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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y 19. 2023

4. 나는 딸이니까

우울증은 가족도 힘들게 한다

2018년 12월 말, 나는 베트남 후에에서의 파견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동안 엄마 옆에서 언니와 아빠가 고생했으니, 이제 내가 엄마를 많이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딸이니까. 게다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의지가 되는 가족이고 말이다.


"엄마 생각나서 이거 사 왔어. 맛있어할 것 같아서."


"내가 오늘 집 대청소 했어. 완전 깨끗하지?"


"오늘 저녁은 내가 요리할게. 갈비찜 할 거야!"


엄마는 내가 직접 요리를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 주면 정말 고마워했지만 맛있게 먹지는 않았다. 무엇을 먹어도 입맛이 없다며 더 우울해했다. 내가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하면 고마워하면서도 자기가 힘이 없어서 집안일을 못해 내가 고생하는 거에 미안함을 느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엄마에게는 소용이 없는 것 같았고 오히려 더 엄마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엄마는 기분이 우울한 이유가 뭐야? 허리는 많이 좋아졌고, 외할머니 돌아가신 것도 2년이나 지났잖아. 우리 가족도 별 문제없고... 혹시 또 안 좋은 일이 있었어?"

"아니야. 일 없었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바보가 된 것 같아."


나는 엄마 기분 전환도 할 겸 둘만의 오붓한 시간도 보낼 겸 한 번도 가지 않은 목포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로 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갔다. 기차를 안 탄 지 오래되었던 엄마는 오랜만의 기차 여행에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목포에 가서 유달산을 오르고, 박물관에 가고, 옛날 일제강점기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거리를 걸었다. 우리는 계속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옛날 추억, 전에 외가 식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던 일, 아빠 이야기, 목포 이야기 등등. 엄마가 이렇게 오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저녁으로는 연어 덮밥을 먹었는데 엄마는 정말 맛있어했다. 그전에 청주에 있는 맛집에서 엄마와 같이 연어 덮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엄마는 억지로 먹었던 그때와 달리 진심으로 맛있게 드시는 것이었다. 행복하고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목포에 다녀온 이후에 엄마의 상태는 그전보다 좋아 보였다. 여전히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 잔다고 하고 우울해하고 입맛이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웃는 일이 늘었다. 아빠도 내가 귀국한 이후로 엄마 상태가 확실히 좋아졌다고 했다.


나는 귀국하자마자 대학교 한국어학당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대학교 한국어학당은 해외 경력보다 국내 경력을 우선시하는데, 나는 그때까지는 해외 경력밖에 없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합격했고, 두 달 후에 집 근처 대학교에 또 지원했는데 거기도 합격했다. 언니도 일 잘하고, 동생도 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리고 교수님의 적극 권유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장학금과 연구비를 받고 공부했다. 아빠는 무뚝뚝하긴 해도 엄마를 여러 모로 챙겨줬다. 우리 가족은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엄마에게 좋겠다며, 부럽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리고 나처럼 엄마의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울해할 이유가 없다며, 지금 복 받은 삶을 살고 있는 거니까 좋게 좋게 생각하고 안 좋은 생각은 버리라며.


다행히 엄마는 점점 괜찮아지고 있으니 앞으로 이렇게만 지내면, 내가 옆에서 엄마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주면 우울증도 완전히 없어지겠지 싶었다. 안타깝게도 그건 완전히 착각이었.


시간이 지나고 엄마의 우울증은 다시 심해졌다. 시작은 언니였다. 언니는 월급은 적은데 일은 너무 많고, 민원인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심했다. 게다가 개인적인 문제로도 힘들어해서 엄마는 언니를 많이 걱정했다. 언니가 불쌍하다며 우는 일도 많아졌다. 그런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내가 던진 긍정적인 에너지는 나에게 상처로 돌아왔다.


"엄마! 나 OO학원에 지원했는데 합격했어! 대학교 일이랑 같이 하면 힘들겠지만 그래도 여러 군데서 경험하면 나중에 도움이 되니까 힘들어도 해 보려고. 엄마 둘째 딸은 지원만 하면 합격이네?"

"하... 너는 이렇게 잘 되는데 우리 △△(언니)는 왜 이렇게 힘든 거야. 흑흑흑..."


