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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Sep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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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창작 주제: 같은 음악 듣고 릴레이 희곡 쓰기

   

노래를 쓴 사람의 10분



등장인물

 - 수빈: 한샘의 딸, 15살, 고등학생. 

 - 한샘: 수빈의 아빠, 42살, 유명 작사가. 

때: 이른 아침.  

곳: 수빈과 한샘 네 집, 거실.          




 조명이 켜진다. 모던한 거실이다. 무대의 뒷면으로 현관이 나 있다. 그 옆으로 창문도 있다. 무대의 오른편에는 한샘의 방으로 통하는 문이 달려 있다. 왼편의 문은 수빈의 방으로 통한다. 수빈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잠옷에 카디건만 걸친 차림이다. 현관 벽에 기대는 수빈. 가슴에 어떤 종이를 꼭 대고 그대로 서 있는다. 작게 숨을 내쉬는 수빈. 그때 한샘의 방에서 꽝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수빈 곧 한샘의 방 쪽을 흘긴다. 터덜터덜, 자기 방 쪽으로 걸어가는 수빈. 오른쪽 방문 열리고 한샘이 나온다. 길고 고급스러운 가운을 걸치고 머리에는 MP3에 연결된 헤드셋을 끼고 있다.

     

한샘    놀랐지?

수빈    문소리 안 내려고 했는데.

한샘    까다로운 작업이라. 싫어도 해야 하는 종류.

수빈    오늘이 마감이시랬죠?     


 소파에 앉는 한샘. 한숨을 쉬며 헤드셋을 그 앞 탁자에 벗어 놓는다.     


한샘    엉터리 곡이라도 데드라인엔 철저하네.

수빈    (꾸벅이며) 고생하세요.     


 수빈 자신의 방 문고리를 잡는다.     


한샘    나갔다 오나보다?

수빈    네, 그냥. (슬며시 종이를 뒤로 감춘다.)

한샘    손에 든 거는? 봐봐.

수빈    이따가요. 아빠 곡 작업 다 끝나시면요.

한샘    (보더니) 누가 보면 내가 되게 예민한 사람인 줄 알겠다.     


 수빈 머뭇머뭇 종이를 한샘에게 건넨다.     


한샘    글쓰기 소모임. (웃으며) 너답다, 고작 이런 걸 숨겨?

수빈    그럼 괜찮은 거예요?

한샘    내 딸이 다른 데서 글을 배우는 게 아이러니하긴 한데,

수빈    그, 친구들끼리요. 합평.

한샘    아빠는 찬성.

수빈    정말요? 아니. 감사합니다. (인사하며) 아빠도 작업 마무리 잘 하세요.

한샘    그런데 입부신청서를 집 앞까지 와서 줬어? 이 아침에?

수빈    그, 모임장 언니가 근처에 살아서.

한샘    언니 누구? 편하게 입고 나갔네, 아빠도 아는 사람인가?

수빈    저, 그게.

한샘    (일어나며) 아니다. 어차피 골목도 달랑 하나인걸.     


 한샘 무대 뒤 창가로 가 선다. 밖을 내다본다.     


한샘    쟤 앞집 미영이 맞지?

수빈    네?

한샘    외출복이네, 쟤가 올해 17살이랬나? 치마가 왜 이렇게 짧아? 저거, 이제야 집에 들어 가는 거네. 

            (수빈 돌아보며) 그 길에 너한테 들린 거고.

수빈    (고개 숙이고)...근데 언니는 공부도,

한샘    저 언니가 멋있어 보여?     


 사이.     


한샘    저런 애들은 오래 못 가.

수빈    (보는)

한샘    왜 우리 주택가엔 미영이 같은 애가 별로 없을까?

           짧은 치마를 입는 애도, 이렇게 해가 밝아서야 집에 들어가는 애도 말이야. 

           그런 애들은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아서야.

수빈    그게 무슨,

한샘    쟤도 곧 제 발로 나갈 거야. 늦어도 내년 안에. 

