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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Jan 21. 2019

독일 회사의 수습 기간과 종신 고용

독일에서는 6개월 수습 기간을 통과하면 이론적으로 종신 고용이 가능하다 

https://brunch.co.kr/@nashorn74/39


독일 회사에서 최종 합격된 다음 고용 계약서를 받았을 때 2가지 때문에 놀라게 된다. 계약서에 67세까지 종신 고용 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는 점과 수습 기간(프로베짜이트)이 6개월이나 된다는 점 때문이다. 독일 회사에서는 수습 기간 6개월을 통과해서 종신 고용이 되면 한국이나 미국처럼 쉽게 해고가 어렵다. 따라서 회사 입장에서는 수습 기간 동안 계속 고용을 유지해야하는지를 판단하고 아니다 싶으면 수습 기간 내에 퇴사를 시키는 것이 기본인 것 같다. 물론 한국이나 독일이나 변화가 극심한 IT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아닌 이상 종신 고용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법적으로 고용 안정이 보장된다는 것은 큰 차이가 될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수습 기간 내에 휴가 사용도 어렵다고 하는데, 필자는 이미 수습 기간 동안에 2주의 휴가를 사용한 전력이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은 회사마다 차이가 있는 듯하다.


어느날 캘린더를 확인해보니 보스와 피드백 시간이 잡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근무했던 것에 대한 평가를 받고 고용이 계속 유지되느냐 아니면 짤리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야하느냐가 결정되는 상황이 온 것이니 아무래도 긴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나름 보험(!?)을 들어두어 바로 이직할 수 있는 회사가 있기는 했지만, 현재 다니는 회사의 업무적인 부분이 경력 관리면에서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최소 1년에서 2년 정도는 경력을 쌓고 싶었기에 중요한 순간이었다. 피드백 시간이 되자 보스는 3장 정도의 피드백 양식을 출력해서 은밀한 장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픈 공간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같이 체크하자고 한다. 한국에서였다면 독립된 회의 공간에서 서로 마주 앉아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ㅎㅎ 


피드백 카테고리 별로 Outstanding, Good, Acceptable 그리고 또 하나 뭐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난다. 그래서 해당 카테고리에 대한 평가를 체크하고 아래쪽에 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적는 방식이었다. 보스 말로는 필자의 경우에는 언어가 발목을 잡아서 Outstanding이 될 수 있었는데 Good을 줄 수 밖에 없단다. 어차피 언어 문제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문제이니 필자 역시 동의한다고 했다. 다행히 필자에 대한 전체 적인 평가는 Outstanding과 Good 사이 정도라고 판단된다. 언어 문제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시에 디테일 한 부분에서 misunderstanding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 지적을 했고, 필자 또한 그러한 경우가 몇번 있었기에 동감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지금은 좌우의 동료들에게 크로스 체크를 하면서 misunderstanding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고, 올해 내에 독일어와 영어를 B레벨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한, 언어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차이나 여러가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양한 친구들과 파티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필자가 잘했던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상세하게 명시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필자가 입사한지 한달쯤 되었을 때 보스가 원했던 빅데이터 수집 시스템을 신속하게 만들어낸 것이나,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업무를 소화 가능한 것, 지라(JIRA)를 이용하여 업무 진행과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을 잘한 점 등을 일일이 나열하며 칭찬을 했다. 또한 필자가 이야기 하는 내용도 일일이 받아 적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었다. 피드백 시간 내내 근태나 휴가 등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던 점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이었으면 출퇴근 시간이나 휴가 등 또한 중요한 평가 요소이었을텐데 말이다. 참고로 필자는 작년 11월부터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하는 독일어 수업 때문에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을 하고 있으며 입사한 해의 남은 휴가를 모두 사용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입사한 이후 처음으로 병가를 하루 쓰기도 했다.


수습 기간 이후에도 같이 일을 하자며 그 때문에 더이상 걱정을 안해도 된다고 하면서, 그리고 도망 갈 생각도 하지 말란다. ㅎㅎ 필자가 입사한 다음 처음으로 같이 일하면서 친해졌던 이스라엘 동료가 그만둘때 슬펐다면서 말이다. 현재 필자는 회사의 모든 동료들이 "Happy man"이라고 부를 정도로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스에게도 특별히 불만이 없으니 걱정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필자의 철학은 "아침 마다 출근할 때 가고 싶지 않은 회사는 그만두는 게 낫다"이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당연할 일이지만, 그 또한 좋은 평가를 받는데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맨마지막에는 올해 달성할 목표를 나열하면서 퍼센트로 비중을 나누고, 그것이 나중에 필자의 평가 기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원래 매년 1월에 전년도 업무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임금 인상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중간에 들어왔기에 애매하다면서 예외적으로 여름쯤에 중간 평가를 하고 급여 인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이번 피드백 타임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향후 어떤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더 배우고 싶은가에 대해 묻는 부분이었다. 사실, 필자는 일을 하다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배우고 익혀서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 장기이지만 뭔가에 대해서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술은 따로 없는 편이다. 호기심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라고 해야할까. 그런데 보스가 네가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무엇이냐고 물어오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팀 내에 다른 동료가 하고 담당하고 있는 3D 관련 기술에 살짝 관심이 있던터라, 한국에 있을 때부터 3D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업무를 수행해본 경험이 없어서 해당 분야에 대해서 공부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보스는 그 이외에도 스크럼 마스터나 다른 기술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한다. 사실 이런 부분은 필자가 한국에서 일할 때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말이었다. 항상 필자 스스로 새로운 분야를 찾아서 알아서 공부를 해왔을 뿐이다. 다소 과장일 수 있겠지만, 단순히 직원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로써 걱정했던 수습 기간은 무사히 마치고 종신 고용 상태가 될 것이다. 덕분에 회사에서 해고되어도 3개월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질 것이고, 필자가 스스로 그만두려고 해도 3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두어야 할 것이다. 양날의 검이기는 해도 당분간 제한된 비자를 소유를 외국인 신분이기에 위안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가 영주권을 얻기 전까지는 안정적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직장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입사라는 첫번째 관문 이후 드디어 두번째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아마도 세번째 관문은 블루카드 비자 취득 후 21개월 후에 진행할 영주권 신청일 것이다. 회사에서 더 나은 업무 평가를 받는 것 뿐 만 아니라 영주권 심사에서도 무사 통과를 위해서는 올 한해도 역시 열심히 독일어 공부를 해야한다. 또한 독일어 수업 때문에 소홀했던 인강 영어 공부도 재개해야겠다. 2019년에는 영어와 독일어 실력을 좀더 키우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일 것이다.


작년 이맘 때쯤에는 딸아이의 진로에 대해서 집사람과 고민하며 이런 저런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몇가지 대안 중에 하나로 독일 이민을 고려하고 있었고, 불확실한 부분이 많은 탓에 전문가에 상담을 받기도 하고 몇번이나 고민하고 알아보면서 독일행을 타진해보던 시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독일 거주에 필요한 모든 서류 작업을 무사히 마치고,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벌면서 벌써 10개월째 베를린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독일어와 독일 공립 학교 시스템에 익숙해지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한국과는 달리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이 적응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다. 필자와 집사람은 계속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앞으로 집사람이 독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슬슬 찾아볼 계획이다. 예상과는 달리 우리 부부가 아이들보다 더 빨리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방심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겠다. 우리의 독일에서의 삶은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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