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혼자만의 시간
지금 집에 혼자 있다.
오늘 몸살 기운이 있어서 동생에게 아이를 맡기고 오전 내내 자고, 동생이 옆지기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가줘서 나는 집에서 혼자 쉬고 있다. 꿈만 같은 시간.
사실 집에 혼자 있어도 눈에 보이는 할 일이 태산이라 나는 잘 못 쉰다. 끝도 없는 집알일만하다가 아이가 돌아오면 너무 허무하기에 지금처럼 의식적으로 쉬어줘야만 한다. 늘 멍 때리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소원이라고 하면서 막상 시간이 생기면 좀처럼 가만히 못 있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니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는지도.
작년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가능한 두세 시간이라도 혼자 밖으로 나갔다. 워낙 혼자서도 잘 먹는 일인이라서 궁금했던 곳에 가서 커피도 두 잔씩 마셔보고, 배고플 때 혼자 짬뽕 한 그릇에 탕수육도 하나 추가해서 먹고. 평소에 가정보육 때문에 제대로 먹고 마실 수 없기에 혼자 있을 때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무언가를 혼자서 천천히 즐기고 싶었다. 특히 그때는 차가 없어 정말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그런데 작년 말쯤 막상 차가 생기고 나니 혼자서는 어디를 잘 안 가게 된다. 그냥 집 밑에 스벅에서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 해서 동네 산책 정도. 비록 혼자서도 어디를 가나 잘 먹고 잘 있긴 하지만 혼자 있을 수 있다면 집을 선택하는 사람이라 옆에 누가 없으면 좀처럼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면 또 부지런히 움직여봐야지라고 생각만 한다.
어제오늘 동생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 길게 가져보니 확실히 아이와 떨어져 있을 때 심신이 편하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만) 아무리 다른 사람이 아이를 케어해 줘도 아이와 한 공간에 있으면 계속 신경은 쓰여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지난주에 시댁에 갔을 때 다시 한번 확실히 느꼈다. 다음부터 특별한 경조사가 있지 않는 한 시댁은 나 혼자 운전해서 아이 데리고 가야겠다. 한 명이라도 제대로 쉬어야지, 둘이 가서 한 명도 제대로 쉴 수 없다면 그것처럼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을까?(옆지기는 시댁에 가면 안마의자와 거의 한 몸이 되어 있는데 내 눈치만 보고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게 더 얄미움)
저번에 나 혼자 아이 데리고 가니까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부모는 다 같은 마음인지라 자신의 아들이 집에서 쉬고 있다는 데 안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나? 옆지기는 회사일로 거의 매일 아버지 어머니 얼굴을 뵙기 때문에 굳이 주말에까지 얼굴을 보여드릴 필요는 없다.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봤을 때 시댁에 혼자 가는 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물론 예전처럼 매주 가는 건 힘들겠지만.
Anyway, 혼자 있으니까 시간이 왜 이리 잘 가는지... 집안일 이외의 뭐라도 해보고 싶어 블로그도 끄적이고, 동생이 추천해 준 <금쪽같은 내 새끼>도 빠른 속도로 봤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볼 때마다 폭풍 눈물(주로 시댁에서 본다) 원래 집에서는 시간이 아까워 TV프로그램은 절대 보지 않는데 동생이 금쪽같은 내 새끼는 어떤 편을 봐도 하나라도 배울 게 있다고 해서 봤는데 역시나였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오늘 배운 걸 적용해 봐야지.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늘 괴리감이 존재하지만 '이상'을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면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다. 이 마음이 아이가 징징대는 순간 바로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