           그리고 영영 못 돌아오겠지, 자기한테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세상에 이미 속해버렸을 테니.

수빈    언니는 가출 얘기는 한 적 없어요. 그리고 떠난다고 해도.....

한샘    떠난다고 해도, 뭐?

수빈    (작게) 언니는 어디서든 멋있을 거예요.

한샘    우리 딸이 쟤를 단단히 숭배하는 모양이구나. 좀 의왼데.

수빈    저는 그냥,

한샘    아빠는 기뻐. 너 이렇게 자기주장 할 수 있는 애가 아녔잖아.

수빈    그건,

한샘    해명하라는 말은 아니었어. 아무튼 글쓰기 모임은 안 되겠다.

수빈    허락하신다면서요?

한샘    그거야 어떤 단체인지 몰랐을 때 얘기이고.

수빈    지금 이거 편견이에요.

한샘    글쓰기 프로그램 뭘 하는 데니? 뭘 읽고? 스터디원 간의 공통의 목표는 뭔데?

수빈    그건 아직...

한샘    거 봐. 내가 무조건 그만두라는 줄 알아?

수빈    차차 정해 갈 수 있어요.

한샘    수빈아. 나 네가 하려는 일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그런 종류의 부모 아니야.  

            하지만 또래끼리라는 분위기에 취해서 일단 모이고 보는 거잖아. 

            이미 어떤 언니가 멋있네 마네 서열관계도 있고. 

            너보다 한두 학년 높은 애들 글을 무조건 추종하는 게 난 오히려 독이 될 거라 생각하는데?

수빈    추종 같은 게 아니에요. 그냥 만나서 글을 돌려 읽고,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사나보다, 

한샘    노는 목적이면 차라리 화끈하게 놀아.

수빈    (보는)

한샘    너희 엄마랑 아빠 얘기 전에도 했었지? 처음 만난 날, 같이 여행까지 하게 된 거.

수빈    알죠.

한샘    프랑스 파리를 발 닿는 대로 걸어 다니면서, 

         간판이 가장 파격적인 가게로 무작정 들어가 음식을 시키고.    

         나야 유학생이었다지만, 너희 엄마는 그날이 파리의 첫날이었대. 

         그런데도 어쩜 그렇게 제 동네 다니듯 앞장 설 수 있었는지.

수빈    글쓰기 모임이랑 관련 없잖아요.

한샘    네 엄마는 내면에 불꽃이 있는 여자였어. 네가 엄마의 반만큼이라도 스스로 타오르는 법을 알았다면.

수빈    아빠.

한샘    넌 좀 더 가이드가 필요한 아이야. 소모임은 안 돼.

수빈    미영언니도 엄마랑 똑같아요.

한샘    그게 무슨 소리니?

수빈    엄마도 밤새 밖을 돌아다닌 거잖아요. 그것도 모르는 남자랑 같이.

한샘    지금 네 엄마를 뭐라고 말하는 거니?

수빈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냥 나나, 미영언니나, 엄마나 원하는 건 그저, 저는 셋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전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한샘    네가 네 엄마를 어떻게 안다고.     


 사이.       


한샘    미안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어.

수빈    저도 아빠를 자극할 생각은 없었어요. 엄마와 관련된 추억이야, 아빠가 훨씬 많겠죠.

한샘    (마른세수를 하며)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예민해진 것 같구나. 이게 다 저 멍청한 곡 때문이야.

수빈    저 마저 얘기하자면요,

한샘    아무래도 나가봐야겠다.

수빈    지금이요?     


 한샘 가운을 벗고, 방에서 외투를 찾아 나온다.     


한샘    (팔을 꿰어 넣으며) 그래. 저 작업 못하겠다고 이번엔 직접 찾아가서 말해야겠어.

수빈    하지만, 혹시 저 때문이라면,

한샘    (수빈 뺨에 손을 대며) 그럴 리가 있겠니. 돈 때문이라도 싸구려 댄스곡을 받는 게 아니었는데.

