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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Aug 09. 2022

때로는 가까운 관계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야 한다

최근에 가까웠던 관계들을 재정립하는 시기를 거쳤는데, 한 발짝 떨어져 모든 상황을 되짚어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들더라.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자각하지 못하고 여태 가까웠던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놓지 못하던 나도 참 괴로웠지만, 그래서 동시에 나도 참 상대들을 괴롭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관계들을 놓아주고 조금 거리를 띄워야 한다는, 한참 전부터 나타났던 신호들을 무시한 탓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 관계들을 되돌아보면 내게는 괴로움과 상처만 남았다.

예전처럼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미련이 있는 것도 전혀 아니다.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시켜 보려고 나를 억누르며 그들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던 나날들.

먼저 관계를 놓았다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끈기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 이름들에 집착하듯이 이미 내게 독만 되는 관계들에 매달렸었다.


이제야 생각해보니, 나는 그들을 소중하다고 말을 했지만 내 행동들은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와 비슷했다.

그때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들을 만나러 가는 내 마음은 너무 괴로웠고, 그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훨씬 더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때까지 쌓아왔고, 그때까지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그들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으로 억누르려고 애를 썼다.

그들의 어려움을 들을 때 그들의 상대방의 입장을 더 이해하면서, 어쩌면 나는 과거에 그들로부터 상처받았던 나를 상대들에게 투영시켰다.


겉으로는 그들에게 공감하는 척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상대들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여태 수만 번 그런 행동이 나를 상처 입힌다는 걸 말과 행동으로 표현했어도 그들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마주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지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기에, 나는 무조건 그들과 잘 지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였으니까.


아마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 불렀던 사람들도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우리의 관계는 서로를 향한 공감보다는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로 더더욱 바뀌어 간 건지도.


그가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관계의 끝에서 나는 그를 흠집 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었다.

어떻게든 그의 흠을 잡고 싶었고, 그를  미워할  있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어도, 내 진심은 그에게 전해졌을는지도.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너를 놓으니, 되려 네가 좋은 사람으로 내 마음에 남는다.

내 마음속에 집이 있다면 널 매일마다 가장 안으로 들이던 내가 널 현관문 밖으로 몰아내고 나니, 편하다.

네게 항상 받던 무시와 무례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다른 사람들을 대하며 새삼 깨닫는다.

나를 향한 네 부정적인 관점이 모두가 말하는 내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어쩌면 네 모습을 이렇게까지 만든 건, 이 관계를 이렇게까지 악순환으로 만들어버린 건 더 일찍 행동하지 못한 나일 런지도.

이 정도가 내가 갖고 있는, 이 관계의 틀어짐의 원인에 대한 내 지분인 것 같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에 대해 더 들어볼 생각은 아직까지는 없다.


거리를 두는 내게 그는 서운해하고, 날 붙잡으려 노력한다.

내가 그와 관계를 좋게 유지하던 순간 내가 수없이 말했던 그것들이 오랜 시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걸 그는 알 수 있을까.

아마도 그가 바뀌기 전까지는 모를 것이다.

아마 여전히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욕을 하고 있을지도.


하지만 그러나 말거나 이제는 훨훨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처럼 가볍고도 시원한 마음이다.

그는 여전히 현관문 밖에 서있는, 내가 들일 마음이 생기지 않는 이상 한낱 타인일 뿐인 사람이니 말이다.


너무 가까웠던 관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 보니, 이렇게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더 이상은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와 한때 남겼던 좋은 추억과 평온한 마음.

그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충만함만 남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도 언젠가 자유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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