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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Dec 04. 2018

독일 회사에서 근무하기

독일 스타트업에서의 하루 일과를 알아봅시다.

필자는 독일 베를린의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독일 회사에서의 근무 환경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베를린 스타트업에서 지난 몇달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본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그저 참고용으로만 보기 바란다. 


필자는 보통 오전 5시~6시 사이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한다. 매주 월, 화, 수요일에는 오후 5시 30분부터 독일어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오전 7시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을 하기 때문이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7시 30분 쯤 출근을 해서 오후 5시에 퇴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의 습관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 대해서 보스에게 의견을 묻는 메일이나 슬랙 메시지를 남겼었는데 답이 없었다. 아마도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인데, 왜 나한테 묻느냐?"라는 정도의 반응인듯. 그래서 독일어 수업을 위해 오후 4시에 퇴근을 할 때에는 일부러 주변 동료한테 독일어 수업을 가는 것을 계속 강조하며 주입하고 있다. (쓸데없는 자격지심인 듯) 익히들 아는 것처럼 여기서는 일찍 퇴근을 하든 뭘하든 특별히 터치하는 사람이 없지만, 알아서 잘한다는게 사실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필자와 비슷하게 출근하는 친구들이 몇몇 더 있는데 이들은 오후 4시 이전에 당당하게 퇴근을 하기도 한다. (일전에 이스라엘 동료에게 지적을 받았기에 더이상 그런것들에 대해 쿨하지 않게 따지지 않기로 했다. ㅎㅎ) 필자는 한국에서도 일찍 출근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 때는 거의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길이 막히지 않는 새벽에 출근하기 위해서, 그리고 주차장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일찍 출근했었다. 일찍 출근해도 퇴근 시간은 6시로 동일했지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제일 처음 출근해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은 안해본 사람은 알수 없는 것이다. 주차가 불가능한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도 역시 일찍 출근했는데, 콩나물 시루 같은 출근길 전철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 출근을 하면, 사무실의 불을 모두 켜고 잠긴 캐비넷에 들어있는 내 랩탑을 꺼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개발자들에게는 1인당 1대의 HP 랩탑이 제공되고, 각자의 자리에는 전용 도킹 시스템과 모니터가 세팅되어 있다. 최근 합류한 독일 친구들은 별도 요청을 해서 2대의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모니터를 많이 연결해서 사용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 그냥 한대로 만족하고 있다. (집에서도 윈도우 노트북과 맥북 프로 2대를 나란히 놓고 사용할 뿐 별도의 모니터는 사용하지 않는다) 처음 회사에 입사 해서 가장 놀란 것 중에 하나는 이렇게 랩탑을 출근시마다 꺼내서 쓰고 퇴근할 때 캐비넷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사무실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고, 업무상 보안을 위해서나 분실 방지를 위해서인 것 같은데 생전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불편했지만 익숙해지니까 별 생각이 없다. 그리고, 막강한 파워를 가진 IT 담당자의 허락이 없이는 내 랩탑에 개발과 관련된 도구도 함부러 설치하지 못한다. 이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정책적으로 개인 랩탑에는 데이터베이스 서버나 다른 종류의 서버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못하게 하고 클라이언트나 꼭 필요한 개발 도구, 라이센스가 있는 소프트웨어만 설치해준다. 만일 새로 설치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생기면, IT 담당자에게 지라(JIRA)를 통해서 티켓을 등록하면 나중에 와서 설치해준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웃룩을 쓰면서 메일 관리, 일정 관리 등을 하고 있으며, SAGE라는 별도의 사내 시스템을 통해서 휴가나 출장 관리 등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입사 초기에 AWS 계정을 만들고 필요한 서버 인스턴스를 추가해서 사용하는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는데, 일부 권한을 제외하고는 AWS 서버 인프라는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매일 아침 9시 15분에는 매일 스탠드업 미팅을 앉아서 하는데, 자택 근무를 하는 사람은 줌을 통해 화상으로 참석을 하는 것은 한국 스타트업과 동일하다. 나의 보스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수요일마다 재택 근무를 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2005년 경부터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애자일 기법을 도입해서 관리해왔었다. 2000년 경부터 제한된 개발 기간 동안 다수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여 출시일을 맞추는 개발을 해왔던 필자 입장에서 "애자일"은 아주 좋은 솔루션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회사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애자일과 스크럼, 칸반 보드 등을 이용해서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수행했기 때문에, 나름 많은 시행착오를 해볼 수 있었고 성공 사례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애자일이나 스크럼을 시행하려고 하면 회사 및 경영진과 개발자들 양쪽 모두의 호응이나 적극적인 참여,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나 경영진은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빨리 결과를 만들어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 필요할 뿐이고,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개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간혹 애자일이나 스크럼 관련 강의를 하게 되면, 그들이 평소에 생각했던 것과 실제 애자일 활용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도입을 주저하는 회사들도 있었다. 그래도 한국의 스타트업들은 다행히도 아틀라시안의 컨플루언스나 지라, 빗버킷 등의 솔루션을 사용하기 때문에 훨씬 더 나은 여건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현재 필자가 근무하는 독일 스타트업은 교과서대로 스크럼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의 보스는 "스크럼 마스터"이고, 프로덕트 책임자인 PM은 별도의 담당자가 담당하고 있다. 중요한 차이라면, 우리나라의 관리자급들은 개발자 출신이든 아니든 (대부분 개발자 출신이 더 최악이다) 프로젝트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 및 각 담당자들의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편이라 관리자와 실무자 사이의 벽이 존재하게 되고, 일방적인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효율적인 애자일 방식의 프로젝트 운영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 회사의 스크럼 마스터와 프로덕트 매니저는 개발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개발 과정에 대한 이해, 담당자의 업무 스타일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에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프로젝트 상황과 개별 담당자의 상황에 맞춰서 적절하게 업무 순서나 양을 조절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한국에서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애자일을 도입해서 진행해본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때때로 정말로 저렇게 루즈하게 진행해도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겪어보고 나니 "상호신뢰"의 원칙을 준수하면서 각자가 자신의 업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매일 아침 스탠드업 미팅을 할때, 스프린트 계획이나 종료를 하는 미팅을 할 때, 모든 미팅을 할 때 시간 제한을 위해 "타이머"를 켜놓고 회의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서로 주의를 주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미팅을 끝내려고 노력한다. 한번 시작하면 네버엔딩이 되는 한국 스타일 회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정기적인 회의든 비정기적인 회의든 아웃룩을 통해서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일정과 아젠다를 공유하고 약속을 잡는다. 처음에는 다들 아무말 없이 약속된 회의에 참석하러 가서 실컷 회의를 하다가 왜 안오냐고 묻는 통에 부랴부랴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회의 시간이 되면 회의 하러 가자는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고 바로 회의 장소로 가는 것이 기본이라, 그 이후부터는 필자 역시 꼼꼼이 회의 일정을 확인하고 회의 참석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스트레스인데 이제 겨우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국과는 달리 회의 내내 다들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고 의견을 조율한다. 회의 내용은 스크럼 마스터나 프로덕트 매니저가 실시간으로 컨플루언스로 정리를 하며, 필요하다면 화이트 보드나 포스트잇 등을 활용하여 필요한 결과를 도출한다. 생각보다 회의는 많은 편이며 스크럼이나 스프린트 관련 회의 말고도 특정 이슈에 대한 간단한 회의, 임의의 담당자가 같이 의견을 나누자고 잡는 회의 등 한국하고 큰 차이는 없다.