수빈    아빠, 저 꼭 할 얘기가 있는데요.     


 한샘 현관을 나선다. 수빈, 한샘의 팔을 붙잡는다.     


수빈    아빠. 저 글쓰기 소모임. 그냥 분위기에 취해서 들려던 게 아니에요.

한샘    그 얘긴 끝났어.

수빈    미영언니 때문이에요. 저 언니가 좋아서, 구체적인 계획이랑 상관없이 언니랑은 뭘 하든 재밌어요.

         아마 엄마도 그랬을 거예요, 아빠랑 뭘 하든 재미있었으니까 그래서 시간을 자꾸 같이 보냈을 거라고요.

한샘    아깐 추종하는 거 아니라며.

수빈    추종이 아니라, 좋아한다고요. 언니를.     


 사이. 한샘 웃음을 터트린다.   

  

한샘    (수빈 빰에 손을 대며) 어설픈 투정은 그만 부려.

수빈    진짜 그렇게 느껴요. 아빠도 여자였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한샘    (고개 저으며) 그 여자도 자꾸 그러더라. 곡에 여자들의 진짜 감정을 담고 싶다나.

         (걸어가며) 개뿔 자기가 뭘 안다고.


 한샘 그대로 퇴장한다. 한샘 나간 문을 한참 바라보는 수빈. 수빈 탁자에 놓인 헤드셋을 들어 그대로 던져버린다. MP3와 헤드셋이 분리돼 가사가 없는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신디 로퍼의 <Girls just wanna have fun>. 수빈 MP3를 바라본다.     


수빈    여자 작곡가였어. 여자들의 진짜 감정. 여자, 들의. 여자, 들.


 수빈 급하게 소파에 앉는다. 카디건 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낸다. 주변을 살피다가 쥐고 있는 종이를 본다. 입부 신청서의 뒷면이 보이게 뒤집는다. 수빈 급하게, 망설이며, 또박또박, 다시 막힘없이 글자를 적어나간다. 음악소리 커지며, 조명이 꺼진다. 

               

- 막 -






I come home in the morning light 

난 이른 아침에야 집에 들어왔지

My mother says "When you gonna live your life right?"

엄마는 말했어, "너 언제 제대로 살래?"

Oh mother dear we're not the fortunate ones

오 엄마, 우린 복 받은 세대는 아니잖아요. 

And girls they want to have fun

그리고 여자들은 그냥 재미를 원할 뿐이라고요. 

Oh girls just want to have fun 

오, 여자들은 그냥 재미를 원해요.

The phone rings in the middle of the night 

전화가 한밤중에 울렸지

My father yells "What you gonna do with your life."

아빠는 소리쳤어, "네 인생을 가지고 뭘 하려고 그러니." 

Oh daddy dear you know you're still number one 

오 아빠, 그래요 아빠가 짱인데요

But girls they want to have fun

하지만 여자들은 그냥 재미를 원할 뿐이라고요. 

Oh girls just want to have That's all they really want Some fun  

여자들은 단지, 재미를 진짜 진짜 원해요.

When the working day is done Girls - they want to have fun 

일과가 끝나면 여자들은 재미를 원해요.

Oh girls just want to have fun 

오 여자들은 단지 재미를 원해요.

Some boys take a beautiful girl 

어떤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데려가요

And hide her away from the rest of the world 

그리고 나머지 세상에서 그녀를 숨겨버리죠

I want to be the one to walk in the sun 

난 태양 아래 걸어나가는 사람이 될래요

Oh girls they want to have fun 

오 여자들은 재미를 원해요

Oh girls just want to have That's all they really want Some fun 

여자들은 단지, 재미를 진짜 진짜 원해요.

When the working day is done  Girls - they want to have fun 

일과가 끝나면 여자들은 재미를 원해요.

Oh girls just want to have fun, 

오 여자들은 단지 재미를 원해요

They want to have fun,

그들은 재미를 원해요, 

They want to have fun...

그들은 재미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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