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조교글 EP.8
오늘은 드라마 한 편, 책 한 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보신 분, 있으신가요?
저는 이 드라마를 책으로 먼저 접했는데요. 이혼을 앞둔 부부,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은 아내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인문학 작가 강창래씨가 본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신 이야기예요.
(조금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작가님’ 대신 드라마 속 주인공인 ‘창욱’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보겠습니다.)
아내와의 이혼을 준비하고 있던 주인공 창욱은,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대장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게 돼요. 이혼을 준비할 만큼 아내와의 관계가 좋지는 않았지만, 투병 환자 옆에서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 그리고 묵묵하게 자신을 돌봐달라는 아내의 부탁에 창욱은 곧바로 부탁을 받아들입니다.
창욱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기 정도였지만, “해야 된다.”라는 생각 하나로 요리를 시작합니다. 암환자에게 좋은 음식들을 검색하고, 간이 되지 않은 건강한 음식들을 만들지만, 아내는 입에 맞지 않았는지 창욱의 생각대로 잘 먹지 못하는데요. 창욱은 포기하지 않고 아내를 위해 좋은 식재료를 고르고, 건강한 레시피를 개발하면서 서투르지만 정성이 가득한 요리를 만들어 아내 다정을 간병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내 다정은 응급실에실려가고 쓰러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합니다.
그러나 창욱은 암흑 같은 상황 속에서도 아내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해 먹이는 그 순간의 짧은 기쁨에 의지마혀, 힘든 시간을 버텨냅니다. 하지만 아내 다정은 끝내 암을 이겨내지 못하며 새드엔딩으로 끝이 납니다.
강창래 작가님의 실화이자, 드라마의 전반적인 줄거리였는데요. 삶과 죽음, 일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내용이었어요. 책에서 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문장들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절제하는 듯한 문장들이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지더라고요. 책에는 강창래 작가님의 이야기와 함께 레시피들이 담겨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고, 직접 음식을 해 먹일 수 있다는 기쁨과 이 시간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두려움을 잔잔하게 풀어나가는 전개가 오히려 눈물을 흘리게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책의 내용을 조금 발췌해서 적어볼게요.
P.67 “그리움만으로도 사람은 죽을 수 있다. 그리던 얼굴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할까.”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요.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지만, 사랑이 만들어낸 그리움은 사람이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떠올랐어요. 아내와의 소중한 기록을 담은 글을 쓰면서, 작가님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아내를 위해 요리하고, 함께 나눠먹던 기억으로 이겨내시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P.127 “사람은 모두가 한 개의 섬이고 그 사이를 오가는 배가 있다. 연락선이 수시로 떠나긴 하지만 부탁한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는 경우가 드물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아예 선착장에 그대로 버려진 것도 눈에 띈다. 서로의 사랑이 비껴 지나간 수십 년의 세월, ….. 그 연락선은 지금도 여전히, 아마도 영원히 믿을 만하지 못하다. 그렇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참 씁쓸한 일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이 말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었어요. 더 일찍 알아챘더라면, 조금 더 잘해줬더라면 좋았을테지만, 우리는 영원한 건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소중한 것을 잃을 때 비로소 그 끝을 알아채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책, 드라마 그리고 강연은 가족에게 소홀했던 제 일상을 반성을 하게 만들었어요. 독감에 걸린 제가 걱정된다며 밤낮으로 전화하던 부모님께 귀찮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기도 했었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에 방해된다며, 잠을 더 자겠다며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던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부모님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저도 익숙함이라는 핑계로 소중한 걸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 한번 더 돌아보면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끝을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