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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Dec 10. 2018

독일에 와서 달라진 점들

나는 이미 한국에서 살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다.

1. 차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


한국에서 살때에는 가장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돈을 썼던 부분이 바로 "자동차"였다. 동시에 차를 3대 소유하기도 한 적이 2번이나 있고, 2대의 외산 차량을 소유했으면서도 늘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가질 정도로 내가 타고 싶은 차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썼었다. 덕분에 원없이 차를 소유하고 드라이빙을 즐기는 삶을 살았는데, 독일에 와서는 그러한 열정이 확 식어버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독일에 와서 일주일만에 현금을 주고 샀던 폭스바겐 "폴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고, 출퇴근 시에 자전거와 전철을 이용하다보니 차를 운전할 시간이 없기도 하다. 가끔 아우토반을 주행할 때에는 좀더 좋은 성능의 차량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전처럼 언제나 지를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다. 내년 즈음에는 한국에서는 살수 없는 벤츠 픽업 트럭을 구입하는 것을 고민 중이지만, 이 또한 예전에 비하면 지름신 강림 정도가 약한 편이다. 게다가 원래에도 선호하지 않았던 경유 차량은 환경 문제로 인해서 앞으로 더욱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어, 그냥 고성능의 벤츠 소형 해치백이나 이번에 멋지게 출시된 마쯔다의 저렴한 신형 해치백도 물망에 오르고 있기는 하다. (써놓고 보니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듯)


독일에 대한 TV 프로그램을 본 누군가가 남긴 댓글에 독일 사람들은 환경을 생각해서 차를 안몰고 걸어다는다는 식으로 써놓은 것을 보았다. 우선, 독일 사람들이 차를 안몰고 다닌다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 한국에서 나름 급발진과 고속 코너링의 달인이라고 생각을 하던 필자도 혀를 내두를 만큼, 이 동네 사람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급발진을 하고 신호는 잘지키지만 속도는 엄청나게 내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코너를 빠르게 돌면 대부분의 차량이 못따라왔지만 여기에서는 어느 누구도 뒤쳐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필자의 운전 스타일은 독일 스타일인 듯하다. 물론, 아우토반에서도 항상 1차로는 비워두는 것이나 정차 중에 시동을 끄는 것 등은 한국에 비해 다들 잘지키지만 환경 문제 때문에 차를 운전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너무 편하게 잘되어 있어서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는 사람들이 무척 많을 뿐이다. 게다가 베를린과 달리 독일 남부 지역은 우리가 아는 그 "차를 사랑하는 독일인"답게 차에 많은 돈을 쓴다니, 나중에 한번 집중적으로 취재(!?)를 가볼 예정이다.


2.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고 있다.


짐작하겠지만, 필자는 "검소"하고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 않고 후회하기 보다는 하고 나서 후회를 하자는 인생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참고 누르기 보다는 최대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많이 벌어서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아낌없이 쓰자가 생활 신조였고, 그러다보니 항상 남보다 타이트하게 살아야 했지만 덕분에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그동안 필자가 얼마나 과하게 살았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고 친구나 동료들 덕분에 조금씩 검소한 삶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지금 필자가 타고 다니는 브롬톤 자전거는 보호 장비나 가방과 같은 액서서리까지 포함하면 한국 돈으로 200만원 정도 지불을 하고 구입한 것이다. 이 정도 가격이라면 한국에서는 그냥 브랜드 자전거 샀나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다. 가끔 지나가는 독일인들이 호기심에 가격을 물어보는데 원따우전트 투헌드레드 유로(순수 자전거값)라고 하면 다들 엄청 놀라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여기 사람들은 자전거를 좋아하고 많이 타고 다니지만, 대부분의 독일인이나 이민자들은 값비싼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필자의 이스라엘 친구는 50유로짜리 중고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수리비가 80유로가 나온다고 울상을 지을 정도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전거는 그냥 이동 수단일 뿐이니까)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다니는 VHS(시민학교:우리나라의 시나 구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 같은 개념)에서 다양한 나라에서 오는 이민자들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은 잡센터를 통해서 무상 교육을 받는 친구들이라 소득이 높은 편이 아니다. 특히 터키 이민자들은 지원 혜택이 무척 많은 듯, 직업이 없음에도 큰 불편함이 없이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우리의 경우, 블루카드 비자를 소지한 사람의 배우자만 50% 할인을 해주고 정작 본인은 아무런 혜택이 없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 집사람에게 우리도 잡센터를 통해 지원을 받을 수 없는지 알아보라고 했더니, 남편 수입이 높으면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대부분 이민자들이 저소득층이거나 소득이 없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새로 나온 아이폰 가격이나 필자의 자전거 가격을 이야기하면, 그들의 반응은 한결 같이 "자동차 보다 비싸네!"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 자동차 가격은 말도 못꺼낸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은 같은 회사를 다니는 독일인을 비롯한, 좀더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 동료들에게도 똑같다는 것이다. 아키텍트인 독일인 아내와 살고 있는 이스라엘 친구가 농담삼아 하는 말. "아마 우리 골프는 (너무 오래된 차라) 다음 자동차 검사 때 통과하지 못할꺼야. ㅋㅋㅋ" 이런 사람들만 주변에 있으니 조금이라도 과소비를 하면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3. 컨텐츠 소비 패턴이 조금 바뀌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저작권에 대해 민감하다. 그래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독일에서 무심결에 불법 다운로드를 하다가걸려서 된통 당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행히(!?)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정품 게임이나 컨텐츠를 제 돈 주고 구입해왔고, 책이나 음반도 꼬박 꼬박 돈내고 사던 사람이라 큰 문제는 없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독일의 대형 전자제품 매장인 자툰이나 미디어마트에 가보면 엄청나게 많은 DVD/블루레이와 게임 패키지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인데, 여기는 워낙 잘되어 있으니 덕분에 지름신이 주기적으로 강림하는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게임기를 사지 않았었는데, 여기에 온지 얼마 안되어 엑스박스 원 X를 구입하고 수십 장의 게임 타이틀을 구입해버렸다. 이제는 신작 게임 출시만을 기다리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상황이 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PC에서만 즐길 수 있는 토탈워 시리즈나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를 제외한 신작 게임들은 엑스박스에서만 즐기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스팀에서 좀더 싼 가격에 구입해서 PC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들도 일부러 엑스박스용으로 구입해서 플레이하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한국에서도 넷플릭스를 잘 이용하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없으면 안되는 서비스이고 역시 여기 와서 산 LG TV는 넷플릭스 버튼이 리모컨에 달려있을 정로라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가끔 신작 영화를 보고 싶으면, 한국처럼 극장에서 보기 힘들고 DVD를 구입해서 한글 자막이 없어서 불편하니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등록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매해서 보고 있다. 이 역시 TV나 아이패드로 볼 수 있는 앱이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또한 한국에서는 전혀 보지 않았던 유튜브를 여기에서는 자주 본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유튜브를 많이 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재미 있고 유익한 컨텐츠가 꽤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 역시 자주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수백권이 넘는 책을 사서 소장하고 있었지만, 독일에 오면서 그 많은 책을 힘겹게 처분하고 나니 다시는 종이책을 쌓아둘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것으로 전자책을 사서 볼까 고민하다가 리디북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책의 종류나 양이 많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하면서 읽고 있다. 책을 읽을 때에는 역시 여기서 구입한 신형 아이패드가 최고인것 같다. 출퇴근시에 전철을 탔을 때 책을 읽기에 좋은 것은 한국이나 여기나 똑같다. (참고로 한국 출퇴근 전철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국이다)


