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Sep 15. 2023

다시 만남, 다시 시작

다시 찾아가는 한국어 강사가 되다

"선생님, 이거 봐요. 나 집 그렸어!"

"'집 그렸어요.'라고 해야지. 엄청 큰 집이네? 근데 민우야, 선생님이 쓰라고 한 것부터 써야지?"

"내 집 엄청 튼튼해. 커요! 나 나중에 여기 살고 싶어."

"나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

"너 여기 앞에 OOO 아파트 살지?"

"응. 나 10층."

"10츠으응? 우와아. 근데 나 아파트 싫어."

"응 그래, 민우는 주택이 좋고 아미르는 아파트가 좋구나? 그런데 책에 쓰라는 건 아직 다 안 썼네."

"선생님 선생님, 근데요 어제 제 친구가 갑자기 춤을 췄어요. 걔는 왜 그럴까요?"

"으응? 글쎄, 선생님은 그 친구를 잘 몰라서 모르겠는데... 왜 그랬을까? 근데 수민이는 글 다 썼니?"

"선생님, 저는 다 했어요."

"와, 잘했어 샨드라! 어디 볼까? 잘 썼네! 그런데 틀린 글자가 좀 있으니까 선생님이 고쳐줄게."

"선생님 선생님! 민우가 나 괴롭혀요!"

"아미르 똥! 똥 아미르 히히히."

"아이고, 민우야 아미르야 장난치지 마. 특히 연필을 손에 들고 장난 치면 위험해! 샨드라 미안해, 조금 기다려 선생님이 조금 이따가 고쳐줄게."


...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가 지났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2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목표한 진도의 반밖에 나가지 못했다. 가르친 건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내 목은 너덜너덜해졌다. 그래도 좋다. 다시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어서 말이다.


베트남에서 귀국한 지 3개월이 지났다. 6~8월은 정말 좋았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구직활동을 하면서 여유를 충분히 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편하기만 한 여유는 아니었다. 8월까지는 학교가 방학이어서 채용 공고 자체가 별로 없었지만, 9월부터는 정말 일을 구해야 하는데 내가 사는 곳은 한국어 강사를 뽑는 공고가 자주 안 나오기 때문이다. '9월에 바로 일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한국어 수업을 대학원 박사 과정 수업과 맞추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전에 고려사이버대학교에서 다문화사회 전공을 공부했는데, 공부하다 보니 이 분야를 더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어서 자퇴 후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나는 세종학당 파견 교원으로 하노이에 가기 전까지 '찾아가는 한국어교육'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다문화 학생을 위한 한국어 학급이 따로 없는 학교에 출강을 가서 다문화 학생들을 가르쳤었다. 이건 따로 학교에 지원을 하는 게 아니다. 교육청을 통해 '찾아가는 한국어 교육 강사' 인력풀에 등록을 하면 수요가 있는 학교가 생길 때 강사들에게 알림이 가는데, 그럼 선착순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그 학교에 원래 출강을 가던 분이 계속하셔서, 2년 반이나 활동을 못한 나에게는 별로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근 초등학교에 한국어 강사 수요가 생겼다. 재빨리 출강 신청을 해서 다시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후에 한국어 강사 공고가 잘 나지 않던 근처 대학에서 공고가 나서 지원했고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9월부터 다시 대학교에서 어학연수생들에게 한국어도 가르치고 초등학교에서 다문화 아이들도 가르치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 담당 선생님께 학생들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이름을 외하고 받았다. 내가 가르칠 학생은 총 4명인데, 그중 두 명이 인도 학생이었고 서로 남매였다. 아이들의 정보를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샨드라인가?'


샨드라는 내가 3년 전에 가르친 인도 학생으로, 브런치에 샨드라에 대한 글을 올렸었다. 샨드라는 남동생이 있고 누나 쪽 학년이 딱 샨드라의 학년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가게 된 초등학교는 3년 전 샨드라의 초등학교는 아니었지만 샨드라가 이사를 해서 근처 학교로 전학을 갔다는 이야기를 건너 들었었다.


정말 샨드라라면 나는 너무 반가울 것 같았다. 샨드라도 나도 우리의 한국어 수업을 아주 좋아했지만, 3년 전 학교의 정책 변경으로 한국어 수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그때 너무 아쉬워 눈물이 조금 나왔었다. 샨드라도 아쉬워하며 구글 번역기를 돌려 꾹꾹 눌러쓴 편지를 줬었다. 그때 일이 엊그제처럼 선명했고, 다시 샨드라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담당 선생님께 직접 물어 이름을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에 굳이 묻지는 않았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간 초등학교 한국어 수업 첫날, 나는 너무 반가워 입을 틀어막았다. 샨드라가 맞았다!


"샨드라!"

"안녕하세요."

"너무 반갑다. 잘 지냈어? 선생님 기억나?"

"아니요..."

"OO 초등학교에서 샨드라한테 한국어 가르쳤었어!"

"아, 네 네 기억나요."

"우리 헤어질 때 샨드라가 선생님한테 편지도 써줬는데, 기억나지? 선생님은 그때 샨드라한테 너무 고마웠어."

