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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Sep 24. 2021

닫힌 공간, 깨진 공간

다락방의 미친 여자

  어느 순간부터 드라이브를 하자는 남자를 따라 나서지 않는다. 막연히 철이 들어서 생긴 변화라 생각했다. 더 이상 낯선 남자가 나를 아무 연고도 없는 외딴 공간으로 이끄는 행위를 낭만적으로 상상하지 않는다. 그만큼은 불친절한 세상의 논리를 깨우쳤다고, 그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 역시 조금은 변화해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당시의 많은 여성작가들의 소설에서 ‘마차’라는 소재가 활용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마차의 고삐는 오직 남성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기에, 여성 인물들은 그 행선지를 제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이동권이 박탈당한 당시 여성들에 관한 분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차 그 자체를 또 하나의 감금소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대식으로 바꾸면 주로 남자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이에 해당하리라.

 

  대화를 이어가는데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랐다. ‘맞다. 나도 그런 적 있었어. 낯선 남자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나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뺏겨 공포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나는 나의 경험이 함께 논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좀 더 솔직하게는 그저 놀란 마음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에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25살 때쯤의 일일 것이다. 당시 나는 나의 성별정체성에 부합하게 (어쩌면 지나치게 경직된 기준에 맞춰서) 소위 ‘여성복’을 입고 외출을 나서는 일을 즐겼다. 낮에는 나의 외모적인 차이들이 더 눈에 띌까봐 주로 밤 외출을 나섰고, 하필 그날도 밤이었다. 메신저로 연락하던 한 남자가 나를 집까지 태워준다고 하기에 그를 기다려서 차를 얻어 탔다. 처음에야 나도 좋았다. 승차 장소는 학교 앞이라 그래도 유동인구가 있었고, 실은 나도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는 것보다는 내가 트랜스젠더임을 아는 자의 차에 타는 게 여러모로 더 편했으니까.


  남자는 ‘드라이브를 하자’며 내 집을 지나쳐 한 공원의 입구로 들어갔다. 말이 공원이지 뒤로는 산에 접해있던 그 공간은 밤에는 완벽한 오지에 다름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있었고, 주변을 샅샅이 훑어봐도 나와 그 외의 통행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완전히 그 사람의 차 안에 갇혀버린 셈이었다. 그제야 어떤 실감이 들었다. 그가 곧바로 성적인 요구를 해왔고, 나는 모텔이 아니라 싫다는 식으로 응수했다. 실은 나를 두렵게 하는 그가 싫었지만, 이를 솔직히 말했을 때 나에게 어떤 보복이 가해질지 두려웠다.


  ‘차에서도 입으로 해줄 순 있잖아.’ 이상하게도 그 워딩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놀랍게도 그는 차나 모텔이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공간임을 제 입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지금 이곳이 숙박업소와 다르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실감하던 중이었다. 물론, 그가 의도한 의미대로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 두 공간에서 모두 그가 자신의 젠더 권력을 마음껏 행사할 수 있음이 두려웠다. 그 폐쇄성이, 내가 고삐를 쥘 수 없는 그 편파적인 상황이, 차라고 결코 다르지 않았었다.

 

  그때 내가 어떻게 반응했던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그때는 그저 내 ‘정숙함’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 편이 나를 덜 막대하게 만들 거라는 이상한 판단에서였다. 한편으로는 상황을 어떻게든 웃음으로 넘어가려 애썼다. ‘으악. 만지지 말아요.’ ‘왜?’ ‘하하. 신고할 거예요.’ 그때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가 신은 검은 스타킹을 한 번 쓸었던가. 당시가 초여름이었으니 확실히 날씨에 안 어울리는 복장이기는 했다. 하지만 남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주체할 수 없는 색골이라서 그렇게 입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마음대로 다리털을 밀어버릴 수 없어 나름대로 고안해낸 코디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그 사정을 설명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나의 온갖 제스처들이 그의 생각을 바꿀 힘이 있었는지도 지금에 와서는 의문이 든다. 애초에 상대를 ‘천사’와 ‘마녀’로 구분지어 생각하는 권력이 오직 남자에게만 부여된다면, 결국 판단은 그의 마음대로 내려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자신의 페티시를 묘하게 자극하는 트랜스젠더는 이러나저러나 미친 여자다. 폭력을 당해도 싼 존재들이다. 

