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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y 25. 2023

10. 나를 반성하고 용서했다

엄마와 같이 우울증에 맞서다

<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를 읽으며 우울증에 대해 몰랐던 것들, 엄마에 대해 오해했던 것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위로도 받았다. 우울증 환자 가족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책은 챕터가 총 6장 있는데, 1장의 제목은 '우울증은 어떤 심리상태일까?'이고 2장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이다. 나는 1장과 2장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반성했는지 털어놓겠다.


1. 엄마의 불안을 이해 못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노력을 하라고 했다.


엄마는 우울증에 걸리고 매일 다양한 이유로 불안해했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잘 자지 못할까 봐, 몸에 문제가 있을까 봐,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우울증이 낫지 않을까 봐... 평소에 수면제의 도움으로 잠을 잘 자고 아픈 곳이 없어도, 어느 날 한 번 잠을 평소보다 조금 덜 자거나 두통이 생기는 등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엄마는 크게 불안해했다. 하루 종일 혹은 며칠 동안 '왜 그럴까?' 하는 생각만 반복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살면서 그런 일은 빈번한 거 아니냐고,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라고 해도 엄마는 듣지 않았고, 자신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섭섭해했다.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엄마는 괜찮은 거라고 말해도, 안 괜찮은데 왜 괜찮다고 말하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매사를 부정적으로 봤는데, 지난 글을 읽은 독자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때는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이 망상 수준으로 심해져 매일 울기도 했다.


나와 언니, 아빠와 동생은 그런 엄마를 답답해했다. 쓸데없는 것을 걱정한다고, 충분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을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엄마가 이상했던 게 아니었다. '불안'은 우울증의 대표 증상이고, 우울증 환자들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한다.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고 콧물이 나오듯이, '우울증'이라는 병의 증상이었는데, 우리는 그걸 엄마가 생각을 잘못하는 것 취급을 한 것이다. 그냥 '마음이 아파서 저렇게 불안해하는구나' 생각했으면 되었을 텐데 말이다.


2. 몸의 이상을 정신적인 문제로만 생각했다.


엄마는 몸이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건강검진 결과 엄마는 건강했고 나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몸에 문제가 있다고 할 때마다 괜히 불안해서 하는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역시 모든 것은 병 때문이었다. 언젠가 엄마는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며 불안해했다. 아빠는 즉시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 소변 검사를 받게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나는 이상이 없으면 다행이니 안심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지만 엄마는 이상이 없는데 자기는 왜 그런 거냐며 더 우울해했다. 알고 보니 소변을 자주 보는 것도 우울증 증세의 하나였다. 환자가 너무 불안에 떨면 소변을 자주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더우면 이상하게 덥고 추우면 이상하게 춥다며 불안해했는데, 온도를 예민하게 느끼는 것도 우울증 증상이었다. 또 엄마는 식은땀을 자주 흘리고 손을 떨었는데, 이것도 우울증 증상 중 하나라고 한다. 이게 다 엄마가 아파서 그랬던 건데, 나를 포함한 다른 가족은 엄마의 괜한 걱정으로 치부했다.

(*우울증은 천(千)의 얼굴을 가졌다고 한다. 똑같이 우울증을 앓아도 증상과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엄마가 겪은 증상을 다른 우울증 환자는 겪지 않을 수도 있다.)


3. 우울증에 대해 함부로 조언했다.


우울증 환자에게 함부로 충고나 조언을 하면 안 된다. 책에 따르면, 충고는 "너의 문제의 답을 내가 알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환자가 고민하는 문제를 하찮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울증 환자에게는 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필요한데, 충고는 환자의 이야기를 빨리 끝내 버린다고 한다.


자신을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하는 건 환자 자신이다. 조언을 하는 입장에서는 환자를 위해 뭐라도 해 주고 싶어서 조언하는 것이지만, 일반인이 아는 사실로 나아질 수 있다면 환자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치료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4. 가족들의 노력을 몰라 주는 엄마에게 섭섭해했다.


나도 다른 가족들도 엄마를 위해 노력했다. 아빠는 엄마가 더 편하게 자라고 거실에서 따로 주무시고, 출근하는 날이 아니면 엄마가 병원이나 직장에 갈 때 차를 태워 줬다. 기분 전환을 위해 나들이도 자주 데려가려고 했다. 언니도 동생도 항상 엄마를 신경 쓰고 배려해 줬다. 특히 언니는 엄마가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 자기 때문인 것 같다며 죄책감도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신경을 썼다.


하지만 엄마는 이런 일들을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면서도, 가끔은 가족들은 자기를 이해 못 한다며 짜증이나 화를 내었다. 언젠가는 가족들이 자기에게 관심 하나 없다고도 말했다. 내가 엄마의 우울증을 외면하기 전 일이라, 나는 그 말을 듣고 화를 내었다. 도대체 왜 가족들의 노력을 몰라주는지 답답했다.


사실 가족들이 엄마에게 신경을 써도 엄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맞았고, 엄마는 가족들을 위해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항우울제 금단 현상과 코로나19 백신의 영향으로 자살까지 생각했을 때도 가족들을 생각하며 살아 보려고 했다. 중증 우울증 환자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엄마가 하는 서운한 말들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수도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조언했다.


가족을 환자로 생각하라. '저기서 저 말을 하는 것은 우울증이지 내 가족이 아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5. 우울증이 몇 년이나 지속되는 이유를 엄마에게 물어봤다.


우울증은 병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별이나 충격 등으로 시작할지라도 시간이 지났다고, 처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치료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우울증은 재발이 자주 되는데, 이때는 특정 이유 없이 재발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병을 제대로 알지 못한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물어봤었다.


