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by 안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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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이원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대상은 모두 내부의 일그러짐입니다. 우리는 이 내부의 반응을 마치 외부의 사물인 것처럼 바라보지만 이러한 믿음은 허상을 실상으로, 가변적인 것을 고정적인 것으로 취급하려는 에고의 바람에 불과합니다. 물론 자아의 입장에서 인식된 대상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몹시 괴이한 주장처럼 들릴 것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세계가 가변적이든 언어적이든 우리의 입장과는 무관한 존재가 객관적으로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눈앞에 나타난 대상(사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쉽게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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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의 설명에 따르면, 어느 날 색맹인 물리학자가 연구 자료를 들고 나타나서는 “파장 497~530나노미터 범위의 전자기파에 의해 유발되는 정보를 감각 수용기들이 처리한 결과물을 사람들은 초록이라고 부른다”라고 제아무리 정확한 분석을 내어놓아도, 물질계의 수식과 실제로 우리가 바라본 초록색은 서로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고 합니다. 전자기파에 관한 지식을 통해 초록색의 물리적인 상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한다고 해도, 분석 자료와 실제로 경험되는 초록색은 전혀 다른 영역의 ‘사실’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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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전자기파라도 사람에 따라서, 종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인상을 볼 뿐만 아니라, 뇌에서 색을 처리하는 과정과 실제로 색을 보는 경험 역시 서로의 세계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감각 대상은 객관적인 실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세 종류의 원뿔세포가 있으며, 이를 통해 가시영역에 속하는 전자기파를 수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눈으로 빛이 들어와 시신경을 건드리면 그 자극은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뇌의 시각중추로 전달되고 공간적 분석을 거쳐 색이라는 감각으로 경험됩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원뿔세포로 들어온 빛은 빨강, 초록, 파랑으로 보이게끔 뇌로 전달되는 것이 고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외의 색깔들, 이를테면 노랑은 허상에 대한 허상이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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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길을 걷다가 노란색 나비를 보게 되었다면, 이때 노란색으로 해석되는 감각은 실체를 가진 대상이 아니라 초록과 빨강에 해당하는 신호를 뇌가 조합하여 재창조한 허상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초록과 빨강도 물감이나 빛처럼 섞여서 노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뇌가 두 종류의 신호를 각각 받아들여 하나의 색으로 인지하는 것일 뿐입니다. 물리학적 세계관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노란색은 데이터로만 파악되어 이해될 뿐, 실제로 우리가 바라본 노란색은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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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을 선호하는 사람이 초록이라는 자극과 빨강이라는 자극을 통해서 착각된 노란색 티셔츠를 구매하고서 마음에 들어 한다면, 이것은 하루는 새를 보고 또 다음 날 하루는 새장을 봤는데, 이로써 마치 새가 새장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안타까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대상은 물질이 아니므로 뇌를 아무리 뒤져본들 노란색 티셔츠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몇몇 뇌 활동 과정의 총체로 도출된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그 착각은 뉴런의 활동 영역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주는 기본적으로 무색이며, 과학은 우리가 무색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색의 발생 원리만을 추적해서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경험되는 노랑은 특정 범위의 전자기파를 감각 수용기들이 처리한 결과물의 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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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구현된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게임이 있다고 상상해보겠습니다. 화면에는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중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던 모니터가 고장 나버리는 바람에 화면에 검은 바탕만 출력되는 상황이라면, 우물과 개구리의 이미지가 존재했었던 세계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컴퓨터 내부의 연산 과정에서 디지털 신호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우물과 개구리의 이미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론 모니터를 고쳐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보고 있는 개구리는 당신의 뇌나 컴퓨터의 화면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당신의 옆에서 우물 안 개구리 게임을 함께 보고 있더라도 그 사람의 눈에 들어온 개구리는 당신이 보는 개구리와 같은 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개구리와 타인의 개구리는 같은 세계를 뛰어다니는 절대적인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산 과정을 거쳐 출력되는 결과물을 연산 과정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연산 과정이 결과물과 무관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물이 흘러나오는 모니터는 우리 내부의 어느 지점에 해당하며, 그렇게 흘러나오는 우물은 도대체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존재하는 것은 다만 대상에 의한 대상에 대한 착각뿐입니다. 전자기파조차도 결국에는 다른 대상에게 의존하여 나타나는 작용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는 대상은 없습니다. 즉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에서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전자기파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파장은 반드시 자신과 닿은 대상의 성질에 따라 온갖 색깔로 나타날 것이며, 그렇게 나타난 파장은 관측하는 이에 따라 온갖 색깔로 착각될 것입니다.


하나의 파장이 돌과 잎사귀와 놋그릇 등의 대상에 따라 천차만별의 범위를 가지며, 그렇게 나타난 파장이 인간과 고양이와 잠자리 등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 수많은 색깔로 착각되듯이, 세계에는 관찰자의 조건에 대한 조건 말고는 없습니다. 무언가는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여서 존재하므로 결국 우리는 무언가에 의한, 무언가에 의한, 무언가에 대한 가능성 중 하나의 착각만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뇌과학이 대대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초록과 빨강을 노랑으로 수용하는 독립된 구조를 발견하더라도, 그 구조 속에는 또다시 무수한 조건과 의존의 그물이 던져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실재일까요? 조건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착각으로 탄생합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착각된 그 사실만큼은 착각될 수 없습니다. 대상들은 서로에게 의지하여 나타나므로 고정된 실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조건에 따라서 일어나는 착각만이 가능할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 착각이 일어났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착각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할 수는 있어도 거짓말을 했다는 그 사실이 거짓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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