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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Oct 14. 2018

독일 회사의 휴가 이야기

아무리 바빠도 항상 누군가는 휴가를 간다

직장인들이라면 자신의 권리 중의 하나인 "휴가"에 대해 나름 기대를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평소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이것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회사에 투자를 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급여"를 받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적으로 보장된 자신들이 휴가를 즐길 권리는 이미 충분하고, 휴가 때만이라도 모든 것을 잊고 푹 쉬고 싶어한다. 아주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당연한 일이 항상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고, 얼마 안되는 휴가나 연휴, 필수적이지 않은 근로자의 날 등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즉, 한국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회사이든 못 버는 회사이든, 회사 사장님의 마인드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휴가"에 대한 기대를 거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애시당초 "휴가"에 대한 기대따위는 하지 않았다. 갈 수 있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눈꼽만큼이라도 휴가라도 갈 수 있게 되면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진심으로 감사하게 느껴지는 효과도 얻게 된다.


필자는 한국의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 일을 할 때, "휴가"라는 단어는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회사 생활을 하는 대신 평소에 시간이 되면 최대한 여행이나 취미를 충분히 즐김으로써, 굳이 별도의 휴가를 쓸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않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주말에만 잘 놀아도 따로 휴가를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된다. 물론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휴가 보다는 높은 급여를 보장해주는 것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도 하다. 하지만 여기 와서 짧은 기간이지만 보고 느낀 것은, 우리가 누구나 알고 있는 "충분한 휴식은 더 높은 업무 성과를 보여준다"라는 진리가 생활에서 그대로 실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한국에서 20년 넘게 다양한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은 바로 우리는 서로가 인간임을 종종 잊어버리고, 서로가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배려하거나 노력하는 모습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근로자란, 그저 일을 해야하는 기계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이 21세기 한국 사회 속에서도 여전한 모습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유럽권의 휴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좋은 내용을 공유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1년에 3~4일 주는 휴가로 만족했었던  한국 촌뜨기의 경험도 공유해본다. 


필자가 다니는 독일의 스타트업은 애자일과 스크럼을 이용하여 신규 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주간의 스프린트 기간을 두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담당들이 백로그에 등록된 티켓들 중에 우선 순위가 높은 것을을 해당 스프린트에서 처리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기존 제품과는 다르게 새로운 핵심 하드웨어를 도입하여 그것을 베이스로 개발하고 있고 소프트웨어 또한 기존과 달리 자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약 15명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이다보니 각각의 담당자들은 자신의 파트의 핵심 부분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제 3자가 업무를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모든 제품 개발이 그러하듯,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이슈들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의 연속이고 예정보다 지연되는 개발 업무들도 조금씩 쌓여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일을 못하는 사람은 "프로젝트란 처음 기획된 대로 그대로 수행되어 최초에 예상했던 결과를 만드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프로젝트이든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는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잘 한다는 것은 그러한 다양한 변수를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를 가능한 한 최선의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꾸준히 변화하는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내면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고, 결국에는 최초에 예상했던 결과 이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한국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개발 책임자나 PM으로 진행했던 경험이 있다보니 지금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한창 프로젝트가 진행 중 상황이고, 전시회 일정에 맞춰서 베타 버전을 공개하기로 했는데 남은 일정이 얼마 없는 상황이라면 담당자들이 며칠씩 부재한다는 것은 사실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점도 공감한다. 만일 여기가 한국이고 필자가 PM이었다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 휴가는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 사용하도록 양해를 얻고 그에 따른 보상을 별도로 제시하여 가급적 모두가 프로젝트 완수에 집중하도록 "관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다급한 상황이 발생하고 프로젝트 기간이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부담없이 자신이 원할때 휴가를 사용한다. 그것이 하루일 수도 있고 2~3일일 수도 있으며, 일주일 이상일 수도 있다. PM은 2주전에 미리 알려달라고 이야기를 할 뿐, 휴가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서서히 데드라인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일이 바쁜 것은 바쁜 것이고 휴가는 휴가인 듯하다. 전형적인 한국인 답게 처음에는 이러한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조금씩 납득이 되고 있다.


필자가 출근한지 얼마 안되었을때, 팔에 기브스를 한 젊은 남자 동료가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팔을 다쳤기 때문에 당분간 재택 근무를 하는 가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기브스를 풀었는데도 계속 매주 월요일에만 출근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날 같이 작업을 할 일이 있어서 따로 살짝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이가 어려서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내년 초까지 일주일에 하루만 근무하기로 했다는 것이 아닌가! 솔직히, 필자에게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남자는 물론 여자들도 제대로 육아 휴가를 쓰기 힘들고, 쓰더라도 여러가지 불이익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게다가 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말 그대로 "스타트업"임에도, 그와 상관없이 자신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근무 일을 줄이는 것을 존중해준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고 정말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도 벌써 청소년기에 돌입한 아이 둘을 키우는 입장이기에,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이들 인생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독일 회사는 법적으로 6개월간의 수습 기간(프로베차이트)을 두고 있다. 6개월 이내에는 쉽게 해고가 가능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 함부러 해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독일은 법적으로 근로자와 세입자의 권리가 막강하게 보장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때문에 회사는 직웝을 뽑는 것에 무척 신중하고 집주인은 세입자를 들이는 것을 무척 신중하게 처리한다. 따라서, 입사한 사람들은 6개월을 버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해고되지 않도록 더욱 신경써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도 근로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6개월 간은 휴가를 내지 않고 성심 성의껏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입사를 하고 회사 사내 시스템에 접속을 해보니 올해 사용할 수 있는 휴가 일수가 떡하니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이야말로 작심삼일의 좋은 예) 한 해의 중간 이후에 입사를 했음에도 그에 맞는 날짜만큼 휴가 일수가 계산되어 있었다. 그리고 입사한지 오래되지 않은 동료들도 휴가를 갔다오는 것을 보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과연 이것을 쓸수 있을까? 쓸수 있더라도 쓰는 것이 좋을까?


