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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Jul 26. 2022

시절 인연을 보내주는 방법

인연에도 시절이 있단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때맞춰 찾아올 때마다 보내줘야 하고 맞아줘야 하는 것들이 있듯이.

그렇게 인생의 계절마다 함께할 수 있는 인연이 있는 반면, 또 때에 맞춰 보내줘야 하는 인연도 있단다.

그리고 또 해가 지나서 같은 계절이 돌아와 다시 만나게 되면 함께 걷게 되는 그런 인연이란다.


춥고 쓸쓸하기만 했던, 체감상 가장 길었던 것만 같은 겨울 같던 인생의 시절이 지나고 나는 봄을 맞는 중이다.

인생의 계절이 바뀌는 탓일까.

어떻게 하면 더 소중히 품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만 하던 인연이 요즘은 골칫덩어리로 바뀌었다.


계절이 바뀌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를 대하는 나의 모습이 날로 날로 점점 더 추해지는 게 느껴진다.

어느새부터인가, 겉으로는 소중한 인연을 대한다고 하지만 불쑥불쑥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튀어나간다.

예전에는 그가 조금만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내 탓을 하며 사과하기 바빴었는데, 이제는 관계가 불편하게 된 계기가 모두 그의 탓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한다.

이런 날 발견하며 흠칫거리며 놀라면서도, 생각의 흐름은 쉽게 바뀌지가 않는다.


내 마음과 겉치레 행동의 편차가 크면 클수록 자기혐오가 피어나고, 또 결국 그 자기혐오의 끝은 아무것도 모를 상대를 향한 분노다.


예전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림없이 맞아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삐걱거리는 느낌이다.

우리는 서로 너무 변해온 거고, 이젠 서로 다른 계절을 나고 있어서겠지.


어느새 나는 속으로 네게 어떻게 똑같이 돌려줄까,라고 생각한다.

원수를 대해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다.

차라리 원수는 안 보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관계성으로 인해 만나게 된 자리에서 나는 부글거리는 분노를 감추며 태연하게 웃는 모습으로 나를 향해 칼을 던지는 것만 같은 네 태도를 가만두지 않으리라고 칼을 간다.


예전에는 섭섭한 부분에 대해 툭 던지고 그렇게 툭 사과하고 툭툭 털어버리면 그만이었는데.

우린 서로 불편해하는 기색을 서로에게 빈틈없이 드러내면서도, 그 쉬운 한마디 툭 던지지 못한다.

이미 균열이 나버릴 대로 나버린 이 관계에 약한 힘이라도 닿는 순간 산산조각이 난다는 걸 알아서일까.


나도, 너도 참 어중간하게 착하고 어중간하게 못되서인가 보다.

아니면 어쩌면 10년여 년간 이어온 우정에 먼저 돌을 던진 자의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서로에게 이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오늘에서야 알겠다.

이유 모를 답답함이 가슴을 며칠간 가득 매우고 나서야 나는 이제야 확실히 알겠다.

책임회피고 뭐고,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는 것을.

너를 만나고 나면 절망과 자기혐오에만 빠져들어가 내가 잘못된 줄만 알았는데, 다른 누구를 만나도 그런 감정은 들지 않고 좋기만 하다는 걸 알아버렸다.


오래된 우정, 그간 쌓여온 고마움 때문에 널 미워하는 나를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는 걸.

고마운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서로에게 어떻게 하면 더 큰 상처를 돌려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것만 같은 이 관계를 지킬만한 힘도 내게 이젠 남아있지 않다.


네가 이미 나와의 관계에서 주변에 피해자라고 이야기해둔 걸 들었다.

한때 친구라 믿었던 네게 털어놓은 나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나의 악함을 증명하려고 애를 썼던 걸 들었다.

날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고 취급한 것까지.


여태 가해자가 되는 게 무서워서 참았지만, 이젠 그냥 놓아주려 한다.

바보같이 따지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널 떠나보내려 한다.

원수에게도 잘하지 않을 언행을 쏘아대는 걸 보니, 난 어쩌면 네게 원수보다 더한 존재인가 보다.


내가 놓으면 그렇게 물 따라 흘러 흘러 가주고, 언젠가 같은 계절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가서 한번 보자.

같은 계절에 함께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고, 네 덕분에 좋은 것도 참 많이 경험했다.

나의 20대의 대부분을 함께해주어 고마웠고, 미숙했던 시절을 보내며 서로를 견디며 우정을 키워갈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젠가 다시 한번 보게 된다면, 긴 시간이 흘러 이 모든 마음이 정리되고 좋은 추억만 남게 된다면.

우리 그때 다시 시절 인연으로 만나 즐겁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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