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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Sep 28. 2022

복싱의 묘미 '거리 조절'

[오늘도 복싱 09] '앞손'과 '스텝' 활용하기

거리 조절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자신의 영역에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물리적, 심리적인 범위가 개인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맺은 모든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는 '거리 조절의 성공 유무'에 달렸다. 상대가 정해놓은 인간관계의 마지노선을 넘으면 거리 조절에 실패한 것이므로 관계가 단절될 가능성이 높다. 가족, 친구, 연인 등 가까운 사이일수록 거리 조절에 신경 써야 한다.

복싱에서도 거리 조절은 정말 중요하다.


'앞손이 세계를 제패한다', '복싱은 발로 한다' 같 격언거리 싸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잽을 날리면서 상대와의 거리를 재고, 스텝을 활용해 측정된 거리를 유지한다. '앞손'과 '스텝'을 이용해 상대를 나의 거리에 두면 훨씬 유리한 경기를 이끌어 갈 수 있다.


"거리 두고 싸워야지. 왜 붙어요. 붙지 말고 원, 투!"


스파링에서 관장님은 나에게 거리를 두고 싸울 것을 주문했다. 상대보다 큰 키와 긴 리치를 활용하라는 거다. 매번 스파링 때마다 느끼지만 거리 싸움은 쉽지 않다. 스텝을 뛰면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금방 지쳤다. 앞손을 계속 활용하면서 카운터를 노려야 되는 점도 어려웠다. 게다가 상대를 링 구석에 몰아넣고 계속 붙어 때리는 습관 때문에 상대가 한 번씩 휘두른 펀치에 걸리는 일도 발생했다.


"안 맞을 수 있는 데 왜 자꾸 붙어서 맞아요. 이번 라운드에서는 앞손 뻗고 스트레이트 닿는 거리에서만 공격해요. 잽으로 세게 때릴 생각 말고 툭툭 던져요."


2라운드가 시작됐다.

숨이 턱끝까지 찼다. 마우스피스와 마스크 때문에 더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관장님의 주문 사항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나는 앞손을 가볍게 툭툭 던졌다. 1라운드 때는 무턱대고 잽과 스트레이트를 반복하다 보니 상대에게 타이밍을 읽혔다.  이번에도 잽을 던지자 상대가 같이 맞받아치려고 전진했다. 나는 앞손으로 상대 시야를 가리고, 못 들어오게 거리를 둔 뒤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먹혔다. 상대 고개가 뒤로 젖혀진 걸 보고 원투를 한번 더 날렸다. 또 먹혔다. 링 구석으로 상대를 몰아넣은 뒤에는 앞손으로 거리를 잡고 공격했다. 상대가 들어오려고 할 때는 손을 뻗으며 뒤로 빠졌다. 상대의 주먹은 내 팔꿈치나 어깨에 걸릴 뿐이었다.


복싱에서 말하는 거리 조절의 의미를 조금은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물론, 상대가  같은 복싱 초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고수였다면 거리 조절한다고 어설프게 팔을 뻗는 순간 강하게 치고 들어왔을 게 뻔하다. 어쨌든 이전까지 어렵게만 생각했던 거리 싸움이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아 기뻤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아무래도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 스타일을 구사해야 하는 터라 스텝이 중요했다. 그런데 무작정 스텝을 밟다 보니 체력이 금방 떨어졌고, 상대에게 빈틈을 허용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결국 체력을 높이고,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스타일을 구축해야 하는 게 과제로 남았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달리기가 필수다. 달리기로 체력과 하체 힘을 길러야 한다. 정말 하기 싫은 인터벌과 달리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지만,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 나를 즐겁게 만든다. 


일이든 운동이든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찾는다는 건 신나는 일이다.  오늘도 복싱을 통해 그 즐거움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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