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도 공부를 좋아했던 바야르의 자퇴 소식에 놀라서, 오랜만에 바야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바야르! 너 자퇴했다는 게 사실이야?"
"네, 교수님. 저 자퇴했어요."
"대체 왜? 무슨 일이야?"
"음... 그렇게 됐어요. 더 공부하고 싶었는데, 일이 생겼어요."
"무슨 일인데. 말해 봐."
"학교의 실수로 장학금을 못 받게 됐어요. 저는 장학금이 없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어요."
몽골은 국가에서 일정 성적 이상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그런 혜택이 없으면 몽골에서 대학교를 다닐 수 있는 학생은 몇 없을 것이다. 국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성적 기준이 낮고, 교수들도 웬만하면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성적을 주기 때문에 거의 모든 학생이 장학금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장학금을 받지 못할 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행정 처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바야르는 더 이상 장학금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받은 장학금을 모두 토해 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바야르는 수능 시험을 보고 1년 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국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수능 직후 대학 입학이었다고 한다. 이런 조건을 학교도 바야르가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안 것이다.
"다른 교수님들이나 학교 행정처에 얘기해 봤어? 학교의 실수라면 학교에서 해결해 줘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해요."
"... 그럼 이제 더 공부 안 할 거야?"
"할 수 있으면 정말 하고 싶어요. 그런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너무 안타까웠다. 한국어를 공부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꿈을 가졌는데, 어처구니없는 일로 날개가 꺾인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몽골도 취업난이 심한데,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 가혹하다. 당시 바야르도 가족의 도움으로 장학금이라고 생각했던 빚을 갚고, 자퇴 후에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던 만큼 분명 좌절감도 컸을 것이다. 나는 그 의지를 확고하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일조를 한 만큼 책임감이 느껴져 미안해졌다. 바야르가 후에 말하길, 이때는 정말 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학생을 도울 수 있을까, 바야르는 공부를 좋아하고 성실한 학생이니 통번역 일을 할 수 있게 한국어 학원을 다닐 수 있는 돈을 보내줄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바야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 한국어 올림피아드를 준비할 때처럼 말이다. 돈을 보내주는 건 바야르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동정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진심을 더 잘 전달하고 바야르를 지속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바야르, 나하고 다시 한국어 공부 해 볼래?"
"정말요? 저는 너무 좋아요. 그런데 어떻게요?"
"우리 올림피아드 준비할 때처럼 해 보는 게 어때? 1주일에 한 번 내가 주제를 주면 네가 그 주제로 A4 한 장 정도 글을 쓰는 거야. 그럼 내가 피드백해서 보내 줄게."
"네, 좋아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나는 이제 교수님이 아니니까 편하게 선생님이라고 불러~. 우리 열심히 해 보자."
"네, 선생님!"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니, 바야르를 도와주고 응원해 줄 방법도 한국어 공부였다. 중요한 건 한국어가 아니었다. 그건 그냥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바야르가 한국어가 아닌 다른 진로로 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한국어 공부를 통해 그가 꿈을 잃지 않고 무엇이든 다시 도전하길 바랐다. 바야르는 '한국문화와 몽골문화 비교', '소중한 추억', '기억에 남는 책',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등 여러 주제로 글쓰기 연습을 했다. 예전처럼 한 번도 늦지 않고 숙제를 제출했고, 나는 피드백을 해 줬다. 물론 무료였다. 발전하고 있는 글쓰기 실력을 보며 느끼는 보람이 내게는 보수였다.
그렇게 내 본업이 정말 바빠지기 전까지 한 3개월 정도 글쓰기 수업을 했다. 바야르는 글쓰기 연습을 하며 다시 한국어를 마스터하고 싶어 졌다고, 꿈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무료 컴퓨터 수업도 듣고 자원봉사로 한국어를 가르쳐 주는 곳에서도 계속 한국어를 배우며 꿈을 다시 키워 갔다.
2019년, 바야르가 좋은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 저 몽골에 있는 한국 회사에 취업했어요."
"정말? 잘됐다, 축하해!"
"저는 여기에서 일을 하면서 계속 한국어를 배울 거예요. 그리고 돈을 모아서 꼭 한국으로 유학을 갈 거예요."
"그래, 넌 할 수 있어!"
"선생님께서 저보다 더 절 믿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덕분에 저는 힘을 낼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해 주면 내가 더 고맙지. 그런데 내가 널 응원하는 이유는 그만큼 네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야. 네가 한 일들도 다 네가 성실하고 착하게 산 덕이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바야르는 회사가 아무 경력도 없는 자신에게 기회를 줄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여 직접 그 회사에 찾아갔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무보수로 일을 할 테니, 그동안 자기가 일하는 것을 보며 직원으로 삼을지 말지 결정해 달라 했다고 한다. 다행히 사장님이 좋은 분이시고 바야르를 좋게 보셔서 첫 달부터 월급을 주고 2개월 만에 정직원으로 삼으셨다고 한다.
