜리 적금을 가입해서 매월 적지 않은 돈이 적금 계좌로 빠져나가는 통에 빠듯한데다가, 한국 경기가 너무나도 빠르게 안좋아지는 통에 예전처럼 쩔그렁거리면서 비행기 타고 해외 여행을 다니는 것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올해는 자동차를 몰고 부담없이 2박 3일간 다녀올 수 있는 독일 소도시 여행 위주로 다니고 있다. 4월 중순 이스터 연휴에 맞춰 3일 휴가를 써서 역시 2박 3일간 북해 해변에 위치한 숙소에서 지낼 예정이다. 남은 26일의 휴가를 어떻게 쓸것인지는 아직 결정 못했지만, 여름에 1~2주 (5~10일) 겨울에 1~2주 (5~10일)을 사용할 예정이다. 심리 상담 덕분에 그 좋아하던 술을 끊은지 벌써 6개월이 되었고, 그 덕분에 요즘엔 지나치게 집중력이 좋아져서 업무 생산성도 무척 좋아졌음을 체감하고 있다. 이제는 식당이나 친구들과 술집에 가면 알콜프리 맥주나 음료를 마시기만 한다. 이제 날씨가 좋아지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할 생각이고, 예전처럼 주말마다 상수시 궁전 같이 강아지와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다닐 것이다. 딸내미는 작년말부터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는데, 듣는 것처럼 돈이 많이 들지만 교육받는 내용과 방식을 듣고 있으면 왜 독일 도로에서 운전하는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지 알것 같다.
가끔 우리 부부는 우리가 여전히 한국에 살았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한국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하면서 자신만의 영역과 친구들을 만들고 있는 와이프의 모습이나 한국과 독일을 통틀어 중학교 졸업장만 3개 있는 우리 딸내미가 미술 대학교에서 학기말 작품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몇주간 초췌해진 모습을 보거나, 독일에서 태어난 애들도 만만치 않다는 김나지움에서 "나름" 버티면서 좋아하는 첼로 연주와 배구, 수영 등을 즐기고 내가 어렸을때처럼 밤새 게임을 즐기는 우리 아들내미 모습을 보면 7년전의 우리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한국에 있었다면 무엇보다도 나자신은 지난 7년간 지금처럼 겨우(!!) 2곳의 회사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수차례 회사를 옮겨야 했을 것이며, 지금과 같이 인정받고 존중받으면서 이 정도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충분히 주어지는 여유 시간 덕분에 현재 2권의 책을 2곳의 출판사와 계약해서 집필하면서(작년말에 마무리한 또다른 원고는 현재 편집 작업중) 동시에 개인 프로젝트로 매주 새로운 게임을 찍어내듯이 만들면서 출시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큰 스트레스 없이 50대를 맞이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으리라.
독일 생활 7년째 4월 1일을 며칠 앞둔 3월말 주말에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쿠담거리로 나가서 함께 즐겁게 쇼핑을 하며, 곧다가오는 와이프와 딸내미 생일 선물을 샀다. 나는 출시를 기다리고 기다렸던 엑스박스용 게임 패키지를 하나 샀고. 중간에 다리가 아파서 들른 카페에서 함께 차를 마신 다음, 와이프와 아이들은 또다시 쇼핑하러 간 사이에 홀로 북적거리고 시끄러운 카페에 앉아 있었는데 그 순간이 왠지모르게 행복하게 느껴졌다. 무엇에 쫒기지 않으면서 즐길 수 있는 토요일 오후의 그 여유로움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