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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08. 2021

어려운 한국어. 초등학생에게 어떻게 가르치나요?

저는 인도에서 왔어요



RTA 라면을 아세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한글은 배우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어 선생님인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려움과 쉬움은 상대적인 거라 그 정도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도 없고, 배우는 사람의 배경(출신 국가, 부모님, 환경 등)에 따라서도 다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도 한글은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쓰는 문자인데, 어떻게 그게 쉬울 수 있겠는가?


대학원에 다닐 때, 중국인 동기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 주신 적 있었다.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처음 배울 때, 같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유학생이 자기한테 ‘RTA 라면'이 너무 맛있다고 추천해 줬다고 한다. 그래서 마트에 가서 ‘RTA 라면'을 찾아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고 직원한테 물어봐도 그런 라면은 없다고 대답했단다. 그래서 친구에게 대체 ‘RTA 라면'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알고 보니 ‘RTA 라면'은 이거였다고 한다.

    

RTA 라면의 정체는 바로 '너구리'였다.


이 에피소드를 말해 주면서 중국인 동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게 바로 한글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한글을 보는 시점이라고. 한글은 외국인에게 너무 낯선 글자라고.


나는 7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한 번도 한글이나 한국어가 배우기 쉽다고 하는 학생을 못 봤다. 다들 하나같이 어렵다고 한다. 한국어나 한글이 배우기 쉽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순적이게도 모두 한국인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어 선생님은 ‘한국어는 배우기 어려운 언어. 한글은 외국인들에게 매우 낯선 글자’라는 것을 숙지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샨드라는 9살이다. 겨우 2학년밖에 안된 샨드라에게 어떻게 하면 어려운 한국어와 한글을 ‘재미있게’ 가르칠까? 이번 내용에서는 산드라에게 한국어를 재미있게 가르친 방법을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1) 사용한 교재


샨드라와 수업을 할 때 사용한 교재는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 한국어 저학년 의사소통 1>이다. ‘표준 한국어’는 국립국어원에서 국내 다문화·외국인 가정 초·중·고등학생들을 위해 개발한 교재이다. 책 이름대로 말하기 위주의 교재로 학교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위주로 연습할 수 있는 교재이고 저학년용과 고학년용이 따로 나누어져 있다. 본교재인 의사소통 한국어와 부교재인 익힘책이 있으며, 교과 학습과 연계해서 학습할 수 있는 <학습도구 한국어>도 있다. 국내 다문화 한국어 수업에서는 보통 이 교재를 사용한다.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 한국어 저학년 의사소통>은 스티커(교재에서는 ‘붙임 딱지’라고 한다)를 이용한 활동을 포함해 저학년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게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담고 있어서 좋다.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 한국어> 시리즈


2) 한국어 수업 방법


수업을 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은, 교사가 설명을 하는 것보다 학생이 배운 것을 실제로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습을 할 때는 단순히 말로만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서 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수업도 훨씬 재미있고, 배운 내용도 더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자기소개 하기' 수업을 예시로 산드라에게 한 수업 방식을 소개하겠다. 설명은 최대한 한국어로 했다.


<자기소개하기>


이전 수업에서 배운 문법과 표현 : ‘-은/는 –이에요/예요’, 나라 이름

이번 수업 목표 문법 : ‘-은/는 –입니다’

기능 : 자기소개하기


① 도입 : 전에 배운 표현을 연습한다.

 

교사 : 샨드라.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샨드라 : 저는 인도에서 왔어요.

교사 : 선생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샨드라 : 선생님은 한국 사람이에요.


- 설명 : ‘-은/는 –입니다’의 기능 설명.


* 주의: ‘-입니다’는 명사 뒤에 붙어서 정중하거나 공식적인 상황에서 서술하거나 말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나, 이걸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에게 그대로 설명하면 안 됨. 초등학생에게 ‘정중한 상황’이란 발표할 때이므로, ‘발표할 때 쓰는 말’이라고만 설명하면 된다.


