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와 비엔나, 오스트리아
화가는 고흐를 좋아하고, 음악가는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나. 어떠한 이유였는지 생각나진 않지만, 당시 아를은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흐의 흔적은 포기하고, 모차르트의 흔적이 묻어있는 빈과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파리와는 다르게 오스트리아는 깔끔한 나라였다. 작은 소도시 잘츠부르크는 파스텔 톤의 건물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는 마을 느낌이었다. 사운드오브뮤직에서 도레미송을 부르던 미라벨 정원을 지나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 생가에 도착했다. 파스텔의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노란색의 집. 동화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 사용했던 바이올린과 비올라 등을 전시돼 있다. 생가에 들어섰을 뿐인데 피아노 치는 모차르트가 눈에 보이고, 모차르트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 같아 벅찼던 순간. 감동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간략하게 모차르트의 생애를 이야기해 본다.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볼프강은 3세부터 누나를 보고 스스로 건반을 다루고 연주하는 법을 터득해 4세 때 여러 곡을 배운 후 5세 때 이미 작곡을 할 만큼 뛰어난 작곡 실력과 재능을 보인 천재였다. 17세부터 잘츠부르크 궁정음악가로 일했지만, 자유로운 성격 탓에 궁정과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향한다.
빈에서 콘스탄체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을 일치감치 알아차렸기에 하이든 같은 위대한 음악가로 키우고 싶었다. 아버지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집안의 재산이었기에 결혼을 반대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모차르트는 사랑에 목말라하며 항상 사랑을 찾아다녔다. 그곳에 사랑이 없다면 음악으로 사랑을 만들 만큼 모차르트의 음악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랑'이다. 온몸으로 듣게 하는 사랑. 피아노 소품부터 실내악, 협주곡, 교향곡,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마저도 감탄시키는 그의 음악적 경지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 어떤 곡이든 모차르트의 손을 거치면 선율이 생생한 생명력으로 요동치면서 음악 자체가 곧 모차르트가 돼버린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레오폴트는 아들이 오래 살 수 있을지 걱정하며 편지를 썼다.
“어린 시절 너는 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른스러웠으며, 네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거나 음악감상에 몰두하고 있을 때면 아무도 너에게 농담조차 걸 수 없었다. 심지어 너무나 엄숙한 네 연주와 일찍 개화한 네 재능, 생각에 잠긴 진지한 네 작은 얼굴을 지켜본 여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네가 오래 살 수 있을지 걱정했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모차르트의 생은 고작 35년에 불과했으니. 짧다면 짧은 그의 삶이었지만, 작곡이 풍부할 수 있었던 것은 3살 때부터 연주를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애 마지막 몇 년 간 교향곡 41번과 마지막 오페라인 <마술피리>를 포함해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미완성으로 끝난 <레퀴엠>까지 모차르트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악보 위에 모든 걸 쏟아부은 음악가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작곡을 놓지 않았던 모차르트. 무언가에 이렇게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모차르트의 생을 생각할 때 그는 정말 행복했을까? 의문이 든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아버지가 반대할 때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결과적으로는 콘스탄체와 결혼하지만, 레오폴트를 설득한 후 진행한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인 마음에도 찜찜함이 있었을 것이다.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는 슈테판 대 성당. 빈에 있는 게른트너 거리를 걷다 보면 갑자기 엄청난 건축물의 성당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결혼식을 올린 뒤 9년 뒤 모차르트의 장례식이 치러진 장소이기도 하다. 본인이 결혼했던 곳에서 장례를 치를 때 주변인의 심정은 어떠할까. 친구의 새 출발을 축복한 장소에서 친구의 마지막을 슬퍼해야 하는 장소.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번외) 빈에서 생긴 일
오페라로 유명한 도시이다 보니 게른트너 거리를 걷다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로처럼 공연 호객 행위를 하는 삐끼(?)들이 많다. 이곳에서 나는 재밌는 친구를 만났다.
"오페라 예약했어? 오늘 공연 있는데 이거 볼래?"
"아니 예약 안 했고, 나는 오늘 오페라 안 볼 거야."
"오페라 안 보면 오늘 저녁 뭐 하게?"
"그냥 돌아다닐 건데?"
"그럼 나랑 술 먹자!"
"나 술 안 먹어."
"그럼 커피 마시러 가자!"
"나 커피 마시면 잠 못 자."
"그럼 안 자고 나랑 놀면 되지!"
"나는 밤에 잘 거야. 나 이제 간다."
"나 너 좋아해."
'(이 새끼 뭐지?)'
"핸드폰 번호 뭐야?"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꼭 잡고) 나 핸드폰 없어."
"그럼 페이스북 친구 하자!"
"나 페이스북 안 해."
"그럼 라인은?"
"라인도 안 해."
"나 머리숱 많은데, 이름이 뭐야? 나랑 결혼해서 오스트리아에서 살자!"
이게 무슨 대화인가. 호객 행위 하다가 갑자기 결혼하자는 이 또라이를 내가 어떻게 대처할까. 이 와중에 머리숱 자랑이라니. 이 나라 미(美)의 기준은 머리숱인가. 창과 방패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를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길래 기차 시간이 다 돼서 가봐야 한다고 둘러댄 후 허겁지겁 자리를 빠져나왔다.
모차르트로 시작해서 빈 또라이로 끝난 오스트리아 여행. 감동과 엉망진창의 연속이었지만 내가 사랑한 음악가 모차르트의 흔적을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오스트리아 여행은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