"네, 그런데 그거 구글로 translate(번역) 한 거예요. 히히"

"알아. 그래도 정말 감동이었어. 그때 너무 아쉬웠는데 다시 만나서 너무 좋다."

"선생님이 우리 한국어 가르쳐요?"

"응. 내가 가르치게 됐어."

"좋아요!"


이렇게 나는 다시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예전에 가르쳤던 샨드라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문화 학생들과 추억 1> 마지막 글에서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과 나중에 우연히라도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썼었는데, 정말 우연히 만났고 심지어 다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내가 처음 샨드라를 만났을 때는 한글을 배우는 단계였으며 헤어질 때는 '어제 빵을 먹었어요' 정도를 간신히 하는 정도였는데, 다시 만난 샨드라는 내가 하는 말을 거의 이해하고 한국어도 꽤 유창하게 말했다. 정말 이래저래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은 샨드라와 샨드라의 남동생 아미르, 어머니가 중국 분이신 민우, 어머니가 베트남 분이시고 베트남에서 전학 온 수민이 네 명이다. 각각 한국어 수준도 학년도 다 다르다. 수민이는 4학년, 샨드라는 5학년, 민우는 1학년, 아미르는 2학년. 수민이는 글씨를 많이 틀리는 문제만 있는 정도이고, 민우도 글을 못 쓰고 높임말이 익숙하지 않은 것만 빼면 말을 아주 잘했다. 샨드라 남매는 한국어를 꽤 알아듣고 말을 하기는 하지만 수학과 예체능을 뺀 학교 수업은 따라가지 못한다.


월요일에는 아미르와 민우를, 화요일에는 샨드라와 수민이를, 목요일에는 4명을 같이 가르친다. 아이들 학원 시간과 내 일정을 최대한 조율한 시간이다. 화요일은 아이들이 수다를 많이 떨기는 하지만 침착하고 내가 하라는 것을 잘해서 괜찮은데, 월요일은 좀 힘들다. 민우는 나한테 어찌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2시간 내내 떠들고, 눈을 딴 데로 돌리면 자리에서 없어진다.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다행이다. 지난주 월요일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춤을 춰서 그저 웃음만 나왔다.


"선생님 나 춤 잘 춰!"

"와 정말 잘 추네!(자리에 앉아라 민우야...)"


아미르는 나와 있을 때는 조용히 할 일을 하는데 민우만 있으면 분위기에 휩쓸린다. 네 명이 같이 공부하는 목요일은 아주 난리통이다. 목요일에는 저학년이라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나는 민우와 아미르를 1교시부터 가르치고 고학년인 수민이와 샨드라는 2교시부터 가르치는데, 2교시가 정말 엄청나다. 아미르와 민우에게 익힘책을 쓰라고 하고 수민이와 샨드라에게 신경을 쓰면, 1분도 안 되어 이런 말이 들린다.


"민우 바보!"

"아미르 똥!"

"아니, 네가 똥민우야 키키키"

"에에에~"


그럼 다시 아미르와 민우에게 주의를 주고 글자 쓰는 것을 봐 준다. 그러다 보면 또 수민이가 갑자기 말한다.


"선생님, 근데 저는 야채가 싫은데 엄마가 자꾸 먹으래요."


수민이의 말을 받아주면 다시 샨드라가 말한다.


"선생님, 저는 다 썼어요."

"그래? 잘 썼네. 샨드라는 수업 시간에 어떤 과목을 제일 좋아해?"(배우는 주제가 '학교 수업'이었음)

"저는 미술을 좋아해요. 지난주에는 제가 그림을 그렸는데 잘 그렸어요. 제가 학원을 다니는데 학원에서는 영어로 배워요. 학원 선생님도 그림 잘 그렸다고 말했어요. 핑크색을 좋아해서 핑크 색으로 색칠하고 또........"


샨드라는 딴소리는 하지 않는 대신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엄청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정규 수업 시간에 언어의 문제로 부담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한국어 수업 시간에서까지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다문화 아이들은 정규 수업 시간에는 언어가 되지 않아 원치 않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렇게 수업 외 딴소리를 하거나 샨드라처럼 길게 이야기해도 최대한 들어주고 자연스럽게 다시 수업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그런데 두 명까지는 괜찮은데 네 명이 이러니 나도 정신이 없어진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좋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서 좋다. 아이들을 가르칠 자료를 준비하고 연구하는 것도 좋다. 좋은 만큼 내 체력도 목 상태도 받쳐줬으면 좋으련만. 앞으로 이 아이들과 더 재미있고 보람찬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를. 아자아자 힘내자!




* 1편 브런치 북

[브런치북] 다문화 학생들과 추억 (brunch.co.kr)


*'다문화 학생'은 외국인 학생이거나 부모 중 한 사람이 외국 국적 출신인 학생, 외국에서 태어나 학교 생활을 하다가 입국한 중도입국 학생을 말한다. 이들을 '다문화 학생'이라고 하는 것은 차별적이라는 의견과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의견이 있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내가 가르치는 학생을 '다문화 학생'이라고 지칭한다.


* 글에 나오는 학생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