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bae Mar 19. 2021

D + 4년 2개월 :영유아 영화 교육

영화 관람객이 되는 길


만 4년 2개월, 드디어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영화관에서 티켓을 내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 되었다.


태어나서 걷기까지 걸린 시간 11개월, 의사표현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5개월 전 후? 호텔 조식을 같이 즐기기까지 만 3년이 걸렸다. 그리고 드디어 4년 2개월 만에 영화관 의자에 보조의자만 있다면 어엿하게 화면을 받아들일 만큼 키와 몸으로 크는 성장까지 이뤄낸 것이다. 물론 저 멀리 크게 한 겹 막고 선 펜더믹이 우리의 영화관 팝콘 로망을 빼앗았지만, 우리는 엔딩크레딧을 함께 보는 쾌거를 이루었다. 엔딩크레딧 음악을 즐기다가 천천히 나서며 “오늘 영화 어땠어?”라고 물어보았고, 그는 “슬픈 곳이 세 군데 있었지만 잘 참았어”를 시작으로 감상과 비평을 이었다.


이제 영화를 시작으로 뮤지컬도, 연극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짐짓 내 여가생활이 다시 시작되고 심지어  이 일생일대의 지대한 과업인 육아도 덩달아 얼렁뚱땅 해내버리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요령 피우는 양육자로만 본다면 억울한 면이 있다. 사실 영화가 시작이라고 썼지만 ‘드디어!’라고 감탄하며 써낼 결과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영유아 영화 교육이랄까.

나의 영화 교육은 만 3세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관객으로서 안일한 자세로 영화와 마주하게 할 수 없다는 기우로 시작되었다. 예를 들면 주말의 명화를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바지 속을 벅벅 긁으며 보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괴롭다. 본론을 벗어난 이야기지만 주말의 명화는 지금도 없고, 이 친구가 내 나이가 될 2054년 미래에도 계속 없을 것 같아 너무 아쉽다. 본론으로 돌아와 또 다른 상상 하나는, 단지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해지는데, 영화관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거나 아이고 깔깔깔 시시덕 거리며 하나의 소음이 되는 것이다.

영화관은 영화가 오롯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감독은 영화관에 개봉하는 영화를 만든다. 이 말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영화관에서 봐야만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영화 안에 넣는다는 것이다. 색감, 음향, 암전 된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와 2시간 동안 같은 경험을 하는 연대감 같은 것!

나는 이 친구가 그 모든 걸 온전히 즐기는 관객이 되면 좋겠다.


때문에 치밀한 루틴을 만들어야 했다.
우선 5분, 15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아이의 눈 맛(?)을 집쩍거리면 안되었다. 우리는 무려 2시간이라는 장대한 여정을 목표로 뒀기 때문에 대범하게 1시간 영상부터 시작했다. 물론 이 계획을 무모하게 끌고 가지 않았다. 인내심을 요하는 준비 과정이 있었다. 아이에게 1시간에 인내심을 요구하려면, 자고로 무려 30년 이상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면 더 큰 인내를 감내해야 한다. 나는 3년간 집에 있는 텔레비전을 켜지 않았다. 아이는 3년 동안 암전 된 네모상자가 인테리어 소품인 줄 알았겠지만,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내내 궁금해했다면 효과는 배가 되어 1시간은 충분히 앉아서 함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루틴이 텔레비전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쉽게 켤 수 있는 건, 뭐든 쉽게 끌 수 있음으로.


이 루틴은 청소로 시작한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청소를 해야 한다. 그냥 청소 말고, 반드시 온 집안의 물건을 들었다 놔야 하는 대청소 말이다. 사실 이건 현실적으로 필요하기도 하다. 맞벌이 가정에 불규칙한 야근 속에서 만 3,4세 아이가 살기에 집은 너무 더럽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은 오직 주말뿐이니.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라고 한마디 변명을 보탠다면 아이가 이 나른한 휴일의 영화관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휴일 아침 유난을 떨며 대청소를 하고 시원하게 샤워를 한 뒤 가장 달콤한 간식을 들고 영화를 보는 즐거움. 우리는 금요일부터 때로는 목요일부터 주말에 볼 영화를 이야기했다.

