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저녁 산책은 매일 이어졌다. 엄마는 하루 중 산책 시간을 기다렸다. 내가 저녁에 약속이 생겼다고 하면 같이 산책을 못할까 봐 근심하기도 했다. 나는 약속이 있어도 엄마와 거의 매일 산책을 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가족들한테 서운한 건 없어? 뭐든 괜찮으니까 말해 봐."
"너네 아빠한테 서운해. 너희들한테는 그렇게 다정하면서 나한테는 왜 그러는지. 내가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는데도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안 하잖아. 예전부터 그랬어.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맞아. 나도 아빠가 엄마한테 좀 따뜻하게 대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많아. 그래도 아빠는 엄마 사랑해. 알지? 우리가 뭐 잘못할 때마다 이러면 엄마 속상해 한다고 혼냈어. 그리고 예전에 엄마 목디스크로 수술까지 받았을 때 엄마한테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데."
"나도 알아. 너 베트남 가 있을 때, 아빠가 나 때문에 운 적도 있었어.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친정 식구들이랑 있는데도 우울해한다고. 내가 그때 너무 미안해서 어서 빨리 정신차려야겠다고 생각했었어."
"맞아. 그 일 언니한테 들었어. 아빠가 표현은 안 해도 엄마 많이 신경 쓰고 있어."
"표현을 해야지 표현을. 옛날에 너네 할머니한테 내가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알지? 근데 한 번을 내 편을 안 들어주더라."
"맞아 맞아. 아빠가 너무했지. 예전에 할머니댁 갈 때, 엄마가 할머니한테 잘 보이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반찬 해 간 적이 있는데, 할머니가 그거 보자마자 이런 거를 뭐하러 해 보냐고 잔소리했잖아. 보는 내가 섭섭하더라. 내가 좋아하는 게맛살 반찬이었고..."
"참냐,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너네 아빠는 뭘 그런 걸 섭섭해하냐고 그러더라! 근데 그 반찬을 네가 좋아했었니?"
"기억 안 나? 나 그거 좋아해서 엄마가 자주 해줬었는데. 얘기하다보니까 먹고 싶어지네. 엄마가 다시 해 줬으면 좋겠다."
"하, 우울증 때문인지 내 기억력이 점점 떨어져 가. 그리고 솔직히 반찬 할 기운도 없어."
"나중에 괜찮아지면 뭐든 해 줘. 엄마가 해 주는 반찬은 다 맛있어."
산책 코스에 내가 학창 시절에 다녔던 독서실이 있었다.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났다.
"여기 독서실 내가 고등학생 때 다녔었는데. 내가 독서실에서 깜박 졸다가 새벽 2시에 들어갔는데, 엄마 아빠가 엄청 걱정하고 있을 줄 알고 집까지 뛰어갔다? 근데 엄마 아빠 뭐 하고 있었는지 기억 나?"
"아니? 뭐 하고 있었는데?"
"자고 있었어! 세상에 고등학생 딸이 새벽 2시가 되도록 안 들어왔는데 쿨~쿨~ 주무시더라?"
"내가 그랬어? 하이고 정신 나갔었네!"
엄마는 오랜만에 피식 웃었다.
집에 돌아와서 다 씻은 엄마에게 명상 음악을 추천했다. 나는 요가를 다니고 있었는데, 요가 수업 마지막은 음악을 들으며 누워서 편하게 쉬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정말 좋아했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편한 음악을 들으며 편안하게 누워 있는 상태가 좋았다. 그래서 엄마에게도 가만히 누워 유튜브로 명상 음악이나 수면 유도 음악을 들어 보라고 했다. 음악을 듣던 엄마는 정말로 마음이 편해진다면서, 그 이후로 가끔 나한테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 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 언니네 부부와 동생까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 분위기는 화목했지만, 엄마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언니와 동생은 엄마 많이 아프냐며 걱정했지만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식은 땀을 흘리며 손까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나는 밥을 다 먹고 말했다.
"오늘 저녁은 남자들이 설거지 하세요. 집이 너무 더워서 엄마랑 나는 빨리 산책 나가야겠어."
"그래,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엄마 데리고 즐겁게 산책하고 와~."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만삭인 언니가 자기도 같이 가고 싶다며 산책 갈 준비를 했는데, 엄마는 극구 말리며 언니 보고 빨리 너네 집으로 가라고 했다.
산책을 하면서 엄마가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나 솔직히 △△(언니)하고 □□(동생)이 오는 게 부담 돼. 내가 옆에서 막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고. 아까도 계속 부담되고 불안해서 손도 떨리고 식은 땀도 났어."
"그래, 엄마 불편해 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빨리 산책 가지고 한 거야."
"고마워. 앞으로 △△(언니)하고 □□(동생)은 집에 안 왔으면 좋겠어. 집에 누가 오는 게 싫어. 걔네한테는 미안하지만 내 몸 상태가 이러니까 돌볼 수가 없어. 특히 언니는 만삭인데 내가 신경도 못 써 주고 있어서 더 부담 돼."
"내가 대신 잘 설명해 줄게. 미안해하지 마. 언니도 충분히 엄마 이해하고, 지금은 무엇보다 엄마 정신 건강 챙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근데 엄마 나는?"
"... 너는 편해."
"내가 편해? 진짜?"
"너는 있으면 의지가 돼. 너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
"다행이다!"
진심으로 기뻤다. 내가 엄마에게 의지가 된다니, 내가 엄마를 편하게 해 준다니. 전 글에 썼다시피 예전에는 '편한 딸'이 부담스러웠다. 편한 자식이었기에 나한테 특히 하소연을 많이 하는 게 싫었고, 내가 우울증 비슷한 상태가 되었던 것도 매일 우는 엄마와 가족 중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는 엄마에게 불편한 딸이 되었었는데, 다시 엄마에게 가장 편한 딸이 되어 기뻤다. 엄마에게 의지가 되고 싶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으니! 편애를 받는 것 같아 살짝 우쭐하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비자를 못 받아서 베트남에 못 가고 국내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 게 처음에는 싫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내가 베트남에 못 가서 다행이야. 덕분에 엄마랑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잖아."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내 손을 꼭 쥐며 고맙다고 했다.
다음 날 저녁,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엄마는 비 때문에 산책을 못할 거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럼 교회 가서 기도만 드리고 오자고 했다. 우리는 교회에 갔다. 그날도 역시 엄마는 울면서 소리 내어 기도를 드리고 나는 속으로 엄마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빌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제 아들이 엄마한테 맛있는 소고기를 사 주라며 누나에게 돈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기특한 아들입니까. 제 둘째 딸은 베트남에 가지 못해서 엄마랑 함께 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합니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저에게 이런 보석같은 자식들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기도를 마치고 교회를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우리는 산책을 조금 하고 들어갔다.
나는 2019년부터 1주일에 한 번 일기를 쓰는데, 엄마와 같이 산책을 했을 때는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이 글은 2021년 8월 23일의 일이다. 이날 내 일기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내일은 엄마가 더 밝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밝아지지 않아도 실망하진 않는다.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고 나는 언제라도 기다릴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