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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y 20. 2023

5. 엄마 제발, 제바알!

우울증은 가족도 힘들게 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의 울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야 했다. 엄마가 매일 울기 시작한 이유는 평소 엄마가 아끼고 걱정하던 어떤 사람이 불쌍하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그때 한창 힘들 시기이긴 했지만, 우리 가족은 그 사람 때문에 매일 우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도 아닐뿐더러 극단적으로 안 좋은 상황이 아니었고, 당사자도 자기는 잘 살 거라고 했는데 엄마는 그 사람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매일 울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건 엄마의 망상이라고 달래도 보고 화도 냈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자신을 이해 못 하는 다른 가족에게 섭섭해하기만 했다.


이런 엄마와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나였다. 엄마는 8시 가까이 돼서 일어나고 언니와 아빠는 그전에 출근을 했다. 하지만 나는 8시 30분에 출근했다. 그리고 대학교 한국어교육센터 수업은 하루 최대 4시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퇴근 시간도 빨랐다. 전에 합격했던 학원은 시간이 안 맞아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는 오전 11시부터 하루 4시간만 일을 했다. 나는 아침에 엉엉 우는 엄마를 달래고, 집에 와서 또 울고 있는 엄마를 달래야 했다. 하지만 너무 답답했던 건, 엄마가 이렇게까지 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거였다. 전에 울 때는 그래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머릿속으로는 '엄마는 우울증이니까'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되어 화가 나고 울분이 올라왔다.


원래 야근이 잦았던 언니는 야근을 더 자주 했다. 야근이 없으면 친구나 남자친구를 만나고 밤에 왔다. 언니에게 혹시 엄마 때문에 일부러 늦게 오는 거냐고 하니 솔직히 그런 면도 있다고 대답했다. 나도 수업이 끝나고 일부러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들어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언니처럼 늦게까지는 아니었는데, 아빠에게 엄마를 전적으로 맡기기는 게 걱정이 되어서였다. 이러다가 아빠마저 우울증에 걸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매일매일을 엄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다.


이렇게 며칠이 되고 몇 주가 되자, 우리 가족은 웃음을 잃었다. 나는 '엄마에게는 힘들어하는 가족들은 보이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동시에 나에 대한 자책도 심해졌다.


어느 일요일, 최소한 내일 하루만큼은 아침에 엄마 우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교회에 갔을 때, 나는 집을 나가며 아빠에게 부탁했다.


"아빠 나 아침에 우는 소리 안 듣고 싶어. 다음 주만큼은 엄마 우는 걸로 시작 안 했으면 좋겠어. 엄마한테 무릎을 꿇고 빌고 싶을 정도야. 제발 내일 아침은 울지 말라고 전해 주면 안 돼?"


내가 직접 말하면 절대 좋은 말이 나가지 않을 것이고, 또 엄마가 우는 모습을 봐야 하니 아빠가 말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아빠는 알겠다고, 엄마한테 잘 말해 보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아빠와 이야기를 잘한 건지 엄마는 다행히 울음을 참았다. 나는 자기 전에 알람을 6시에 맞춰 놨다. 엄마가 일어나기 전에 출근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럼 엄마가 우는 소리를 듣지 않겠지. 내일만, 제발 내일만큼은 그냥 지나가길 바랐다.


불행히도, 나를 깨운 것은 알람 소리가 아니라 엄마가 우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잠을 깨는 순간, 내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절망스러웠다. 나는 그토록 바랐던 아무 일 없는 월요일 아침을 절망에 빠지는 걸로 시작해 버렸다. 가슴 한 가운데를 비트는 느낌, 알 수 없는 존재가 내 목을 조르며 바다 속으로 빠르게 끌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엄마 제발, 제바알!"


식탁에 앉아 울던 엄마는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내가 오늘만큼은 그러지 말라고 부탁했잖아, 그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었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에!"

"아니 나는 아빠한테 네가 아침에 나 우는 소리를 안 듣고 싶어 한다고 들어서 너 일어나기 전에 -"

"나도 이제 못 견디겠어. 아아아아!"


나는 충격받은 엄마를 뒤로 한 채 빠르게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벗어났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숨이 막혔다. 가슴이 꽉 옥죄이는 것처럼 답답했다. 학교에 가서 수업은 할 수 있는 건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수업을 할 때와 동료 선생님들과 이야기할 때는 그러지 않았다. 동료 선생님들이 표정이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그 순간에는 기분이 괜찮았고 웃기도 했다. 그런데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또 아침과 같은 느낌이 들었고 계속 눈물이 나왔다. 슬프고 괴로워서 우는 게 아니었다. 그냥 자동으로 눈물이 나왔고, 울지 않으면 질식해 버릴 것 같았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는 집에 가지 않고 빈 교실에서 제발 누가 들어오지 않길 바라며 펑펑 울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집이란 나에게 감옥 같은 장소였으니까. 무엇보다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마음껏 울고 싶었다. 가장 편해야 하는 집이 가장 불편한 공간이 되어 버렸고,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당장 나가서 살 수 있는 원룸을 알아봤다. 지금까지 집을 나가지 않았던 것은, 내가 나가면 우울증 환자인 엄마와 그런 엄마를 혼자 담당할 아빠가 너무 힘들어할 것이 걱정되어서였다.


몇몇 집을 알아보고 공인중개사와 약속을 잡고, 학교 근처 내가 좋아하는 베이커리 겸 카페에 갔다. 나는 하루에 한 끼는 꼭 빵으로 먹을 정도로 빵을 좋아하는데, 이 때는 학교 근처 카페에서 파는 맘모스 빵을 특히 좋아했다. 뭔가를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던 것을 먹으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 반대였다. 나는 배가 고팠고 맘모스 빵은 분명히 내가 좋아하는 그 맛이었는데, 충격적이게도 씹고 삼키는 게 싫었다. 그게 너무 귀찮았고 부질없이 느껴졌다. 세상에 먹는 행위가 귀찮을 수 있나.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말이다. 맛이 있고 배가 고픈데 왜 이걸 씹기가 싫은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과는 상관이 없는, 어렸을 때 둘째라서 차별받았다고 생각했던 일과 엄마에게 들었던 상처되는 말들도 계속 생각 났다. 눈에 있는 수도꼭지가 고장이 난 듯이 눈물이 나왔다. 도대체 왜, 내가 뭘 이렇게까지 불행하다고, 나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뭐라고, 내가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이 한심해서 싫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엄마가 원망스러웠고, 엄마를 원망하는 내가 또 싫었다.


한편으로는 이 상태가 되어서야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아이러니했다. 항상 입맛이 없고 먹는 것도 억지로 먹는다는 엄마, 좋은 생각을 하려고 해도 안 된다는 엄마, 끊임없이 우는 엄마를 말이다. 언젠가 엄마는 건강에 이상이 없는데도 온몸이 아픈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고장 난 것 같아."


나도 우울증인 건가? 그래서 나도 고장이 난 건가? 주변은 수다를 떠는 소리로 시끄러웠는데, 내 주위에 어떤 차단막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즐겁게 웃고 떠드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차원에 있는 사람 같았다. 끝이 없는 깊은 바다에 빠진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바다에 빠진 거라면 그 바다의 이름은 '우울'이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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