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의 일기
2019.1.3
속초 여행기(라 쓰고 방문기라 읽는다.)
최근 언니에게 슬픈 일이 있어서 가족들이 위로해주기 위해 속초로 다 같이 떠났다. 사실 이렇게까지 우리 가족이 행동력이 빠를 줄 몰랐는데, 오전에 약속을 가는 언니와 속초 얘기를 했고 내가 병원과 맥도날드를 다녀와서 급하게 대충 잠옷만 챙기고 카톡을 확인하니 엄마가 숙소 예약을 마쳤다는 연락을 한 뒤였다. 그렇게 한 30분 뒤 다시 병원 갈 때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강남에 있던 엄마와 언니를 아빠와 내가 탄 차에 태운 뒤 바로 속초로 떠났다. 너무 순식간이어서 지금 잘 기억 한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기에 살짝 들떠서 블루투스로 노래도 연결해서 듣고, 휴게소에서 라면도 먹으며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그중 제일 기대하고 있던 건 숙소에 딸려있는 사우나에 가서 온천을 즐길 생각을 하니 너무 신나는 거다. 그런데, 숙소 도착하기 한 30분 전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어쩐지 예정일이 점점 가까워졌는데 하지 않아서 흠, 설마 오늘 내가 하지는 않겠지 했는데 설마는 역시 사람을 잡는다. 계획 없던 여행이라 따로 대비도 하지 못해서 결국 온천은 포기해야만 했다. 나만 못하게 된 게 조금 우울했지만 지금의 나보다 백배는 더 우울하고 슬픈 언니가 옆에 있었기에 금방 기분을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하.. 그래도 지금 다시 생각하니 아쉽긴 아쉽다.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한 뒤 다시 항구 쪽으로 가 회와 맥주를 사고 다 같이 숙소에서 언니를 위로하며 싹 다 먹었다. 언니와 나는 맥주를 반 이상 남겨 엄마에게 혼이 나긴 했지만 즐거운 식사였다. 저녁을 먹고 나니 벌써 시간이 꽤 늦어서 잘 준비를 마치고 거실에 침대 두 개엔 부모님이, 안쪽 방엔 우리가 이불을 깔고 누워있었는데 일찍 자기 싫은지 엄마가 와서 한참을 우리와 수다를 떨다가 침대로 갔다. 그러다 또 우리에게 ‘ 엄마랑 누워있고 싶으면 침대로 와~ ‘ 하면서 말해서 언니와 나는 엄마 우리랑 같이 있고 싶은 것 같은데 가자. 하면서 또 한참을 엄마 침대에 같이 누워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 다 같이 일출을 봤다.
새해에 (물론 1월 1일은 아니지만) 일출을 실제로 본 건 엄청나게 오랜만이라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앞으로 되게 열심히 살 1년을 다짐해야 할 것만 같고, 바르고 정직하게만 살아야 할 것 같고.. 사실 그런 다짐은 내일, 아니 오후면 사라질 테지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또 1년을 잘 지나가게 해달라고 그렇게 같이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조금 쉬다가 밥을 먹고, 38선 휴게소로 가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바라본 바다에는 어떤 고독한 서퍼가 혼자 파도에 맞서며 서핑 중이셨는데, 우리 일가족이 모두 그를 바라보며 한 마음으로 응원했다. 우리가 돌아갈 때까지 가지 않으셨는데 감기 안 걸리셨기를.. 나도 바닷가에 잠깐 내려가 맑은 바닷물을 구경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바다는 왜 가기만 하면 신이 날까, 그냥 물결치는 물들을 보고만 있어도 시간이 훌쩍 간다. 나중에 언니가 찍은 영상을 보니까 아빠가 옆에서 낭만은 얼어 죽을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게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역시 아빠랑은 감성이 안 맞는다.
점심을 국수로 간단하게 먹고 내가 추천 한 카페를 갔는데, 되게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카페였다. 부모님은 금방 흥미를 잃으셨고 언니와 나는 사진을 수백 장 찍은 뒤 다 같이 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언니의 다시 시작된 우울 때문에 내가 시간도 지났는데 그만하라고 퉁명스럽게 얘기하자 언니가 서운해했다. 사실 나도 그랬으면 안 됐는데, 타인의 우울을 내 마음대로 재단해선 안되는 건데 알면서도 왜 그러는 걸까? 시장에서 둘 만 남겨져서 걸어야 했을 때 언니가 조금 이해해 달라 말했고, 나도 언니의 마음을 다 안다고 얘기했다. 물론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이해는 한다 언니의 마음을.
안 사가면 서운한 만석 닭강정을 사들고 장어를 먹으러 갔으나 나의 급격한 체력 저하, 이미 많이 먹은 간식들로 인해 내 몫을 다 먹지 못했다. 너무 아쉽다 장어 정말 맛있었는데… 분명 일본에서도 다 먹지 못해 후회했던 것 같은데 또 왜 이럴까? 엉엉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아쉬웠지만 다들 다음 날 할 일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