한참을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입사하는 과정에서 친해진(!?) HR 책임자에게 살짝쿵 메일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신청하는 방법 쉬우니 곧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HR 책임자가 바쁜 것 같아서 연락이 없길래, 직속 상관에게 역시 쌀짝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사내 시스템에 등록만 하면되니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보란다. 책임자들을 찔러보았는데, "안돼"라는 피드백이 없으니 더더욱 고민이 되었다. 비록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수습 기간 동안 쓰는 것은 뭔가 나에게 불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오랜 기간동안 쌓여온 선입견과 쓸데 없는 경험들이 알아서 발목을 잡는 상황이되어 버렸다. 현재 프로젝트 일정으로 보면 11월까지는 전시회에서 공개된 신제품의 베타 버전 완성을 위해 바쁠 것 같지만, 12월 중순 이후에는 휴가를 다녀와도 큰 문제는 안될 것 같아 보이는 것도 고민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차라리 12월까지 계속 바쁜 일정이 있었다면 미리 포기할텐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변 동료들을 찔러 보았다. 회사에서 나의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는 영국인 (정확히는 아이리쉬 남자) 아저씨에게 12월에 휴가를 갈 계획인데 어디가 좋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단번에 독일과 체코 국경에 있는 국립 공원이 짱이라고 추천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자신도 가족들과 다녀온 적이 있는데 정말 좋은 곳이고, 거리도 가까워서 좋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인 아저씨가 추천해준 곳은 베를린에서 약 4시간 정도 차를 몰고 가면 되는 곳으로, 드레스덴 보다 좀더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금방 독일-체코 국경이 나오고 거기서 좀만 더 가면 되는 곳이었다. 같이 일을 해서 가장 많이 친해진 이스라엘 친구(불과 며칠전에 7일 정도의 휴가를 사용해서 여자친구와 알바니아에 다녀왔다)도 같은 지역을 추천해주었고, 독일 내에서도 크베들린부르크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괜찮다고 알려주었다. 아니, 이사람들이 말리지는 않고! 신나게 여기 저기를 추천해주는 통에 더욱 혼란만 가중되었다. 주변 동료들에게 휴가지에 대한 조언을 듣다보니, 이 사람들이 정말로 많은 곳을 여행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결국 필자는 12월 마지막 2주를 체코에서 보내기로 결정하였고, 에어비앤비와 부킹닷컴을 통해서 숙소를 예약했다. 물론 사내 시스템을 통해서 휴가 사용 계획을 제출했고, 상관은 별다른 질문 없이 금방 승인을 해주었다. 어허, 이사람들아 난 아직 수습 기간 중이라고!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곳이라, 왕복 기름값과 숙박비, 여행 기간 동안의 여행 경비와 식비만 부담하면 되니, 처음에 독일에 올때 기대했던 유럽내 여행에 대한 장점(선택의 폭이 무척 넓음)을 실제로 느끼게 되었다. 베를린은 독일은 동북쪽에 치우쳐 있어서 차로 부담없이 갈 수 있는 나라라고는 폴란드와 체코, 덴마크 정도밖에 안되지만, 한 3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면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으로 갈 수 있다. 당분감은 돈도 아낄 겸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만 갈 계획이지만, 내년 겨울쯤엔 프랑스나 영국 여행을 계획하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한인 교회의 분들이 왜 애들 여름 방학에 맞춰서 한달씩 한국에 다녀오는지도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세상에, 한달씩이나 휴가를 가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고, 월급을 받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 아닌가.


여기서는 일을 하다보면 회사에는 항상 누군가는 안보인다. 단순히 휴가를 갔더나 이사 때문에 휴가를 냈거나 다양한 이유가 있을테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출근한 사람들끼리 자신들의 업무에 대해서 회의를 하거나 자신의 일에 집중할 뿐이다. 아무도 누가 언제까지 휴가인지도 모르는데, 한번은 나의 보스가 다른 직원이 언제까지 휴가인지 나에게 물을 정도였다. 때에 따라서는 명백히 그들의 부재가 업무에 지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현재 최대한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서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즉, 아무리 중요한 업무를 맡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며칠 또는 몇주 정도의 부재는 감당할 수 있어야 회사 조직이고 동료라는 것을 여기와서 느끼게 된다. 그렇게 푹쉬고 복귀한 사람이 새로운 마음으로 담당 업무에 더욱 집중하여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그것이 회사 입장에서나 개인 입장에서도 훨씬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서라도 이러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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