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모태솔로에게 소개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
나는 주변 지인들의 연구대상이었다. 이렇게 괜찮은데 왜 데려가는 여자가 없느냐고, 여자들이 다들 보는 눈이 없단다. 빈말이어도 감사한 위로차원의 말과 함께, 참 고맙게도 주변의 혼기가 찬 이성을 소개해주시곤 했다.
그렇게 소개받기를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이 넘어갔다. 소개팅 열 번 이내에 내 짝을 만나리라고 호기롭게 다짐했던 나는, 이내 그 마음을 접어야 했다. 열 번의 소개팅으로도 안되자,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다.
도대체 내 짝은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욕심이었다. 서른 살이 되어서까지 짝을 찾으려는 노력을 1도 하지 않았던 내가, 고작 소개팅 10번 만에 내 짝을 찾겠다고 한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다. 내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열 번의 소개팅으로 큰 좌절을 느꼈다. 그 좌절감은 마치 대학원시절 지도교수에게 깨지는 것 같은 좌절감이었다. 대학원시절의 나는 늘 압박감 속에 있었고, 그로 인해 자존감은 바닥에 있었다.
당시에 나는 소개팅 열 번은 내 짝을 만나기에 충분하다 여겼다. 그러나 이는 큰 착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숫자에 일곱을 곱해야 결국에 만나게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고작 열 번의 소개팅으로 왜 이렇게 좌절감을 크게 느꼈을까?
첫째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짝을 만나야겠다고 소개팅을 시도하고 소개를 받기 시작한 나이는 서른둘. 이 때는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시기였다. 학위도 있고, 좋은 직장도 있는데 짝만 없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조급하지는 않았다. '이제 슬슬 찾아보자'라는 심리로 직장 내 여사우들을 눈여겨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직장은 남녀 성비가 '개똥'이었다. 기업검색을 해보면 남녀성비가 9:1. 이대로는 안된다. 취업으로 무연고지로 이사 와서 새로운 교회등록을 미루기만 했던 나는 인생의 동반자를 찾기 위해 집 앞 가장 가까운 교회에 등록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교회에는 결혼적령기의 자매들이 없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그래서 이 조급함으로 다수의 데이팅어플 설치와 함께 결혼정보회사(결정사)의 연간회원으로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결정사 등록은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한다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자존심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내가 맞닥뜨리는 환경은 계속해서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위 환경 중 하나라도 짝을 찾기에 충분했다면, 조급함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둘째는 내가 정한 목표에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일단 소개팅 열 번만 해볼까'가 아닌, '소개팅 열 번만에 끝낸다'가 좌절감의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전자는 가벼우나 후자는 무겁다. 목표가 크든 작든, 거기에 두는 의미가 클수록 목표에 미달했을 때 오는 실패감은 전자보다 후자에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열 번이라는 숫자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의미 없이 세운 횟수에 이유 없이 큰 의미를 두니, 실패로 인한 좌절감 또한 의미가 없었다.
나의 소개팅에 관심이 많으셨던 나의 고모는 감사하게도 주변의 지인을 소개해주셨다. 그리고는 소개팅 열 번 해놓고 좌절해 있는 나에게 스무 번 안에 끝내자고 나를 독려하셨다. 나의 직장 상사 역시 나의 소개팅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셨는데, 이 분은 좀 달랐다. 이 분은 내게 소개팅 조언을 하실 때마다 꼭 덧붙이시는 말이 있었다.
소개팅 백 번은 해봐야지
두 분의 말은 나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고모의 격려는 큰 힘으로 다가왔고, 앞선 소개팅으로 인해 좌절했던 나를 추스르고 다시 시도하기에 충분했다. 반면, 나의 상사의 조언(?)(격려로 다가오지는 않았다.)은 내적 분노를 일으켰다. 두 분의 큰 차이는, 한 분은 시도해 봄직한 목표 제시(소개팅 스무 번)와 함께 직접 지인 소개를 해주셨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 분은 과하게 생각되는 목표(소개팅 백 번)와 함께 생각나는 대로 팩트만 툭툭 던지셨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나의 소개팅 횟수는 68회. 20이 아닌, 정말 100이라는 숫자에 더 가까웠다.