교사 : 자, 잘 들으세요. (교재 mp3 파일을 들려준다)


교사 : 여기(의자)에서 이야기해요. 둘이 이야기해요. ‘저는 한국사람이에요.’ 말해요. 저기(교탁, 칠판 앞)에서 이야기해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해요.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말해요.

샨드라 : Oh, I understand. when I give a presentation, say '입니다' right? (아, 알겠어요. '입니다'는 발표할 때 사용해요?)

교사 : 맞아요. 똑똑해요! You're smart. (칠판 앞으로 가서) 샨드라가 한국에 왔어요. 친구들 처음 봐요. 친구들에게 인사해요. ‘저는 샨드라입니다. 인도에서 왔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말해요. 그럼, 따라하세요. (교재 예문을 읽는다)


* 주의 : 새로운 문법인 ‘습니다’가 나오지만 목표 문법은 ‘입니다’이므로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전에 ‘만나서 반가워요’를 배웠으므로 발표할 때는 ‘만나서 반갑습니다’를 쓴다는 정도만 알려주면 된다.


② 쓰기 연습 : 익힘책에 있는 쓰기 연습을 한다. 교사와 같이 자기소개 발표문을 쓴다. (안녕하세요. 저는 샨드라입니다. 인도에서 왔어요. A초등학교 2학년 1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③ 말하기 연습 1 : 실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연습을 한다.


교사 : (칠판 앞으로 가서) 안녕하세요. 저는 OOO입니다. 한국 사람입니다. A초등학교 2학년 1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 박수!(짝짝짝)

 

교사 : 샨드라, 여기 와요. 자기소개해요. (샨드라의 발표가 끝나면 크게 박수를 친다)


④ 말하기 연습 2 : 교재에 있는 ‘연극하기’를 활용한다. 교재에 있는 예문을 읽고 역할극을 한다. 교재 부록에 동물 손인형 놀이 재료가 있지만, 샨드라와 직접 동물 얼굴 종이접기 놀이를 한 다음 그걸로 역할극을 했다.

교재에 있는 활동 외에 추가 활동도 만들어서 했다.


교사 : (교재에 있는 역할극을 다 한 다음에) 샨드라는 토끼, 선생님은 강아지예요. 멍멍! 안녕하세요? 나는 한국 강아지예요. 어디에서 왔어요?

샨드라 : (토끼가 뛰는 흉내를 내며) 안녕하세요? 나는 인도 토끼예요. 인도에서 왔어요.

교사 : 와!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1학년 1반이에요. 몇 학년 몇 반이에요?

샨드라 :  2학년 3반이에요.

교사 : 잘했어요! 이제 샨드라는 돼지예요. 돼지가 질문하세요.


교재 '자기소개하기' 학습 부분

 

3) 쉬는 시간 


샨드라의 수업은 초등학교 수업 시간처럼 1교시 40분으로 해서 총 2교시 수업을 했다(‘찾아가는 한국어교육’ 수업 시간은 한 학교 당 하루 2교시가 최대였다) 연달아 수업을 하면 아무리 재미있는 수업이라도 지루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중간에 꼭 10분 쉬는 시간을 두었다. 1:1 과외 식이었기 때문에 그냥 쉬라고 하면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내가 사 온 간식을 먹거나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샨드라와 일상적인 이야기를(영어로) 하거나 종이접기를 했다. 샨드라가 종이접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종이접기를 하면서 쉬는 시간에도 한국어도 연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 : 동물을 접어 봐요. 무슨 동물을 좋아해요? Let's make animal. What kind of animal do you like?

샨드라 : Yes! I like cats! (네! 고양이를 좋아해요!)

교사 : 고양이. 고양이를 좋아해요? 그럼 고양이를 만들어요. 먼저, First, 색종이를 반으로 접어요.(교사가 행동으로 보여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은 한국어로 말함) 그다음, Next, 펼치고 반대로 다시 접어요.

 

이렇게 쉬는 시간에 간단한 종이접기를 하면 집중력도 좋아지는 효과도 있고, 종이 접기가 아주 예쁘게 되면 샨드라는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가 되어 수업에 더 잘 따라올 수 있었다.