점심 시간이 되면 한국처럼 삼삼오오 모여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편이라 아침 식사로 집사람이 준비해준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고, 점심때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준비해온 점심을 먹는 경우도 많은 데, 점심 시간에 식탁 테이블에 각자 앉아서 자신의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여기와서 생각보다 채식주의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내 옆자리 영국 아저씨는 거의 매일 콩 위주의 점심 식사를 하고 보스는 강력한 채식주의자인 와이프가 준비해주는 듯한 채소 위주의 점심 식사를 한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가는 동료 중에도 야채 위주의 요리만 주문해서 먹는 경우가 많은데, 필자를 비롯한 한국 사람처럼 고기를 아주 즐기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베프인 이스라엘 친구가 일본 식당에 가서도 야채 교자와 야채 라멘을 주문해서 먹는 걸 보고는 정말로 기겁을 했을 정도이다. 주로 가는 곳은 피자집, 케밥집, 베트남식당, 수제햄버거가게, 그리고 대형 푸드코트 같은 곳 등인데, 점심 가격은 최소 3유로에서 7~8유로 정도 사용한다. (우리돈으로 4천원에서 1만원 조금 넘는 정도) 간단하게 점심을 떼우고자 할때 자주 이용하는 곳은 사무실 바로 근처에 있는 케밥집인데, 3유로짜리 팔라펠이나 슈바마 정도면 충분히 한끼로 먹을 수 있다. 다만, 위생으로 따지면 우리나라처럼 위생적이지 않은 문제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요리하는 사람이 돈을 직접 만지는 것은 물론 한국 같으면 "헉"할 부분들이 가끔 보이며, 동료 중에는 케밥을 먹고 탈이 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독일 회사에 입사하고 또 놀랐던 점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처럼 인스턴트 커피가 없는 것은 물론, 다들 능숙하게 에스프레소 머신을 다룰 줄 알고 커피를 맛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부분 우유나 두유로 맛있는 카푸치노나 카페라떼를 만들어 마시며, 당연히 아메리카노는 거의 없고 가끔 에스프레소로 마시는 친구들이 있다. 이에 자극을 받아서 집에 수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서 연습을 할까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귀차니즘에 져서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머신을 한대 들여놓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역시 생각보다 커피를 아예 안마시는 동료도 많은데, 이란 동료하고는 가끔씩 차를 타서 마시기도 한다. 생강을 통째로 가져와서 씻은 다음 껍질을 안벗기고 슬라이스로 잘라서 차에 타 마시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생강차나 유자차를 사서 타마시는 것과 달리 상당히 원초적이다. 들어보니 여기에서는 겨울에 감기 예방을 위해서 생강차를 많이 마신다는 것 같다. 누가 독일 사람 아니랄까봐 매주 금요일 퇴근 전에는 회사 냉장고에 쌓여있는 맥주를 한병씩 마시는 것이 전통이다. 동료들과 시원한 맥주 한병을 마시면서 한주의 업무를 마감하는 것도 아주 근사한 일이다. 항상 맥주가 있지만, 업무 시간에는 다들 마시지 않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안마시는 것 같다.


