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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y 21. 2023

6. 자식은 부모 앞에서 마음껏 슬퍼해도 되는 거야

우울증은 가족도 힘들게 한다

나는 집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자는 것과 우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샤워하기 전 화장실 문을 잠그고 누가 들을 새라 소리 죽여 울고, 자기 전에도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울다 지쳐 간신히 잠에 들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수업이 없는 날, 나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가원룸 세 곳을 살펴봤다. 상태가 좋건 나쁘건 별로 상관없었다. 내게 필요한 건 당장 나가서 살 수 있는, 내가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었으니까. 그래서 공인중개사에게 세 곳 중에서 어디로 갈지 오늘 저녁 안에 결정하겠다고 하고 카페에 갔다. 혼자가 되니 또 우울이 몸을 덮쳤다. 나는 그동안 내가 차별받았다고 생각한 점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 내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가족 단톡방에 보냈다.


집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었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술을 마시고 있었고 엄마는 애써 웃는 표정으로 나를 맞으려고 했다. 부모님은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엄마가 제발 이야기 좀 하자며 나를 붙잡았는데, 참을 수 없는 울분이 나를 덮쳤다. 나는 엄마를 뿌리치고 펑펑 울었다.


"나도 고장이 나 버렸어. 뭘 먹어도 먹기 싫고 좋은 생각을 할 수가 없어.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와 너무 답답하고 목이 막혀.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엄마 때문이야, 엄마의 우울증이 나한테 감염되어 버렸다고! 나 어떻게 해야 돼..."


'미안해'만 반복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식탁에서 술을 마시며 나를 달랬다. 아빠는 담담하고 침착하게 말했지만, 말투는 31살아닌 초등학생 딸을 대하는 말투였다.


"우리 희숙이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아빠하고 엄마가 몰라 줘서 미안해. 그런데 있잖아, 지금은 집 나가지 마. 너도 다 컸으니까 따로 사는 건 괜찮은데, 혼자 울고 싶어서 나가는 거면 그러지 마. 부모는 자식이 혼자 슬퍼하면 더 마음이 아픈 거야. 네가 그렇게 나가면 아빠 엄마가 너 걱정돼서 어떻게 사니."

"나는 나까지 이러면 아빠 엄마를 더 힘들게 할까 봐 나가려는 거야."

"왜 그런 생각을 해. 아빠는 부모라서 마음껏 울지 못하는데, 너는 자식이잖아. 자식은 부모 앞에서 마음껏 슬퍼해도 되는 거야."

"혼자 있고 싶어..."

"이제 언니도 곧 결혼할 것 같고, 너도 해외 파견 다시 나가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우리 가족이 이렇게 같이 모여서 살 날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겠니. 아빠는 우리가 지금 같이 사는 1분 1초가 아쉽고 소중해. 기회가 있을 때 너희하고 같이 더 살아 보고 싶어."

"너무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아빠가 표현은 잘 안 하지만 우리 희숙이 많이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 거 알지? 너는 부모한테 걱정 안 끼치고 스스로 잘 살아서 얼마나 든든했는데.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 "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어. 그리고 나도 싫어. 아아아..."

"알아 알아. 그런데 자식이 이러면... 부모 마음은 찢어지는 거야. 아빠는 지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빠의 눈은 빨개졌고 얼굴에는 애써 지은 슬픈 미소가 어렸다. 아, 나는 정말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구나. 혼자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말에 위로가 되면서 아빠의 마음을 찢어놨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오열하느라고 기운이 다 빠진 나는 집에 기운 보충될 만한 음료가 있는지 찾아봤다. 쌍화탕이 있길래 그걸 마시려고 하는데, 아빠가 자기가 할 테니 나는 앉아 있으라고 했다. 아빠는 쌍화탕을 데우고 컵에 따라 나에게 갖다 주고, 약국에서 또 사 와야겠다며 밖에 나갔다. 집 앞 약국에 간 것치곤 좀 시간이 지나서 들어오신 걸로 봐선 잠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것 같았다. 아빠가 밖에서 몰래 속상한 마음을 달랬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고, 늦은 밤 내가 듣지 못하게 소리 죽여 우는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또 마음이 미어졌다.


그날 이후 엄마는 울지 않았다. 아니, 우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내 앞에서는 억지로 밝은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다. 언니도 최대한 나를 위해 주려고 했고 동생도 멀리서 내 상태를 계속 물어보며 나를 위로했다. 아빠는 내가 수업이 없는 요일에 연차를 내고 나를 호수 공원으로 데려갔다. 아빠와 단 둘이 어딜 가는 것은 고등학생 때 다른 지역에 있는 대회에 참가해서 아빠 차를 타고 갔을 때 이후로 두 번째였다. 운치 있고 조용한 호수 공원을 같이 산책하니 내 마음도 진정이 좀 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눈물은 계속 나왔다. 나는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그냥 눈물이 나온다고 했고, 아빠는 괜찮다고 실컷 울라고 했다. 우리는 호수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카페에 들어갔다. 평소 카페에서 음료와 디저트를 비싼 돈 주고 먹는 것을 이해 못 던 아빠는 나에게 먹고 싶은 걸 다 고르라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도 엄마에게 서운한 게 많은데, 그래도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해. 엄마는 네가 베트남에 있을 때 더 심각했었어. 지금은 너하고 언니 덕분에 정말 좋아진 거야. 그때 아빠도 힘들었는데 그래서 일부러 취미 생활을 더 하려고 했어. 우리 안 좋은 것보다 좋은 걸 보고 살자. 그럼 엄마도 점점 좋아질 거야."


며칠간 아빠의 위로를 들으면서 나는 정말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나는 엄마와 아빠의 자랑이고 이런 부모님을 두었다는 건 정말 값을 매길 수 없는 엄청난 행운이고 선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우리 아빠... 아빠 본인은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내색하려 하지 않으면서 가족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려고 애쓰고 가정의 튼튼한 기둥이 되려고 한다. 이런 아빠가 안타까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집을 나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아빠의 말대로 우리가 같이 사는 1분 1초를 소중히 여겨 보기로 했다.


엄마는 웃는 날이 많아졌다.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또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 엄마는 나에게 재미있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단지 노력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그때의 내가 우울증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모른다. 하지만 우울증 아니라면 우울증 비슷한 단계까지 갔었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겪었던 그 감정은 이제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끔찍한 감정이었다. 소중한 사람과 이별한 것도 아닌데 절망의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고, 미래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아아, 우울증이라는 것은 이런 거구나. 나는 왜 엄마의 우울증을 '우울한 정도가 심한 감정'정도로 생각했었을까.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엄마가 왜 몸이 고장 났다고 했는지, 자신을 바보 같다고 했는지 왜 입맛이 없다고 했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고...


나는 가족들 덕분에 점점 기운을 차리고 있었고, 엄마도 힘을 내서 자신의 우울증과 맞서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우리 가족은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코로나19가 한국을 덮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코로나19가 국내에 퍼지자 국내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나기 시작했고, 당연히 학생이 없어진 한국어교육센터도 무기한 휴강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실직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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