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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Jun 03. 2023

안녕 나의 하노이, 베트남!

하노이 유학 생활 7

4개월의 짧은 유학 생활이 끝나고 귀국하는 날이 되었다. 아쉬움은 전혀 없다.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하노이 생활을 즐겼다. 베트남어 시험에서 목표했던 고급인 C1에 합격하지 못하고 중급인 B2 등급을 받은 게 아쉬웠지만, 시험 결과를 보니 위로가 되었다. 4월 시험이 취소되는 바람에 내가 시험 본 5월에 평균 수험자보다 훨씬 많은 90명이 시험을 봤음에도, 최고 단계인 C2가 한 명도 안 나왔고 C1은 겨우 5명 나온 것이다. 아, 내가 시험을 망쳐서 그런 게 아니고 시험 문제가 이상할 정도로 어려웠던 게 맞았구나. 베트남어 선생님들도 이번 시험은 너무 어려웠다고, 원래 시험은 C2와 C1 모두 각각 20~30%는 나왔었다고 했다.


그래도 유학까지 하면서 베트남어를 공부했으니, 고급 능력 증명서는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귀국하고 나서도 Opic 말하기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고급 시험에 합격하는 날까지 공부는 계속된다~.


괜찮아 이 정도면 잘했어!


수업은 시험이 끝나고도 2주 정도 더 하고 5월 셋째 주에 완전히 끝났다. 근데 남은 2주 동안은 시험 준비를 할 때보다 더 바빴다. 일단 그동안 생각만 하고 쓰지 않았던 엄마의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열심히 썼다. 그리고 TOPIK(한국어능력시험) 과외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몇몇 학생들이 토픽 과외를 해 달라고 예전부터 부탁을 했었는데, 이번에 한번 제대로 토픽 수업을 연구해서 만들어 보려고 준비를 열심히 했다. 토픽 강의도 시작하고 학원 통해서 주말마다 몽골 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기초 한국어 강의도 다시 시작했다. 또 기존에 줌(ZOOM)과 카페토크(Cafetalk)로 해 왔던 개별 한국어 과외도 하느라 수업 준비를 많이 했다.


베트남을 떠나기 전에 세종학당 선생님들, 학생들도 만났다. 특별했던 만남은 브런치의 아이리스h 작가님과의 만남이었다! 그동안 하노이 사시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보며, 멀리 있는 듯 가까이 있는 동료를 보는 듯하여 동질감을 느꼈었다. 하노이에 있을 때 우연히라도 마주치면(물론 서로 못 알아보겠지만) 좋겠다 했었는데, 감사하게도 베트남을 곧 떠난다는 댓글을 보시고 먼저 만나자고 말씀해 주셨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귀국 선물로 코코넛 커피도 주시고 맛있는 브런치도 사 주시고... 작가님은 글에서 느끼던 것 같이 사랑이 넘치셨다! 


게다가 나를 보자마자 생각보다 너무 젊다고 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옛날부터 분위기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이리스 작가님처럼 내 글만 읽었거나 나와 메시지로만 대화했던 분들도 내가 실제보다 나이가 있는 사람 같다고 말씀하신다. 이야기하다가 내 실제 나이를 들으면 다들 예외 없이 놀라신다. 20대 때는 노안이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30대가 되어서는 그런 말을 좀 즐기기 시작했다. 너무 자주 들어서 그게 성숙해 보인다는 뜻인 걸 알기 때문이다. 또, 같은 한국어 선생님들은 내가 나이에 비해 경력이 많아 당연히 나이가 더 많을 줄 알았다고 하셨다. 이건 한국어 선생님들은 다른 일을 하다가 이직하신 분들이 많은 반면에 나는 졸업하고 거의 바로 일을 시작해서 그렇다. 어쨌든 여러분, 저는 90년생이랍니다! 하하하.


예쁜 곳에서 예쁜 사람들끼리 놀았다!


귀국은 3일이지만 집은 2일에 나왔다. 1년 전부터 하노이를 완전히 떠나는 날에는 꼭 롯데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었다. 롯데호텔은 하노이에서 제일 높은 72층짜리 롯데센터에 있는 호텔이다. 2017년 후에 세종학당에서 근무하던 시절 하노이에 워크숍 때문에 왔을 때, 짧은 자유 시간 동안 동료 교원들과 롯데센터에 가서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시골이라고 할 수 있는 후에에 살던 내게 롯데센터는 굉장히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 세종학당 동료 선생님들과의 시간도 즐거웠고 말이다. 그 때문인지 나에게 롯데센터는 하노이의 상징같이 느껴졌다. 언젠가는 꼭 롯데호텔에 숙박해 봐야지 했었는데, 마지막 기념으로 롯데호텔에 온 것이다.