4.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이 줄었다.


여기에 와서 학교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에게 항상 듣는 말이 있다.

"너는 한국에 직장도 있었고, 집사람도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왜 독일에 온거야?"

독일어를 배우는 VHS에서 만난 대부분의 친구들은 독일에서 가까운 폴란드나 이민을 가장 많이 오는 터키 등 같은 유럽권이나 그나마 가까운 중동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많다. 그리고 회사에 다니는 동료들은 대부분 독일인 와이프가 있기 때문에 독일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학교 친구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취업이 힘들어서 일부러 독일까지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머나먼 한국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를 버리고 왔다니 그들 입장에서는 필자의 행동이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왔다고 설명을 하면 역시 모두들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 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높은 교육열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수능 시험 문제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공유해주었더니 금방 이해를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여느 40대 가장들처럼 항상 나의 위치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 걱정을 하고, 미래에 다가올 여러가지 리스크들에 대한 대안 마련을 위한 고민 때문에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어쩌면 그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에 치열하게 돈을 벌어서 나 자신과 가족들에게 열심히 돈을 쓰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고자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처럼 자기가 버는 돈에 맞춰서 살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위해 그에 걸맞는 수입을 올리는 것을 선택했기에 항상 외줄을 타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살아햐 했다보니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은 늘상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급하게 한국의 자산을 모두 처분하고 독일로 넘어와서 살다보니 그전에 비해 1/3 정도로 걱정이 줄어버렸다.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독일 적응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기에, 처음에는 직장을 구하는 문제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다. 이미 20년 정도 납입한 한국의 국민연금과 독일에서 현재 납입하고 있는 독일의 국민연금이 나중에 조금 도움은 되겠지만, 그 또한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예전에도 언급한 것처럼 개인적인 커리어를 60대 이후에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일 것이고, 한국 안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이상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아서 좋다.


한국에서 청년 실업률이 높다고 난리인데, 유럽 역시 청년 실업률이 높기는 매한가지 이다. 2016년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은 무려 40% 전후였다. 상대적으로 독일의 실업률이 낮고 일자리 기회가 많기 때문에 실업률이 높은 다른 EU 국가의 청년들이 독일로 몰리는 상황이다보니, 경력이 없는 20대 한국 청년이 독일에서 취업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EU 시민권자가 무조건 우선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굳이 한국 사람을 취업시켜야 하는 이유를 이민청에 해명을 해야만 비자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EU 국가들 내부에서도 취업이 쉽지 않아서, 상당히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독일 오기 직전에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스페인 영화 "독일로 가자!"가 있었는데,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를 잘 다뤄서 필자에게도 도움이 되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금 시대에 취업이나 창업 문제에 있어서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표 설정을 현명하게 하고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경쟁력을 쌓아서, 특정 지역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가능성과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이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에 살아 남는 방법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로, 우리 아이들이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인 점수 전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고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는 교육을 받게 된 점은 무엇보다 감사할 일이다.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1110933736844

https://www.bbc.com/korean/news-45696838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모르는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착하게" 공부만했다가, 뒤늦게 공부만 열심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된 젊은이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중요한 인생의 경험과 지혜들은 외면한채 그저 앞만 달려가도록 훈련된 아이들이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될 미래에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전세계적으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 것이고 모두가 바라는 "안정적인 직장"은 갈수록 사라질 수 밖에 없는데, 20세기에나 당연했던 공식대로 아이들을 몰아붙이고 싶지 않다. 그나마 요즘 젊은 세대보다는 혜택을 받았다는 우리 세대 역시 40대 이후의 모습들을 보면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다. 무모하게 낯선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나니, 뒤늦게라도 이렇게 도전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가족들과 체코로 2주간의 휴가를 떠난다. 올해 초부터 독일로의 이민을 위해 정신없이 지금까지 달려온 우리 부부가 모처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고, 유럽에서의 연말 분위기를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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