어떤 이야기가 더 궁금하고 더 재미있는지 자기 전에 읽는 동화를 보며 상상해 보기도 하고, 아이에 취향 탐구를 위해서 사소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만한 곰은 무서운지, 친구들이 싸우는 장면이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두 번째는 샤워, 여름이고 겨울이고 대청소 끝내고 샤워를 하고 앉으면 세상에서 가장 나른하고 후련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짐짓 내가 제일 마음의 드는 실내복을 입힌다. 아쉽지만 두 번째 루틴은 자주 실종되곤 한다. 하지만 나에겐 여전한데, 처음 영화관으로 나설 때 그리고 종종 나서는 지금도 매번 나는 씨네키드가 된 기분이다. 자못 껄렁한 옷을 입어보기도 하고, 예매한 영화 무드에 맞춰 입어보기도 한다. 언젠가 이 아이가 혼자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관 갈 때 어떤 모습으로 갈지를 상상해 본다. 아이가 씻지 않고 봉봉 뛰어다녀도, 뒷모습에서 문득 그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드디어, 마침내 우리는 더없이 깨끗한 방에 주말 오후 햇살을 천천히 즐기며 신중하게 고른 영화를 고르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은 바로. 이 영화는 바꿀 수 없다는 룰이다. 이 영화가 재미없다고 다른 영화로 갈 수 없다.

그러니까 이런 긴  영화 관객 수업 끝에 우리는 드디어 영 환관에 온 것이다. 첫 영화는 너무 슬프지도, 너무 극적이지도 않은 걸 고르기 위해 또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영화관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아이는 기사님에게 “제가 오늘 영화 보러 가거든요. 팝콘도 살 거예요”를 말했다. 물론 팝콘은 사지 못했지만. 같이 동동 거리며 티켓부스를 찾았다.이제는 사람이 없는 기계 티케팅을 하고 어엿하게 표 한장의 자리에 앉았다. 김소영님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말하듯이 온전한 한 사람이다. 거대한 영화관의 암전도 잘 이겨낸 아기가, 아니 아이가 슬픈 부분을 참아냈다고 이야기했다.
주인공이 잠시 쓰러졌을 때 너무 슬펐고, 작은 엘프들이 잡혀서 갇혔을 때도 슬펐다고, 주인공과 엘프가 헤어질 때는 나도 정말 슬펐노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마트 푸드코트에서 메뉴를 골랐다. 물론 아이가 고른 메뉴가 모두 매운 거라 결국 아이는 맨밥만 먹고 돌아섰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고 밥을 먹었다.그리고 마지막 코스는 쇼핑, 몇 주 전부터 아이에게 운동화 하나 사자고 말했었어서 지나지 않고 흔쾌히 들어섰다.





엄마, 반짝이 신발 김하온도 있고 이서연도 있는데 나는 없어
“어어 사자, 이건 어때? 이것도 신어봐. 아니야 저게 더 좋은가 같아. 이걸로 주세요. 새 걸로 꺼내 주세요”

“도은아, 엄마는 도은이가 반짝이 신발 가지고 싶어 하는 몰랐어”
엄마,
나는 엄마가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였을까. 잘 알아줬으면 좋겠어 였을까.
아이는 신나게 통통이며 걷다가 앞을 보고 천천히 이야기했는데, 이상하게 뭉개진 발음이 떠올릴 때마다 다르게 들린다. 너의 마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또 숨어 있을까. 이런 말을 만들어 내다니. 마음을 알아주는 걸 엄마가 해야 한다는 걸 넌 언제부터 알게 된 거니? 그리고 이걸 말해야 한다는 건 또 언제 알게 되었을까.


꼭 영화가 아니어도 좋다. 이 친구가 세상에 것들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즐기는 사람이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D+4년 4개월 : 너의 사랑을 따라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