'어? 내가 잘 된 게 엄마를 더 슬프게 한 건가? 나라도 문제 없이 잘 살면 엄마한테 힘이 되는 거 아니었어? '우리 △△는'이라니... 엄마한테는 역시 언니가 더 소중한 건가. 하긴, 옛날부터 언니는 장녀니까, 동생은 막내니까 더 신경 썼지. 나는 그냥 대하기 편한 딸이었고. 아니야. 엄마가 지금은 우울증이라 그런 거야. 내가 이해해야지. 그래야지.'


엄마는 매사를 부정적으로 봤다. 잠을 오래 자면 오래 자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잠을 잘 못 자면 못 자서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잠을 적당히 자도 이러다가 또 잠을 못 잘까 봐 불안해했다. 몸무게가 1kg이 늘면 살이 쪘다고, 1kg이 빠지면 살이 빠졌다고, 그대로 유지되면 다행이긴 한데 빠지거나 찔 까봐 불안하다고 했다. 날씨가 좋으면 날씨는 좋은데 기분이 우울해서 싫다고 하고, 날씨가 안 좋으면 기분도 안 좋은데 날씨까지 안 좋아서 싫다고 했다. 더우면 땀이 난다고, 추우면 춥다고 불안해했다.


"나 몸이 이상하게 추워."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 추워서 옷 껴입은 거 안 보여? 추우면 옷을 더 걸치면 되지."

"그럼 땀이 나고 답답해서 싫어."

"대체 어쩌자는 거야?"


기운이 너무 없다고 영양제와 한약을 종류별로 주문해서 먹었는데, 그렇게 먹다가 간에 무리 오는 거 아니냐 걱정하면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배가 고프면 고프다고 심하게 불안해하고, 배가 부르면 불러서 싫다고 했다. 저녁 먹을 때만 되면 엄마는 밥 때가 됐는데 배가 안 고프다고 한탄했다. 1시간 전에 배 고픈 게 싫다고 빵이랑 떡을 먹었으니 당연한 건데 말이다.


"밥 먹기 전에 간식을 안 먹으면 되잖아."

"그럼 허기지잖아. 허기지면 불안하고 손이 떨린다고. 넌 이해 못 하지?"

"근데 그렇게 먹으면 지금 이 시간에 배가 안 고픈 게 당연한 거잖아. 엄마가 원하는 상태가 뭐야?"

"나도 몰라. 나한테 그냥 신경 쓰지 마."


나와 언니는 엄마에 대한 불만이 나날이 늘어 갔다. 아빠도 답답해했지만 우리한테는 엄마가 우울증이니 이해하자고 했다. 그래도 내가 베트남에 있을 때보다 지금 상태가 더 낫다고 했다. 그럼 내가 베트남에 있을 때는 얼마나 심했다는 건가. 아무튼 나는 계속 참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어두워진 집안 분위기를 다시 밝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김치 너무 맛있다. 김치하고 밥만 먹어도 맛있어."

"... 넌 좋겠다. 그렇게만 먹어도 맛있어서. 난 뭘 먹어도 맛이 없어."


"오늘 날씨 진짜 좋은 것 같아. 기분 좋아서 놀러 나가고 싶다."

"나도 너처럼 기분 좋았으면 좋겠다. 난 왜 좋은 날 기운이 하나도 없을까."


"아~ 나 오늘 진짜 잘 잤어."

"부럽다... 나도 한 번이라도 잘 잤으면 좋겠어."


'집에서 나는 잘 먹어도 안 되고 기분 좋아도 안 되고 잘 자서도 안 돼, 엄마한테 티를 내면 안 돼. 왜냐하면 그건 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는 건 엄마를 더 힘들게 하니까.'


나는 친구들하고 직장 동료들하고 있을 때도 습관적으로 맛있다, 좋다, 행복하다 등의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는 편인데, 집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실수로라도 내뱉으면 엄마의 표정은 더 우울해졌다. 이런 날이 몇 달 동안 지속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의 영향으로 나도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고 표정도 점점 어두워졌다. 엄마에 대한 섭섭함이 원망으로 자라는 것 같았다.


'엄마 때문에 나도 힘들어!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엄마가 미워.'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우리 삼 남매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속상해하고 밤새 간호해 주고,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따뜻한 밥 챙겨 주고, 얼마나 우릴 사랑해 줬는데 겨우 이런 일로 원망하다니! 아픈 엄마를 이해하고 도와줘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이런 거 하나 이해 못 하고 니가 그러고도 딸이야? 이러면 안 되잖아 이 나쁜 X아!'


이렇게 나는 엄마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할수록 내 자신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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