 

  다행히 장난 식으로나마 ‘경찰’을 운운한 것이 그의 마음을 흔들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는 나를 조르던 것을 멈추고, 갑자기 자신이 예전에 겪은 한 트랜스젠더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그 트랜스젠더는 나와 다르게 금전적 보상을 약속하고 만났는데, 막상 나갔더니 사진과 그녀가 너무 달랐다. 자신보다도 키가 컸다. 결국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걔’가 자기 지갑에서 부득불 돈을 빼가려 해서 육탄전이 벌어졌다. ‘그놈’을 아주 피가 떡이 되게 패 놨다. 후에 경찰이 왔는데, 어떻게 됐는지 아느냐?

 

  거기까지 듣는데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지금 이거 내 이야기다. 금전적 피해 여부나, 키가 조금 더 크고 작고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를 여기까지 태워다 준 노고도 이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선 굉장한 빚처럼 포장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제인 에어에게 버사의 큰 키에 관해 묘사하던 로체스터의 언어를 마주할 때 다시금 이 때의 상황이 생각났다. 그때 제인 에어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이전에 만났던 트랜스젠더를 악마적으로 묘사하는 이 남자의 말에 나는 꼭 나에 대한 경고를 듣는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더욱 끔찍한 것은 바로 그 이후에 이어진 이야기들이었다.

 

  경찰서에 가서는 그 트랜스젠더가 남자에게 돈을 돌려주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졌다고 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듣기론 그 트랜스젠더는 남자에게 맞아 이도 몇 개가 나갔다고 했는데……. 남자가 경찰서를 나설 때, 역시 남성인 경찰이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떻게 저런 거랑 엮이셨어요.’ 이상하게도 이 워딩 역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나는 결국 아무 일 없이(?)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내가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무엇이 이런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단순히 그가 자신의 무용담에 취해 있는 동안 성적인 흥분이 가라앉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나는 명백히 그가 나를 협박하기 위해 꺼낸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그걸 모르는 척 하려고 애썼다. 과거의 그 키가 산만한 트랜스젠더와 나는 전혀 다른 경우인 듯 시치미를 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넌 착한 애 같으니까.’ 그는 대충 이런 말을 하며 상황을 마무리시켰다. 내게 집까지 태워다 준다고도 했지만, 나는 이를 거절하고 나서야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집까지 꽤나 먼 길을 터덜터덜 걸어가면서도 마음이 답답했다. 만약 나와 그의 사이에도 일이 어그러져 경찰을 부르게 됐다면 어땠을까? 법의 잣대는 온전히 나의 입장을 들여다 봐줬을까? 간신히 차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어딘가 갇혀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얼굴이 피 떡이 된 그 트랜스젠더의 사례가 언젠가는 내 경우가 될 것만 같았다. 

 

  격정적인 사건이었지만 집에는 그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늦은 척 하고 들어와 조용히 침대에 누웠다. 집에 들어가기 전 공중화장실에 들러 화장을 지우고, 가방 속 반바지를 꺼내 입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의 고삐를 놓친 드라이브가 결국엔 일주로 끝났다는 사실에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고 나니 새삼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화장을 지우는 건 잊지 않았다니, 나는 그 남자의 최종판결만큼 착한 아이는 아니었던 걸까? 오랜 시간 그 사건을 잊고 지내다가 다시 글감으로 삼는 나는, 그야말로 미친 여자인 걸까?



본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에 선정, 지원을 통해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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