누구나 그렇듯, 계속된 실패는 힘 빠지게 한다. 연속된 소개팅 실패(소개팅을 통해 연인으로 발전되지 않는 것)가 계속되니 이대로 혼자 살까도 생각하게 되었다. 소개팅 횟수가 열 번이 넘어가고 스무 번이 넘어가고, 해가 넘어가고 서른 번, 마흔 번이 넘어가고 또 해가 넘어가고를 반복하니 이제는 그러려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개팅은 계속 시도하고 약속을 계속 잡았다. 소개팅을 많이 해서 좌절을 많이 겪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혼자 사는 건 좀 아니었다. 자만추를 추구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왜냐하면 이 당시는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사적인 모임도 없어지고 음식점과 카페가 일찍 문을 닫는 시기였다. 언제까지 세월아 내 월아 내 짝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딱 한 가지다.
소개팅. 될 때까지 한다
지인 소개를 받는 소개팅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인의 수도 한계였지만 지인의 이성 풀도 한계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플과 결정사의 도움을 적극 활용했다. 일정 비용을 주면 계속된 소개를 받을 수 있다. 나중에 만나게 될 짝을 기대하면 이 정도 비용은 감수할 수 있었다. 이때만큼은 내가 돈 버는 첫 번째 이유는 내 짝을 만나기 위함이요, 두 번째 및 세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에 충실하기 위함이었다.
연속된 좌절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소개팅을 지속하게 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초반에는 부모님 및 지인의 압박(?)이 주된 힘이었다. 바보같이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좋지 못한 소리를 감수하며 나에게 압박을 주셨던 것은 정말 나를 위함이었다. 안일함은 무관심이다. 부모님은 나보다도 나의 연애와 결혼에 더 관심 있으셨기에 초반의 나는 그 잔소리로 움직였다. 내가 그 잔소리를 아주 싫어하지 않았던 이유는,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나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혼주의나 비연애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지인들, 특히 나의 상사의 과한 관심과 부담은 나의 자존심을 건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분의 충고와 조언이 당연히 나쁜 의도는 아니셨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가졌던 자격지심과 콤플렉스는 내가 오기를 가지게 했고, 그분의 '조언'으로 내적분노와 함께 보란 듯이 짝을 만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로 이어졌다. 어쩌면 가족과 지인들이 나에 대해 걱정했던 이유는, 내가 짝이 없어서라기보다, 내가 짝을 찾는데 적극적이지 않거나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소개팅을 지속하게 했던 것은 무엇보다 간절함이었다. 나는 특히 대형마트에서 장보기를 좋아했는데, 홀로 장 볼 때 앞에 쇼핑 카트를 끌고 가는 커플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혼자 살 때, 매 주말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소개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됐다. 옆구리가 시린 정도가 아니었다.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 하와를 만드셨다는 성경 구절을 생각하니 적출(?)당한 부위가 아파왔다.
소개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충만한 내적 동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에 따른 외적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 소개팅에 대한 의지가 항상 하이 텐션을 유지할 수는 없다. 어떨 때는 그냥 쉬고 싶고 저기압일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상태와 마음가짐과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소개팅을 하게 된다면, 나는 나의 감정을 억누르고 소개팅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한 것이 결혼정보회사 등록이었다. 매주 들어오는 이성 소개(간혹 이성 쪽에서 나를 만나고자 하는 경우)는 전체적으로 기분이 다운된 상태로 있는 기간이 짧아지게 하는 큰 역할을 했다.
요약하면, 소개팅을 지속하게 하는 것은 내적 동기와 외적 환경의 적절한 조화다. 내적 동기는 외적 환경을 통해서 오고, 내적 동기는 외적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부모님의 잔소리, 지인의 조언은 내 안에서는 강한 의지로 변환됐고, 내 안에 생긴 강한 의지는 지속적인 소개팅을 위한 환경(결혼정보회사 등록)으로 나를 이끌어갔다. 연애시도경험치 저 레벨부터 고 레벨로 갈수록 나를 움직이는 주된 영향력이 달라졌다. 레벨이 낮을 때는 부모님 잔소리와 지인의 간섭이 영향력의 주였고, 레벨이 올라갈수록 이러한 영향력은 적어져서 지속적으로 생기는 소개팅 약속이 영향력의 주를 이뤘다. 내적 동기와 환경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혹시 몇 번의 소개팅으로 지쳤는가? 아직 지칠 때가 아니다.
어서 일어나 다가올 소개팅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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