2019년 여름, 나는 4박 5일 동안 울란바토르에 가서 내가 살던 곳을 둘러보고 가르쳤던 학생들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긴장과 설렘이 같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봤던 어린 학생들이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차를 끌고 나를 마중 나오고 자기 직장 이야기를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바야르 또한 놀라웠다. 귀국 후에는 메시지로만 연락해서 몰랐는데, 한국어 말하기 실력이 아주 좋아져 있었다. 학교 다닐 때 항상 지적받았던 발음 문제를 거의 고쳤다. 한국인과 말할 기회가 별로 없었을 텐데, 이 정도로 말하기 실력이 좋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고, 바야르가 더 좋은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 저하고 몇몇 친구들이 작은 NGO(비정부, 비영리단체)를 만들었어요.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몽골 청년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가르쳐 주는 NGO예요. 저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바야르는 본인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사진을 보내 줬다.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바야르가 NGO를 만들어 자신과 비슷했던 처지의 청년들을 돕다니! 한국어 선생님이 되다니.
"너무 대단하다. 잘했어 바야르! 자랑스럽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뿌듯해요. 저는 선생님께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넌 언제나 자랑스러운 학생이었어."
"정말요? 감사해요. 그런 말이 정말 듣고 싶었어요."
바야르는 NGO 지원금을 위해 큰 회사와 국제 지원 기구들을 찾아갔고, 고생 끝에 자신들을 지원해 줄 기관을 찾아 프로젝트 계약까지 맺었다. 이제 프로젝트 시작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던 바야르에게 또 시련이 왔다. 바로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힘들게 했고, 몽골 역시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 의료 시스템이 낙후된 몽골은 감염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어떤 나라보다도 일찍 국경을 닫았다. 덕분에 감염자가 퍼지는 건 늦출 수는 있었지만, 안 그래도 심했던 경제 위기가 더 심해졌다. 게다가 코로나19의 감염을 늦추기는 해도 막을 수는 없었다. 2020년 11월, 코로나19는 결국 몽골에도 수많은 감염자를 냈고 울란바타르 시민들 전체가 연이은 자가격리에 힘들어했다. 몽골 정부의 부실함을 넘어 형편없는 관리 체계에 국민들의 분열도 심해졌다.
바야르 또한 NGO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격리되어 있는 동안 우울증에 걸렸었다고 한다. 침체된 나날이 이어졌지만, 계속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몽골 한인들이 몽골인들을 위해 운영하는 도서관에 가서 지원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행히 우울증을 극복했고, 한국으로 유학 가겠다는 마음을 더 확고히 했다.
2021년 8월, 나는 <우리는 함께 자란다>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바야르가 아는 한국 사람을 통해 책을 구매했다고 연락을 했다! 한 달 뒤 바야르의 SNS를 통해 내 책이 몽골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책을 구매했을 뿐만 아니라 꼼꼼하게 정독해 주어서 정말 감동이었고 고마웠다.
2022년, TOPIK 시험 결과 발표 후 바야르가 메시지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니,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몇 점 차이로 TOPIK 5급을 받았어요. 이번에는 6급 받을 줄 알았어요."
"뭐야, 큰일 난 줄 알았잖아.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그게 왜 죄송해?"
"선생님께 6급 합격하겠다고 약속했었으니까요. 유학도 늦어졌어요."
"그건 너를 위한 약속이니 나한테 죄송할 필요는 전혀 없고, 성적보다 중요한 건 네가 노력했다는 거야. 그런데 5급이어도 유학 올 수 있는데?"
"네. 자존심의 문제예요. 전 한국어를 잘하니까 6급에 합격하고 가고 싶어요."
바야르는 재취업에 성공 후 1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유학 자금을 모았다. 그리고 2023년 5월, 드디어 TOPIK 6급에 합격했다! 조금 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나와 2016년에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바야르는 바로 유학을 본격적으로 준비했고, 한국의 한 대학원에 합격했다!
바야르의 전공은 심리학이다. 바야르는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힘들었을 때마다 나, 한국인 사장님, 자원봉사자들, 친구들 등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야르에게 '소통'의 중요함을 알게 해 주었고, 그래서 인간의 심리에 대해 더 공부하여 사람들이 더 편안하고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고 싶다고 한다.
바야르는 지금 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 바야르는 '한국 유학'의 목표를 이뤘다. 나는 바야르가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낼 것을 믿었다. 물론 유학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바야르는 한국에서 공부하여, 전에 NGO 단체 운영을 했던 것처럼 사회와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겠지만, 나는 바야르라면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 바야르를 항상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