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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농부 Jan 20. 2021

느림의 미학은 개뿔 -2

part-2

비록 몸은 쉴 틈 없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한두 해 보내보고 나면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기 시작한다. 점차 적응하는 단계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럼 바쁜 듯이 보내는 생활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실질적인 본업에는 최대한 집중하여 일을 처리한다. 본 농장처럼 주 4일제로 일하는 계획을 세워도 괜찮을 것이다. 초기 1~2년은 이렇게 본업과 주변 일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이다. 어쩌면 이 시기가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일 수 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성과는 금방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내가 전에 했던 외식업처럼 가게를 오픈하여 바로 매출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농사는 수년간의 경험이 쌓여야 한다. 내가 하는 달팽이 양식업 또한 마찬가지인 게 아닌가 한다. 힘들거나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지만 다년간 겪어보니 농사와 비슷한 듯하다. 물론 나보다는 최소한 오랜 시간에 걸쳐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카페, 유튜브 등 참고할 수 있도록 꾸준하게 만들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땐 당연히 힘들 것이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각오와 다짐을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바심 불안함 등이 금세 찾아오기도 한다. 나 역시 초기 2년이 지날 무렵 찾아온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위기였다. 예상했던 여유자금은 금세 바닥이 났다. 아니 심지어 연금 적금 해약도 모자라 보험 약관 대출까지 받아야 했었다. 매출은 첫해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는데도 말이다. 단지 금전적인 여유보다 중요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달팽이였다. 처음 언급했듯이 기본적으로 달팽이는 키우는데 걸리는 기간은 약 6개월이다. 초기 분양받은 달팽이로 조금씩 늘려가긴 했지만, 생각처럼 많은 양을 늘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판매는 조금씩 늘어나는데 판매할 달팽이가 계속 부족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는가. 다른 농가를 통하여 구매하여 다시 판매를 이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많게는 한 달에 500kg 이상을 구매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달팽이를 크게 키우는 농가가 많이 없다 보니 부족한 물량을 충당하는 그것조차 어려웠다. 결국, 매출은 늘었으나 이익은 계속 적었던 이유다. 그래서 내가 상담 시 항상 판로 걱정에만 걱정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얘기다. 시작하셔도 판매할 달팽이도 없을 텐데 왜 그렇게 판로 걱정부터 하시느냐고 말이다. 물론 당장 판매를 시작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유가 있다면 괜찮겠다. 아니면 나 같은 경우를 참고하여 미리 대책을 대비하거나 마련한다면 나보다 훨씬 빨리 정착할 수도 있겠다. 내가 2년이 걸린 것을 1년 아니 6개월이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이득인가. 사실 이러한 것들이 몸소 겪어보지 않는 이상 쉽게 체감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먼저 예상해 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한다. 사실 내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달팽이를 키우지 못한 사정은 또 따로 있다. 단순히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처음 분양받은 6천 마리 가지고 어떻게든 늘려 보려고 안간힘을 썼었다. 6천 마리가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다. 당연히 이걸로 잘만 하면 되겠다는 다소 막연한 생각도 있었다. 또한, 내가 잘 키우지 못하고 잘 번식시키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았을까. 지금의 나라면 중간중간 달팽이를 보충해서 채워 넣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훨씬 이득인 셈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가진 달팽이로 어떻게든 번식시키려고만 애를 썼다는 것이다. 사실 그 당시 중간에 추가로 달팽이를 구매하여 보충할 여력도 없었고 추가 구매하는 비용도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의 내가 분양하는 분양가보다 높았다. 이러한 이유로 2년이라는 시간을 힘겹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 시간을 대부분은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여러 차례 지켜보기도 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이러한 점들을 사전에 누군가가 미리 조언해주고 코치를 좀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엇보다 외롭게 홀로 전전긍긍하며 버티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하지만 달팽이는 내가 지어야 한다.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버티며 갈 수 있어야 한다. 느리면서도 느리지가 않다. 주위에서 보기엔 느긋하게 키우며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밑에선 정신없이 오리발 짓을 해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날아올라 유유히 즐기는 날이 오게 된다. 그런 일상이 만들어지면 그동안 수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느림의 미학은 모르겠고 오늘 할 일이나 내일로 미루지 말자. 내일로 미루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신부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곤 한다.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내일로 미루는 겁니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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