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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샴페인 May 18. 2020

쓰기의 말들이 내게 준 선물

은유의 <쓰기의 말들>은 내게 선물 보따리였다.

읽는 인간으로 살아온 시간이 앞에 5 자라는 숫자까지 다다랐다. 학창 시절에는 세상 온갖 고뇌는 모두 끌어당기고, 세상 모든 이들과의 사랑으로 잠 못 이루는 시간으로 글이라고 하긴 애매한 끄적거림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이미 다 자랐을 때는 그 고뇌도 사랑도 그 끄적거림과 같이 공중분해되어 이제는 나와는 다른 파동으로 날려 보냈다. 그나마 잡고 있는 것은 읽는 행위를 놓지는 않았다는 것...


은유 작가 역시  시작은 읽기로, 글쓰기는 독학으로 배웠다는 프롤로그에서 '아!  이거 내 얘기인데, 그럼 나도 은유 작가처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라는 기대로 첫 장을 넘겼다.


읽는 인간에서 이제는 쓰는 인간으로 진화를 결정하고, 브런치 창을 열고 글쓰기라는 것 앞에서 난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수진이었다. 그동안 꾹꾹 눌러 담은 그 많은 책 속의 문장들이 머릿속의 지우개가 다 지워 버리 것처럼 그 어떤 단어 하나도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도라지 백 뿌리를 심는다고 산삼 한뿌리가 나올 수 없다"같은 참조할 만한 문장을 메모했다. 반복적으로 쓰기만 한다고 필력이 길러지는 게 아니란 걸 받아들였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고 원고를 어서 끝내고만 싶고 그래서 애매한 표현 뒤로 숨으려 할 때는  "솔직할 것, 정확할 것, 숨김없이 투명하게 보여 줄 것, 모호하게 흐려선 안된다"같은 타협 없는 문장을 떠올리며 한 번 더 글과 씨름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쓰기를 자극했다는 저자의 말에 완전히 공감이 되지만, 난 아직도 저자처럼 내가 읽은 모든 문장이 쓰기의 말들로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안 쓰고, 안 쓰고, 안 쓰고'가 아니라 올곧이 나와의 시간과 만나고, 내 안에 나를 꺼내는 이 모진 작업을 품기로 한 이상 한 발짝이라도 걸음을 떼어야 한다.


글쓰기는 나만의 속도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안전한 수단이고, 욕하거나 탓하지 않고 한 사람을 이해하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난 작가가 여러 책에서 추린 왼쪽에 커다란 문장보다 오른쪽 빼곡한 저자의 글이 더 좋았다. 예를 들면


"노트북을 켠다. 하늘은 관대하나 화면은 단호하다. 이제 여기다 무엇 쓸 거냐고 노려보는 것 같다. "
"자기가 쓴 이상한 글을 봐야 하는 형벌을 면하려면 계속 다음 문장을 쓰는 수밖에 없다."
"빼곡한 글자를 만지는 일은 콩나물 한 시루 머리 땋는 일처럼 따분하다"
"글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 쓰는 것, 몸의 감각이 쓰기 모드로 활성화되고 도움닫기를 할 수 있는 밑 원고가 다져진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꽤나 물질적이고 구조적이다. 어떤 당위도 돌아오는 끼니 앞에 무색하다"
"좋은 글은 열 길 물속보다 복잡한 인간의 내면 풍경의 섬세한 결을 가르고 분할해 보여준다"
"견고한 단문의 성채는 행간의 힘이 좌우하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덧붙여야 할까 보다 단문을 쓰세요. 행간을 살리세요"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는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안 도로 그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 모든 문장들은 내게 선물 보따리이다. 다락방 구석 아무도 모르는 멋진 공간에 고이 모셔놓아 쓰는 행위에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 꺼내보아 한 시름을 달래 보는 그런 문장들이다.


오마이 시민기자로 도전을 시작하고, 글을 쓰고 나의 글이 채택되고, 혹은 안되고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하루 종일 좋은 글들을 찾아 읽는 버릇이 생겼다. 좋은 글에는 진정성이 있었고, 꾸밈이 없었고, 기발함이 있었다. 나의 눈에 세상 사람들은 다 똑같았고,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일상이 뭐 그리 다양하랴 했는데, 그 안에 분수처럼 품어 나오는 버라이어티는 그 영역이 가늠이 안되고 있다.


그 영역 속에 들어가기 위해 무어라도 해야 했고, 무얼 해야 할지 몰랐을 때 은유 작가의 이 책은 내게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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