4) 특별하게 가르치기(색깔, 게임)

 

가끔은 교재에 없거나 교재에 있지만 특별하게 심화활동을 할 수 있는 교구를 준비해서 갔다. ‘한복’을 소개하기 위해 한복을 입은 아이 색칠 도안과 색연필을 준비해서 같이 색칠하며 한복에 대해 설명을 하기도 했다. 샨드라와 나는 각각 도안 한 개를 선택해 예쁘게 색칠했고 다 색칠한 것을 샨드라의 어머니에게 카톡으로 보내기도 했다. 샨드라는 내가 가져온 색연필로 나를 그려주고 싶고 했다. 그래서 나는 샨드라를 그리고 샨드라는 나를 그렸는데, 고맙게도 마스크 쓴 모습과 마스크를 안 쓴 모습 두 개 다 그려 줬다. 그리고 내가 그린 자기 모습이 예쁘다며 나를 따라서 또 그림을 그리고 색칠했다.


(좌) 한복 색칠하기 / (우) 내가 그린 샨드라와 샨드라가 그린 나


또 그림 카드를 이용해서 게임을 하며 배운 내용을 복습하기도 했다. 그림 카드를 이용한 게임은 진수를 가르치면서 썼던 방법으로, 카드를 책상 위에 펼쳐 놓고 교사가 말하는 카드를 찾아내는 식으로 했다.


진수야, 놀이로 어휘 배우자 (brunch.co.kr)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색깔’ 표현 수업이었다. 색깔 표현을 공부하기 전에 ‘꽃집, 서점, 빵집’ 등 가게 어휘 공부를 했었는데, 색깔을 공부하고 난 다음에 인터넷에서 여러 장소 색칠 도안을 주며 색칠하고 싶은 것을 고르게 했다. 그리고 내가 완성 예시본을 보고 샨드라에게 어디를 어떤 색깔로 칠하는지 말해 주는 것이다. 활동 전에 색연필마다 한국어로 무슨 색인지 쓴 견출지를 붙여 놨다.


교사 : (손으로 가리키며) 벽은 노란색이에요. 창문은 하늘색이에요.

샨드라 : (노란색과 하늘색을 찾는다) Oh, I found it. And I think this is ‘빨간색’. right? (아, 찾았어요. 그리고 여기는 '빨간색'으로 칠하는 거 맞아요?)


'가게' 종류를 공부한 다음 색칠하기 활동으로 색깔 어휘와 가게 어휘를 복습했다.


이 수업을 하고 난 다음에는 다이소에서 ‘아이클레이’라는 색깔 점토를 사서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드는 활동을 했다. 색깔 점토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면서 색깔 복습도 하고, 색과 색을 섞었을 때 어떤 색이 나오는지도 알아보았다.

 

교사 : 빵을 만들어요. 그런데 여기 갈색이 없어요. 어떻게 해요? 빨간색하고 초록색을 섞어 봐요. 짠! 갈색이에요!

샨드라 : Interesting! Then, If I mix 빨간색 and 하얀색?... It's pink. I like pink!(재미있어요. 만약 빨간색하고 하얀색을 섞으면.... 분홍색! 저는 분홍색을 좋아해요!)

교사 : 잘했어요! 이건 분홍색. 따라해요. 분홍색.

샨드라 : 분. 홍. 색.


샨드라는 이날 아이클레이 색깔점토로 햄버거와 컵케익, 파스타를 아주 예쁘게 만들었다.

  

샨드라가 만든 파스타와 햄버거, 컵케익


이렇게 아이가 배운 것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구상하고 교구를 직접 만들거나 사서 준비하니, 노력과 비용은 들어도 수업을 재미있게 할 수 있어서 학생도 나도 만족할 수 있었다.




<교재 이미지 출처>


표준 한국어 저학년 의사소통 1 e-book : https://kcenter.korean.go.kr/repository/ebook/element_low_comunication1/index.html

한국어교수학습샘터 https://kcenter.kore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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