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마음껏 울어도 돼. 이제 내가 도와줄게
엄마와 같이 우울증에 맞서다
항우울제는 의사와 상의 하에 조금씩 천천히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단 증상이 생겨 우울증이 더 악화될 수 있다. 이걸 몰랐던 엄마는 건강을 위해 약 없이 살아 보겠다고 의사와 상담 없이 우울증 약을 줄였고, 나는 엄마의 결단을 응원했다. 좋아지는 듯했던 엄마의 상태는 빠르게 더 안 좋아졌다. 전보다 훨씬 기운이 없어 보이고 표정도 지쳐 보였다.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나서는 더 심해졌다. 엄마는 백신을 맞으면 우울증 증세가 더 심해질 까봐 걱정했지만, 가족들은 괜한 걱정이라고 이 시국에는 백신을 안 맞는 게 더 걱정이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불행히도 엄마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백신을 맞고 나서 엄마의 상태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단순히 우울해 보이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시들어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교회에 다니는 엄마는 자기 전에 항상 기도를 하는데, 이 시기에는 전보다 더 간절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기도했다. 기도를 하는 순간이 아니면 말도 안 했고 행동도 표정도 마치 죽지 못해 사는 사람 같았다. 전에 우울증이 심했을 때는 매일 울고 매일 힘들다는 표현을 했었는데, 그마저도 없었다. 백신의 부작용 중 하나인지, 백신 때문에 잘못될 수 있다는 우려가 우울증의 대표 증상인 불안감을 증폭시킨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늦게 엄마가 나를 불렀다.
"희숙아, 너 지금... 나가서 ATM에서 100만 원 뽑아 와..."
"... 왜?"
"그냥 뽑아 와, 아무 말하지 말고 그냥 가 제발."
엄마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한 표정과 간신히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100만 원을 뽑으라니,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평소라면 황당해하고 엄마를 말렸겠지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뽑아 올게. 그런데 걱정 돼서 그래. 혹시 사기당하는 건 아닌지. 이유만 알려 줘, 응?"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너무나도 힘든 표정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 내가, 내가 너무 죄스러워서 그래. 내가 □□(동생)을 낳고 교회에 헌금을 안 했어. 근데 그게 너무, 너무 죄스러워서 그래! 아아, 아아!"
엄마는 철퍽 주저앉더니 창틀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슬퍼서가 아니라 힘들어서, 버티고 버티다 너무 힘들어서 우는 것 같았다. 나는 3년 전 외할머니 입관식 때의 엄마가 생각이 났다. 엄마는 그때 저렇게 울다가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가슴 아프게 울었는데, 지금 내 앞의 엄마는 그때와 비슷했다. 아니, 더 심했다. 그때는 슬퍼서 그런 거였는데 지금은 '죽고 싶어서' 울고 있었으니까.
"나, 죽고 싶어. 지금 당장, 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 근데 이 지경까지 와서 생각해 보니까 25년 전에 교회에 헌금을 안 한 게 너무 죄송해. 사는 게 힘들어. 너무 힘들어어!"
나는 엄마를 가만히 몇 초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돈을 뽑아 올 테니 기다리라고 하고 집을 나갔다.
나도 요즘 들어 엄마 상태가 심하게 안 좋아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어쩌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들을까 봐 무서워서 '아니겠지, 우리 엄마가 설마'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짐작하고 있던 사실을 확인해서 그런지 엄마가 자살을 생각한다는 사실이 많이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엄마가 아니었다. 바로 나였다.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 준 사람이 죽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왜, 내 마음은 도대체 왜 동요하지 않는 것인가? 엄마가 울면 가슴 아파하고, 심하게 울면 무서워했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이제 더 이상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 별 감정의 동요가 없는 것인가? 아니, 그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주저앉아 우는 엄마를 바라보던 내 심정은 그저 이 정도에서 그쳤다.
'불쌍하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구나. 도와주고 싶다.'
ATM에서 돈을 뽑고 돌아오면서 내가 왜 이러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부모는 자식이 어릴 때에는 자식에게 절대적인 존재이고,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좋든 나쁘든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엄마는 옛날부터 우리 남매에게 사랑을 많이 주면서도 화도 짜증도 많이 냈고, 우는 일도 많았다. 엄마가 그럴 때마다 내가 엄마의 감정에 동화되는 것을 넘어 때로는 무서움까지 느꼈던 이유는, 내가 은연중에 부모님을 '나'라는 세계에서의 하늘처럼 여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엄마가 울면 그 상황을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고, 내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한때 이해할 수도 해결될 수 없는 일로 매일매일 우는 엄마를 보며 나 자신도 무너질 뻔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런데 어쩌면 이제 나는 한층 성장해서 나 자신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를 확립했고, 나와는 '다른' 세계로서의 엄마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이유는 확실히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더 이상 내가 엄마의 우울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엄마의 우울증을 외면한 것은 그 우울증에 나도 영향을 받아 일상생활을 못할 만큼 우울해질까 봐였다. 그런데 엄마가 죽고 싶다며 우는데도 내 감정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엄마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엄마의 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나 자신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말이다.
'그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해 보자.'
집에 들어가니 엄마는 영혼 없는 표정으로 안방에 앉아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100만 원을 건네며 말했다.
"엄마, 아까 왜 나한테 100만 원 뽑아오라는 이유 말 안 하려고 했어? 혹시 내가 교회를 별로 안 좋아하니까, 헌금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봐 그랬어?"
"... "
"이 카드에 있는 돈은 엄마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이 돈을 헌금으로 쓰든 어디에 쓰든 그건 엄마 마음이야. 왜 엄마 돈 쓰는 데 내 눈치를 보고 그래. 앞으로도 필요한 일 있으면 뭐든지 부탁해. 내가 해줄 수 있으면 해 줄게."
"... "
"엄마... 죽고 싶다는 말 진심이야?"
"자다가 일어나면 생각해. 지금 뛰어내리면 더 이상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겠지 하고. 으흐흐윽...."
"나한테 지금 상태가 어떤지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마워.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혼자 힘들게 해서 미안해."
예전에 내가 혼자 울고 싶어 집을 나가려고 했을 때, 아빠는 나에게 자기 앞에서 울어도 된다고, 실컷 울라고 했다. 그 말이 그때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나는 엄마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말했다.
"마음껏 울어도 돼. 이젠 내가 도와줄게. 나랑 같이 좀 더 힘내 보자. 사랑해 엄마."
나는 엄마를 조용히 안아 줬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며 다짐했다. 이제부터 내 시간을 엄마에게 집중하기로. 엄마의 손을 잡고 우울증에 제대로 맞서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