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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에서 내 짝인지 어떻게 아나요

너와 나의 시그널 증폭

by 해태쀼

나는 서른다섯 살까지 모태솔로였다. 적극적으로 짝을 찾기로 마음을 먹은 서른두 살의 나.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만날 여건이 도저히 되지 않았다. 지인의 소개는 한정적이었고, 직장은 남초였으며, 연고가 없는 곳에서 홀로 살게 됐다. 남들은 잘만 연애하는 것 같은데, 나는 연애가 왜 이렇게나 어려운 것인지, 내가 짝을 찾기로 작심하고 약 3 년 여의 시간은 마치 자갈밭에서 보석을 찾는 듯한 심정이었다. 보석은 빛을 받으면 반짝거리기라도 하지, 내 짝은 어떻게 알아보나. 앞이 깜깜하고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닥치는 대로 소개팅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지인소개는 물론, 만남 어플 5종, 결혼정보회사(이하 결정사) 3 곳을 등록하여 소개팅을 시도하였다. 이렇게 3년간 짝 찾기를 시도하여 결정사 등록비부터 소개팅 데이트 비용까지 모두 합한 지출 금액은 1,000 만원 가량. 소개팅 횟수만 수 십 번이 넘어감에 따라 지쳐서 번아웃이 올 뻔도 했지만, 거듭된 소개팅 실패에도 내 짝 찾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지칠 시간도, 좌절할 시간도 아까웠다. 이런 것들은 나에게 득이 될 것이 없었다. 그 시간에 어필용 셀카 한 장이라도 더 찍어보고 운동이라도 하는 게 나았다. 코로나 대유행 시절에도, 한 주에 소개팅 3개까지도 소화했다.




소개팅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


연애를 못 해본 사람일수록 이성을 보는 안목과 기준은 없을 수밖에 없다. 연애를 길게, 많이 해봤다고 이런 부분에서 꼭 성숙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연애 한 번을 하더라도 얼마나 밀도 있게 나를 표현하고 상대를 이해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연애라는 것을 해보기 전부터 이 같은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나, 문제는 내가 연애를 유튜브나 짝 찾기 예능 등으로 배워, 연애에 관하여 이론으로밖에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 몸소 깨닫고 체험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연애 어플도 깔고 결정사도 가입해서 닥치는 대로 소개팅을 했는데, 이렇게 넘치는 소개팅 속에서 나는 내 짝을 알아보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내 짝을 알아보는 법은 연애를 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보면 매우 막연하다. 결혼도 아니고 단지 연애할 짝을 찾는 것만도 많은 걸 고려하게 된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이러저러한 답은 미리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실 본인이 체감해보지 않으면 역시 감이 없긴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을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내 짝이라는 시그널을 찾기 어렵고 부담스럽다면, 내 짝이 아니라는 시그널을 먼저 찾는 것도 방법이다. 사실 무슨 시그널을 먼저 알아봐야 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만나다 보면 이러한 시그널들은 자동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첫 소개팅. 내 짝이 아니라는 시그널


나의 생애 첫 소개팅은 아무래도 기억에 가장 남는다. 대학원 연구실 동료의 소개로 서른셋의 나이에 모태솔로로서 처음으로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얼마나 숙맥이었던지, 첫 소개팅에서 어리바리하고 상대 앞에서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소개팅은 무조건 '파스타'라는 것에 매몰되어, 상대방과 소개팅 장소를 정하는데 카카오톡으로 전부 이탈리안 레스토랑만 제시했던 모양이다. 상대로부터 그만,


피자 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라는 메시지를 받고 말았다. 그냥 정말 좋아하는가 보다 하는 뉘앙스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어찌어찌 장소를 정하고, 첫 소개팅을 위해 차를 몰아 상대가 있는 곳으로 픽업하러 갔을 때가 생생하다. 그래도 차 문은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차를 갓길에 대고 내렸다. 내가 있는 곳으로 언덕길에서 내려오는 상대방의 눈이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캔한다. 내 머릿속엔 소개팅 망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생전 그런 눈빛은 처음 받아봤다. 소개팅하는 내내 내가 뭔가 대화에서 휘둘린다는 느낌을 받았고, 얼마나 기가 빨렸는지, 저녁을 먹고 계산을 하고 주차정산을 위해 점원에게 차 번호를 얘기해야 하는데, 내 차 번호가 생각나질 않았다. 등 뒤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인 차 번호 몰라요?


상대방을 태우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날 뻔했다.


대충 첫 소개팅 기억을 풀어봤는데, 그때의 장면과 나의 심리상태가 아직도 생생하다. 전반적인 나의 심리상태를 통해, 나는 이 분이 내 짝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짝이 아닌 이유가 뭐 때문이라고 콕 집어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만 던지면 됐다.


