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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Dec 04. 2024

유럽의 3대 야경, 무슨 국회의사당이 저렇게 멋지담

부다페스트, 헝가리

유럽 3대 야경 명소는 파리와 프라하, 부다페스트라고 한다. 파리는 에펠탑 하나만 반짝이는데, 알다시피 파리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아 야경도 잊혀졌다. 두 번째 프라하는 웅장함보다는 아기자기함이 강했기에 부다페스트가 더 기대됐던 이유다.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로의 이동은 버스를 택했다. 국경을 버스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택한 버스였는데 7시간의 이동은 아무래도 무리였나 보다. 좁은 버스에 몸을 구겨놓고 중간중간 샌드위치로 허기진 배를 채우니 몸이 팅팅 부었다.


호스텔 체크인을 하고 나니 늦은 밤, 장시간의 이동 탓에 찝찝해진 몸을 씻고 싶어 샤워실로 향했는데 욕조가 있음에 환호성을 질렀다. 온천으로도 유명한 부다페스트이기에 온천에서 몸을 지질 생각에 들떴었는데, 호스텔에서부터 몸을 지질 수 있다니 완전 럭키였다.


샤워기 헤드도 분리돼 있어 씻는 시간도 단축됐다. 유럽이라 그런 건지 호스텔이라 그런 건지 지금까지 묵었던 모든 호스텔은 샤워기 헤드가 벽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씻는 것이 불편했지만, 욕조가 있었기 때문일까. 한국처럼 샤워기 헤드가 떨어져 있어 편하게 씻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사소한 것에도 큰 감사로 다가온다.


개운하게 씻은 몸으로 야경을 보러 나갔는데, 홈리스와 취객이 너무 많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잽싸게 방으로 들어왔다. 야경명소는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테니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든다.


야경뿐 아니라 온천으로도 유명한 도시인만큼 어느 온천을 갈까 고민했다. 여행객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세체니 온천을 가려고 했지만, 관광객이 많아 수질이 좋지 않다는 후기가 많아 패스했다. 사진은 예쁘게 나온다지만, 내가 온천에 가는 이유는 사진촬영이 아닌 피로를 풀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을 찾던 중 어르신들이 치료 목적으로 찾는다는 루카스 온천으로 향했다. 루카스 병원에서 운영하고 유황온천이라서 그런지 어르신들이 정말 많았다.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고,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혼성으로 된 노천탕이었기에 내가 들어가자마자 탕 안에 있던 어르신들의 눈빛은 당황으로 변했다.


'동양인 여자애가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시선을 피해 조심스레 탕 안에 몸을 담그자 이내 긴장이 풀린다. 우리나라 목욕탕처럼 지질 수 있을 만큼의 뜨겁고 후끈함은 없었지만 피로를 풀기에는 적당한 온도였다. 유황온천이라 몸은 더 빠르게 녹아내렸다. 얼굴은 차갑고 몸은 따뜻한 노천탕. 가능하다면 오래오래 탕 안에 머물고 싶었다.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손가락이 불어 쭈굴쭈굴 해질 때 탕 밖으로 나왔다.


온천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현지인이 많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따뜻한 비프스튜(굴라쉬)와 함께 비프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스테이크와 굴라쉬의 조합이 꽤 어울린다.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물가가 저렴해 호화로운 식사가 가능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시장으로 향했다. 1kg의 귤이 270 포린트(한화 약 1천 원)라는 말에 주저 없이 담는다.


귤 한 봉지를 한 손에 끼운 채 야경을 보기 위해 도나우 강 주변을 걷는다. 휘황 찬란한 빛들이 도시 전체에 빛나고 있다. 야경 빛들은 모두 황금색 빛. 야경 스팟으로 유명한 곳은 어부의 요새이지만, 걷는 길에 해가 진 덕분에 불 켜진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을 볼 수 있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어제와 다르게 걸어오는 길이 무섭지 않았다. 조용한 빛이 웅장하게 빛난다. 강변에 앉아 귤을 까먹으며 한참 동안 넋 놓고 웅장한 불빛을 바라본다.


까만 밤하늘과 강 위에 밝게 빛나는 황금빛의 국회의사당이 조화로워 보인다. 강변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 갈 때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불빛을 뒤로한 채 호스텔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쩐지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본다.


하루종일 일정을 함께한 솔이에게 담담하게 말을 걸어본다.


"무슨 국회의사당이 저렇게 멋지담."

"우리나라 국회도 밤에 저렇게 빛나나?"

"기억이 안 나네, 근데 우리나라 야경은 야근으로 만들어진 거잖아."

"맞다 맞아. 우리나라의 야경은 많은 이들의 야근으로 만들어졌지 참."


영양가 없는 말들을 주고받은 후 젤라또를 하나 사 먹고 내일을 기약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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