매월 26~27일 쯤에 급여가 독일 계좌로 들어온다. 한국에서는 급여가 입금되면 카드값이 쭉 빠져나갔다면, 독일에서는 급여가 입금되면 월세가 기다렸다는 듯이 빠져나간다. 그 시기 전후로 여직원이 전 직원을 찾아다니면서 급여명세서 봉투를 나눠주는데, 이 급여 명세서는 독일에서 중요한 서류이기 때문에 잘 보관을 해야한다. 이 봉투를 받을 때 마다, 예전에 우리 아버님께서 회사에서 급여 봉투를 받으셨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지나친 오버인지 모르겠다. 머나먼 타지에서 돈을 벌어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스스로가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업무를 하는 것은 사실 한국이나 여기나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물론,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일을 많이 벌려놓는 스타일이라 더욱 그런지 모르겠지만, 업무 강도는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뭔가를 시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오후 4시에 당당하게 퇴근을 하고 VHS(시민학교)에 가서 4시간짜리 독일어 수업을 듣고 나면 더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들어버리게 된다. 필자만 이렇게 고생을 하며 일하면서 독일어 공부를 하는가 했더니, 며칠전 이스라엘 동료 집에서 파티할 때 만난 다른 이스라엘 친구도 똑같이 했었다는 것을 보니 이민자라면 반드시 감수하고 인내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보인다. 한국에서도 항상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지만, 여기에서는 업무적인 것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것 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기 때문에 매일 매일이 배움에 연속이다. 그래도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하다보니, 마치 20대로 되돌아 간 기분이고 한국와는 달리 여기에서는 하루 하루 더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독일에서의 첫 직장이 기대보다 더 좋은 회사이고, 훌륭한 동료들이 있어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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