Q. 그녀를 만나면 대화가 즐거운가? No

Q. 그녀를 만나면 설레면서도 마음이 편안한가? No

Q. 그녀를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은가? No


위 세 질문에 모두 'No'라고 대답하는 나 자신을 보았다. 그녀가 보낸 모든 시그널, 나에게서 나오는 모든 시그널이 상대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지막 소개팅. 내 짝이라는 시그널


나의 마지막 소개팅을 소개하겠다. 횟수로 치면 68번째. 첫 번째 소개팅 이후 3년 여의 시간이 지난 소개팅이다. 이 시기는 소개팅을 하기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모든 식당과 카페는 오후 9시까지만 운영했고, 바이러스 백신 접종자만 입장할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도 나의 소개팅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크리스천 결정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여성 프로필 중, 나는 가장 예쁘고 여성스러운 자매를 골라, 매니저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나의 소개 요청을 상대방이 수락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나는, 그녀의 소개 프로필을 읽고 또 읽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나와 공통적으로 겹치고 다른지 파악했다. 결혼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평소에 어떠한 삶을 사는지 등등 그녀의 가치관을 볼 수 있는 부분을 미리 파악했다. 그리고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절대 기독교 신앙 얘기는 하지 말아야지


매번 소개팅 실패만 해왔던 나에게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했던 조언이 있다. "성경 얘기는 하지 마." 기독교인인 내가 크리스천 결정사에서 소개받아 만나는데 기독교 신앙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먹기는 쉽지 않았다. 나름 신앙생활에 독실하다 자부했고, 나는 이성을 만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신앙적인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매 소개팅마다 나는 이러한 부분에서 얘기를 시도했던 것 같다. 소개팅 대화에서 이러한 대화 주제들이 안 좋다기보다는, 이러한 것들이 주(主)가 되면 소개팅이 아니고 교회 신앙 모임이 되고 만다. 신앙얘기를 나누기 이전에 이성 간의 만남이므로, 나의 친구는 이러한 부분을 나에게 상기시켜 준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저녁을 먹으며 그녀와 얘기를 나눴는데, 그녀는 나에게 자꾸 신앙에 관해서 물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러고는 내가 하는 말에 매우 큰 흥미를 보였다. 신앙얘기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자꾸 그녀는 그런 것만 물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물음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이러한 부분에 흥미를 보이는 그녀를 보면서 흥분이 되었다. 그녀가 보내는 시그널에 내 생각도 당신의 생각과 동일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나는 소름이 돋는 시늉을 몇 번 했다. 그녀는 이러한 나의 반응에 더더욱 놀라워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세 시간 동안 얘기했다.


소개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이제 막 잠자리에 누우신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아버지 : "어땠어?"
나 : "아빠. 찾았어요."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의 취미가 무엇인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알고 보니 서로 취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 흔하고 흔한 소개팅 대화 주제 취미 얘기도 하지 않고 세 시간이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다. 다음날 나는 그녀와 만나 일곱 시간의 시간 동안 취미를 포함한 그 이상의 것들을 알아냈다. 그런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몇 시간 동안 얘기했는지도 감이 없었다. 이틀간 열 시간 동안 그녀와 나는 무슨 대화를 했을까? 어렴풋이 그냥 서로 재밌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멈춘 듯, 그녀와 함께한 공간에 우리 둘만 인 듯, 두 번의 만남 속에 나는 그녀와 가정을 꾸리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위에서 했던 질문 그 이상의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Q. 그녀와 함께할 미래가 그려지는가? Yes!!!

Q. 그녀와 함께 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가? Yes!!!

Q. 그녀와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은가? Yes!!!


아직 연애도 하기 전에 섣부른 마음가짐일 수도 있으나, 모태솔로로서 처음 느껴본 희열이었다. 위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수준 자체가 다르다. 세 번째 만남에서 나는 편지로 마음을 전했고, 소개팅 이후 3일이 지난 1월 어느 날, 꽃과 편지를 주며 마음을 전달했고 그녀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6월 어느 날 그녀와 결혼했다.




내 짝인지 아는 법


사람마다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 중요시하는 가치는 모두 제각각이다. 나의 모든 기준을 만족하는 상대방도 존재하지 않고, 나 또한 상대방의 모든 조건을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나 다른 사람이 서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대를 이으며 살아간다. 소개팅을 거쳐 연애와 결혼까지 가는 과정 속에서 모든 단계에서 지속해서 질문을 던지게 되는 부분이, "내가 이 사람과 잘 통하는가?"이다. 대화뿐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매우 강력한 친밀감과 유대감을 준다. 상대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 질문에 확신이 든다면 상대는 당신의 짝일 가능성이 높다.


소개팅에서 상대가 나에게 보내는 모든 반응을 살펴보면, 그 안에서 긍정적 시그널도, 부정적 시그널도, 알 수 없는 노이즈들도 있다. 거기에 더하여, 내 속에서 상대에게 보내는 시그널이 어떠한가를 살펴보자. 그리고 서로의 시그널들이 상호작용하여 서로 상쇄되는지, 보강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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