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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06. 2021

9살 인도 아이 샨드라, 한국어 공부에 빠지다

저는 인도에서 왔어요

2020년 8월, A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인도 학생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샨드라(가명), 2학년이었고 부모님은 모두 인도 사람이었다. 아이는 1학년 때 한국에 왔는데, 그때도 다문화교육지원센터의 ‘찾아가는 한국어교육’ 프로그램으로 한글을 잠깐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잠깐만 배우고 말아서 한국어를 거의 못한다고 했다. 샨드라의 담임선생님은 샨드라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도 반 아이들을 모두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 샨드라만 챙겨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며 샨드라를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처음 샨드라를 만났을 때는 샨드라는 나에게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와 ‘고마워요’, '네/아니요'가 샨드라가 할 줄 아는 유일한 한국어였다. 수업 첫날에 샨드라는 시키지 않으면 말도 거의 안 하고 얌전했다. 내가 아무리 재미있게 하려고 해도 9살인 만큼 수업을 따분해할 줄 알았는데, 샨드라는 수업도 열심히 그리고 차분하게 잘 따라왔다. 그 당시 어디로 튈지 몰라 항상 지켜보고 잡으러 다녀야 하는 진수를 가르치던 나에게 샨드라는 굉장히 편한 학생이었다.


첫 수업 때는 서로를 소개하고 몇 가지 간단한 것을 물어본 후(고향, 좋아하는 것, 학교 생활 등) 한글 수업을 했다. 한글 기본 자모는 작년에 공부해서 알고 있어서 복습만 했고, 경음(된소리. ㄲ, ㄸ)과 격음(거센소리. ㅋ, ㅌ)을 연습했다. 외국인들은 평음(예사소리. ㄱ, ㄷ)과 격음, 경음의 소리 구분이 힘들어 이 단계에서 힘들어하는데, 샨드라는 아이답지 않은 집중력으로 내 발음을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정말 오랜만에 수업이 편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수업 때는 이중모음 수업했다. 이중모음은 샨드라가 특히 어려워한 발음이라, 나는 거의 3주 내내 수업을 시작하기 전 10~15분 동안 이중모음 발음을 연습시켰다. 다문화 한국어 수업을 하기 전인 대학교 한국어 어학당, 세종학당에서는 항상 정해진 진도에 맞춰서 수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여러 학생 중 한 학생이 연습이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진도대로 수업을 진행해야 해서 학생에게 미안했었는데, 다문화 한국어 수업은 억지로 진도에 맞춰서 수업을 나갈 필요도 없고 학생 개인의 성향과 특성에 맞게 수업을 할 수 있는 점이 편했다. 나는 샨드라가 빨리 한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그리고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샨드라가 특히 어려워한 한글 이중모음


샨드라는 첫인상과 다르게 수다스러운 면이 있는 학생이었다. 샨드라는 내가 금세 편해졌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야기는 영어로 했다. 성인들을 가르칠 때는 아무리 초급 학생이라도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듣고 말할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기 위해서 수업 시간에 한국어로만 말하거나 현지어나 영어로 말한 후에 한국어로도 말했다. 하지만 샨드라는 9살 아이였기 때문에 샨드라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호응도 해 주자 샨드라는 신이 난 듯했다. 게임을 하기도 하고 단어 설명도 재미있게 하면서 수업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반복적으로 듣고 따라하고 쓰는 활동을 계속 해야 해서 아이에게는 수업이 지루할 수 있을 텐데, 샨드라는 정말 재미있어 보였다. 샨드라에게 ‘How about studying Korean?(한국어 공부는 어때?)’라고 물어보니 웃으며 ‘It's fun!(재미있어요!)’라고 금방 대답했다.


두 번째 수업이 끝나고 샨드라가 나에게 ‘엄마가 내 연락처를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학교나 학생의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하지, 강사가 학부모와 직접 연락을 하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샨드라의 어머니가 왜 나와 연락하고 싶어하는지도 몰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난 흔쾌히 내 연락처를 알려 줬다.


사실 A 초등학교에서 내가 처음 가르치기로 한 학생은 샨드라가 아니고 러시아 출신 학생인 B였다. 안타깝게도 B와는 세 번만 수업을 했는데, 그 이유는 B가 세 번째 수업 이후 학교를 아예 무단결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A초등학교에서도 B의 부모님과 연락이 되지 않아 B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B가 그렇게 된 후 A초등학교에서는 마침 한국어 교육이 또 필요한 학생이 있다며 샨드라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다. 다행히도 나중에 B가 학교에 다니고 있는 걸 보기는 했는데, B가 무단결석을 했을 때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이 답답했었다. 내가 직접 학부모와 연락할 수 있으면 그런 답답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연락처를 준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샨드라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녀는 샨드라의 한국어 수업 시간을 확인했다. 나도 마침 방학 기간에 한국어 수업을 어떻게 할지 궁금했기 때문에 방학 기간 수업 일정을 논의했다. 그런데 샨드라의 어머니는 샨드라가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항상 표정이 안 좋았고, 학교에서 친구를 못 사귀어 외로워한다는 내용도 보냈다. 작년에 한글을 잠깐 배우고 말았다는 걸 들었을 때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데 학교 수업을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는가. 짐작은 했었지만 어머니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니 샨드라가 학교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한국어를 더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1주일이 지났을 때, 샨드라는 받침을 공부했다. ‘받침’은 다른 외국어에는 없는 개념이다. 게다가 한국어는 받침에 모든 자음을 쓸 수 있고 ‘ㄱㅅ, ㄹㄱ, ㄴㅈ, ㄴㅎ’ 같은 겹받침도 있는데, 정작 발음은 ‘ㄱ, ㄴ ,ㄷ, ㄹ, ㅁ, ㅂ, ㅇ’ 7개만 발음해서 외국인 학습자들이 받침 공부를 어려워한다. 하지만 샨드라는 이 어려운 받침도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열심히, 재미있게 공부했다.

 

샨드라는 글씨도 예쁘게 썼다. 정작 선생님인 나는 안 예쁘게 쓰는데...


받침 공부를 한 이후에는 인사 표현과 교실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공부했다. 표현을 연습한 뒤 직접 역할극을 해서 복습했다.


나 : I'm in the classroom. You go home. Then you should say ‘안녕히 계세요’ to me. I say ‘안녕히 세요’ to you.


나 : (교실을 나가며) 어떻게 인사해요?

샨드라 : 안녕히 계세요? No, 안녕히 가세요!


나 : (샨드라의 살짝 치며) 미안해요!

샨드라 : 괜찮아요.


나 : (손으로 배운 단어를 가리키며) 쓰세요.

샨드라 : (‘쓰세요’가 무슨 뜻인지 수업 자료를 보며 찾다가) O, Write! (단어를 쓴다)


산드라에게 인사말과 교실에서 쓰는 표현을 가르칠 때 쓴 자료. 출처는 서울대한국어 1A(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역할극을 하며 복습하니 샨드라는 더 재미있어했다. 마지막으로 수업을 마칠 때 샨드라는 나에게 90도로 인사하며 정확한 한국어로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이라고 말하며 갔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데 샨드라의 어머니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내용은 샨드라가 유튜브 동영상 주소를 나에게 보내고 싶다는 것과(샨드라는 유튜버이다. 매번 다른 콘텐츠로 영상을 찍어 올렸다. 정말 다재다능한 아이다.) 샨드라가 한국어 수업을 매우 재미있어해서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샨드라 어머니의 문자와 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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