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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뇽안뇽안늉 May 19. 2024

소개팅이 또 끝났습니다

소개팅이 끝난 후의 짧은 단상

봄은 좋은 계절이다. 겨울에 태어났지만 겨울의 추위를 지극히도 싫어하는 나로서는 살살 피어오르는 봄의 온기와 ‘만물이 생동하는’ 기운이 참으로 반갑다. ‘새로움’, ’시작‘과 같은 단어들이 잘 어울리거니와,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자유로운 야외 활동을 약속할 수 있는 따뜻한 계절이다. 약간 쌀쌀하지만, 싸늘한 법은 없어서 봄밤의 바람은 마냥 불어와도 반갑기만 하다. 겨울에 비해서 해가 빨리 저물지 않기에, 그 볕을 오래 누릴 수 있는 것도 좋다. 여러모로 따스한 계절이라 마음도 말랑말랑해지고는 한다.


계절이 따스해지자, 감사하게도 주위 지인들이 소개팅을 제안해 주셨다. 혼자도 좋지만 아무래도 꽃구경은 둘이서 하는 것이 더 낭만적이지 않겠느냐며. 무엇보다 연애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봄일 것이다. 그렇게 올봄, 몇 번의 소개팅을 하면서 익숙한 감정을 다시 느꼈다. 이를 테면, 다음 스텝을 기약하기 어려운 한 차례의 만남이 끝났을 때 밀려오는 헛헛함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소개팅 경력(?)이 쌓일수록 허탈감의 정도는 이전보다 옅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태연하기는 어렵다. 거절하고 때로는 거절당하는 익숙한 사이클을 다시 경험하면서, ‘또 시작되었구나’ 하는 약간의 반가과 함께 헛헛해지고, 또 허무해진다.

소개팅이란 상대를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인위적인 만남’ 이기에 상대가 상대를 보는 관점 또한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 네가 나를 잘 알지 못하고 내가 너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상대는 몇 살인지, 인상은 어떤지 (주로 사진),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외적 요소들만 선택적으로 확인한다. 그래서 실제 만났을 때는 기대했던 이미지와 달랐던 경우도 있고 (나 또한 그렇지만!), 대화를 통해서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를 확인하며 기약 없는 안녕을 고하는 게 일반적인 소개팅의 패턴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자연스럽게 만났다면 상대에 대한 인상이 매우 달랐겠지만, 일단 소개팅과 같은 목적성을 지닌 만남에서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머릿속으로 판단을 하는 상황에서 모든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상대의 행동, 말투, 표정 등등을 ‘평가하는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삶의 환경과 배경지식이 다른 두 사람이 자신의 기준으로만 상대를 평가하면서 성공 확률은 낮아진다.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더욱 그렇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나름의 궤적을 그리며 가치관을 정립해 왔기에 ‘나의 기준’은 더욱 공고해진다. 게다가 사회생활로 인한 피로도가 쌓일수록 외적인 일들에 에너지를 줄이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소개팅에서 또한 그의 일환으로 상대에 대한 판단에 더욱 속도를 올린다. 대화 몇 마디 나눠보면 이제 상대를 알겠다는 일종의 오만함도 한몫한다.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을 다치기 싫어서 등등의 이유로 내 마음을 곧이곧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유약함 또한 해가 갈수록 심해진다. 그렇게 끝나는 한 번의 소개팅은 기대감, 허무함, 공허함 등 여러 가지 마음을 남기면서 끝난다. 이처럼 헛헛한 만남의 순환고리를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여자대학교를 졸업한 이성애자라,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기에는 상황상 어려운 구석이 있었으므로 꽤나 이른 시기부터 인위적인 연애 시장에 나섰던 탓이다. 열 번 해야 한번 잘될까 말까 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왜 끝끝내 소개팅에 나서는 걸까?

각자의 우선순위에 따라 삶의 중요한 요소가 결정되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일’과 ‘사랑’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기에 따라서 두 가지 요소의 우선순위가 달랐던 적은 있지만, 나의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이 두 가지였던 것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일에서의 성취도 내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했지만, 성취를 달성하는데에서 오는 필연적인 스트레스를 약화시키는 것은 만족스러운 관계였다. 이 두 가지가 상호 보완적일 때 인생의 행복감을 맛보기도 했다.

인연이란,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지난할수록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드라마 대사나 노랫말에 이런 말이 나오겠는가. ‘너를 만나기 위해 수많은 이별의 과정을 거쳤나 봐………’ 느끼하지만 공감 가는 구석이 있다. 드디어 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만남을 시작할 때에는 그 이전 지나온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지 않는가? ‘내가 너를 만나려고…!‘라는 식의 서두 말이다. ‘사랑꾼‘ 수준은 결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솔로>, <돌싱글즈> 같은 연애 프로그램이 시대를 불문하고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 또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의 중요성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개팅이라는 지난한 만남에 동참한다.  일과 연애할 마음은 추호도 없기에, 아직 만나지 않은 누군가에게 기꺼이 나의 ’프사’를 건넨다. 우리 부모님은 어제도, 오늘도 축의금을 낸다며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건네시지만 동요하지 않겠다. 그리고 일상에 기대감 한 스푼 더하는 헛헛한 만남을 즐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지속하겠다. 비록, 그 ‘인연’이라는 것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일만 하며 보내기에는 ‘봄’이라는 계절이 너무 아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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