집을 떠나기 전날 밤, 떠난다는 생각에 많이 아쉬웠고 살짝 슬프기도 했다. 하노이는 여행으로도 나중에 올 수 있지만 이 집에 사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말이다. 집주인 아주머니도, 경비 아저씨도, 청소 언니도 다들 좋은 분들이었고 내가 갈 때마다 따뜻한 미소로 날 반겨 주신 집 바로 앞 껌빙전(밥과 반찬을 한 접시에 주는 베트남 식당) 식당 아주머니 등 주변 이웃들도 좋았다. 내 생일날 밤중에 깜짝 선물을 들고 찾아오시고, 작별 인사를 하며 나중에 하노이 오면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하신 집주인 아주머니, 항상 나에게 "Chào cô giáo!(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고 힘차게 외쳐 주셨던 경비 아저씨, 옥상에 있는 탁자에서 밤하늘을 보며 글을 쓰려고 하면 항상 풍경이 더 잘 보이는 위치로 탁자를 옮겨 주시던 전 경비 아저씨, 내 베트남어 회화 연습을 도와준 청소 언니 등 여기서 만난 분들은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집을 떠나는 날 아침 우리 집에 오신 깜짝 손님 덕분에 이런 아쉬움을 덜 수 있었다. 내 기분을 알고 우리 집에 대한 정을 떼 주려고 온 건가? 화장실에서 휴지를 잡으니, 새끼 바퀴벌레가 툭 떨어져 내 맨살을 기어 다녔다. 으아악! 자동으로 비명이 나왔다. 예전에 엄지만 한 바퀴벌레가 내 머리에 붙은 적은 있었는데, 맨살을 기어 다닌 건 처음이었다. 새끼라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하고 재빨리 화장실에 약을 치고 문을 닫았는데... 익숙한 붕붕 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검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신나게 방 안을 날아다녔다. 약을 뿌리니 냉장고 문에 붙었다 떨어져서 발버둥 치다 서랍장 밑에 들어갔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은 비닐봉지에 들어가서 난리를 쳤다. 힘도 얼마나 센지 비닐이 막 이동했다. 몸부림치는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감히 그 봉지를 묶을 수가 없었다. 묶을 때 이놈이 봉지 밖으로 튀어나와 내 손을 기어 다니면... 으아악! 다행히 몇 분 안 돼서 운명했다. 


문제는.... 바퀴벌레가 난동을 피우고 운명한 시간이 내가 온라인으로 박사 입학 면접을 보기 5분 전이었다는 것이다! 아침 8시에 면접 시작이라, '일찍 일어나서 연구 계획서와 그동안 봤던 논문을 훑어보고 준비된 자세로 면접에 임해야지!' 계획했었는데! 내 몸을 기어 다니던 바퀴벌레, 방 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비닐 속에서 시끄럽게 발버둥 치며 죽어가는 바퀴벌레 때문에 '어버버'한 상태에서 면접을 봐 버렸다. 긴장되어서가 아니라 정신이 살짝 나가서 말을 조리있게 하지 못하고 더듬어 버렸다. 하하 바퀴벌레가 이런 식으로 집에 대한 정을 떨어뜨려줬다... 필요 없었는데.


아무튼 청소 언니의 도움을 받아 집 정리를 다 하고, 마지막으로 껌빙전에 갔다. 내가 이제 귀국한다고 말하니, 아주머니와 거기 직원들이 다 아쉬워하며 잘 가라고 인사해 주었다. 나중에 하노이로 여행 오면 이 껌빙전에 꼭 들러야지.


껌빙전~


호텔은 52층이라 전망이 아주 좋았다. 방에서도 욕실에서도 하노이 시내가 훤히 보였다. 하노이를 눈에 담아 두려고 계속 계속 바라봤다. 저녁에는 건물 제일 윗 층에 있는 루프탑 바(Bar) 탑 오브 하노이(Top of Hanoi)에 갔다. 와인에 샐러드를 먹으며 하노이 야경을 구경했다. 여기에서 내가 살던 곳 방향을 보니 살짝 뭉클해졌다. 


내가 살던 나라나 지역을 떠날 때마다, 내 인생의 한 장이 끝나는 느낌이 들어 아련해진다. 다시 올 수는 있어도, 그 장소도 나도 내가 그곳에서 생활하던 때와 같지 않으니까. 생각보다 하노이를 더 좋아했나 보다. 


안녕 하노이, 베트남!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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