"엄마는 기운이 우울한 이유가 뭐야? 허리는 많이 좋아졌고, 외할머니 돌아가신 것도 2년이나 지났잖아."


이런 식의 질문은 우울증을 환자의 정신력 탓으로 돌리는 질문이다. 게다가 환자 자신도 자신이 우울한 이유를 모른다. 엄마는 내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한심해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엄마에게 저렇게 물었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자신을 탓했을 것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 환자에게 왜 우울하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환자 자신이 누구보다 오래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한 문제니까.


6. 엄마의 모순된 요구에 화를 냈다.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짜증, 배고파도 배고프지 않아도 짜증 혹은 불안. 가족들에게 '나한테 신경 쓰지 마.'라고 했으면서 신경을 안 쓰면 안 쓴다고 책망하는 엄마를 견디기 힘들었다. 원하는 상태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 줄텐데 어떻게 하든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니 답답하기가 그지없었다. 이것 역시 우울증 증상이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에서는 우울증은 모순적일 때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관심을 원한다고 한다. 도움을 바라지만 또 바라지 않는 양가감정을 우울증 환자들은 두세 배를 느낀다고 한다. 우리 엄마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7. 우울증 치료는 의사의 몫이라고만 생각했다.


책에서는 우울증 환자에게는 가족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했다. 가족들의 지지가 있을 때 우울증 극복력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힘들다고 '우울증 치료는 의사의 몫'이라는 핑계로 한동안 엄마의 우울증을 외면했다. 엄마는 유서를 쓰려고 했다고 한다. 엄마가 나에게 죽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평생을 끔찍한 후회와 죄책감 속에 살 수도 있었다.


이것 외에도 잘못한 것들은 많았다. 엄마보다 힘든 사람 많다며 엄마의 하소연을 막아 버린 것처럼 알면서 한 잘못도 있었고 항우울제 금단 증상에 대해 모르고 약을 줄이겠다는 엄마의 용기를 칭찬한 것 등 모르고 한 잘못도 많았다. <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1장과 2장을 읽으며 많이 반성했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는 나를 용서하게 되었다. 책의 5장 제목은 '가족의 우울증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이다. 이 장을 읽어보니 내가 한 실수들은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 가족이 겪는 일이었다. 초기부터 우울증 환자 가족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일반인이기에 우울증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 사람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책 5장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변해버린 가족의 모습에 불안을 느낌
- 가족의 우울증 사실에 안도(병 때문에 그랬던 것임을 확인해서) 혹은 절망함
- 예전의 가족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심
- '왜 하필 나(우리)인가'하는 생각에 분노
-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 수 있다는 죄책감, 환자에게 화를 내고 '아픈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생각하거나, 가족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죄책감
- 가족의 우울증의 영향으로 자신의 대인 관계에도 문제가 생겨 외로움을 느낌
- 가족과 같이 자신도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우울증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할까 봐 수치심을 느낌
- 우울증이 치료되지 않을까 봐 혹은 가족이 자살할까 봐 무서워함

이 감정들을 나는 거의 다 느꼈었다. 특히 죄책감과 분노가 컸다. 우울증의 영향으로 나 또한 너무 지치고 힘들어, 나를 이렇게 만든 엄마를 원망했고, 엄마를 원망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욕을 한 적도 있었다. 친척이나 엄마의 지인들이 건네는 말들도 가끔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우울증이 안 나을까. 집에 무슨 문제 있어?"

"엄마에게 잘해야지, 너희가 신경 많이 써야지."


걱정되는 마음에 뭐라고 도움이 되고 싶어 하시는 말씀들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런 말을 들을 때 '아, 우리가 뭐가 부족했나? 신경을 안 써서 그런 건가?'하고 가정에서 문제를 찾아보려 했고, 더 시간이 지나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억울한 마음은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고 그건 또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사실 잘못한 것은 없었다. 엄마도 다른 가족도. 아빠가 엄마를 서운하게 한 점은 있었지만 그게 우울증의 직접적인 원인도 아니었다. 나는 엄마를 원망하는 자신을 책망했고 엄마에게 직접적인 분노도 표출하고, 나 자신도 망가졌다고 생각할 정도까지 갔었다. 그런데 <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에서는 나의 이런 감정과 행동이 우울증 환자의 가족으로서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한다.


책의 마지막 챕터인 6장에서는 환자 가족이 자신도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는 아마 우울증 환자의 가족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분들을 위해 6장의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드린다.

1. 산소마스크는 당신이 먼저 써라 : 자신을 먼저 챙겨야 환자를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다.
2. 환자를 너무 야단치거나 걱정하지 마라 : 우울증 환자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비난을 못 견딘다.
3. 당신의 감정을 수긍하라 : 솟구치는 감정을 그냥 내버려 둬라. 자신의 감정을 나쁘게 보지 마라.
4. 상대가 금방 이해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5. 자신의 잘못을 용서하라.
6. 주변 사람들에게 우울증에 대해 알리자.
7. 될 수 있는 한 현재를 살아라 :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마라.
8. 당신이 바꿀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라.
9. 고립되지 마라 : 사람을 만나고 당신의 상황을 알려라.
10. 매일 시간을 내서 즐거운 일을 하라.
11. 스트레스 신호를 주의 깊게 살피자.
12. 서로의 차이점을 존중하라 : 환자가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도 받아들여야 한다.

모두 중요한 내용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1번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소중하게 여겨야 하며,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도 못 지키고 자신도 무너질 수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울증 환자 가족 분들은 부디 자신의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시길 바란다. 내가 미리 경험을 해 봤으니 당신들이 지금 얼마나 힘들지 나도 잘 안다. 그래도 힘내시고 희망을 가지시기 바란다. 좋은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니. 파이팅!


출처 : <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휘프 바위선 저/ 장혜경 역.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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