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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리 Jan 02. 2024

후쿠오카 여행에서 명품백 대신 신발을 사 왔습니다.

곧 부부, 같이 일해요 (15)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평온한 한 해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저희는 지난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부터 1월 1일까지 길고 긴 휴가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후쿠오카 여행을 6일 정도 다녀왔고, 그 후로 남은 날들은 대구에서 시간을 내내 보냈습니다. 사실 지금 환율이 900원대로 떨어지면서 웬만한 사고 싶은 물건들은 후쿠오카에서 사 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제목과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신발 네 켤레만 사 왔어요.


사실 제가 사고 싶은 물건에는 '명품 가방'이 꼭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환율이 싼 김에 3년 쓴 아이폰을 새로운 아이폰 15로 바꾸어볼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어요. 연애 2년 차에 접어드는 저희는 아직 커플링이 없는데, 이 참에 브랜드 커플링을 사볼까? 싶기도 했고요. 전부 다 2~300만 원 하는 물건들이었죠. 물론 환율이 싸서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일본이 쌀 수도 있지만 이건 오산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한 번에 300만 원은커녕 100만 원도 턱, 하니 작 쓰지 못하는 사람이 일본까지 가서 그런 걸 살 리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어린 마음에 저는 여러 가방도 들어보고, 휴대폰도 집어봤다가, 반지도 여러 개 껴보았습니다. 이 브랜드도 좋아했다가, 저 브랜드도 사고 싶고, 줏대 없는 아이쇼핑만 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어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가 명품을 소비하는 이유를 정당화해서 제 주머니를 열기에는 어렵더라고요. 제 나이 스물세 살, 굳이 명품을 소비하지 않아도 빛나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하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 하나를 소비한다고 해서 제가 갑자기 똑똑해지고, 내실이 다져지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겉보다는 속을 좀 더 채운 후에 30대쯤에 명품을 소비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제 논리가 정립된 후에 소비를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을 달리하고 보니, 명품가방, 여전히 영롱하기는 해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 졌어요. 그렇다고 명품 소비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순전히 저의 생각이니까요. (갑자기 딴소리지만 저도 300만 원을 턱 하니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고민 없이 한 번쯤은 샀을 거 같아요.)


그래서 마음을 접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어요. 원래의 목적인 가방만큼 많이 신을 수 있는 신발을 고르러 가기로 했어요. 지금 저희가 600일이 넘었는데 100일 기념으로 맞춘 신발이 닳고 닳아버려서 새로 한 켤레 마련하자 싶은 생각에요. 일본에는 오니츠카 타이거가 유명하더라고요. 한국에서도 신어보고 싶었는 마음은 있었는데 매장에 가서 신어보니 신발이 참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켤레씩 구매를 했습니다.


옆에 ABC마트에서는 나이키를 구매했어요. 갈색 신발이 동글동글하니 참 예쁘더라고요. 그렇게 일본에서 돌아오는 마지막 날, 명품 가방은 온데간데없이 양손 가득 신발만 손에 쥐고 왔어요. 그래도 참 좋았어요. 오래오래 닳도록 신을 생각에 커플템이 또 하나 늘었다 싶었거든요. 사실 일본에서 있었던 6일 동안 매일매일 명품 가방을 생각하기는 했어요. 무얼 사지, 살 수 있을까, 사고 싶다. 이런 생각이 꿈에서도 나왔을 정도니까 깊게 고민한 건 맞는 거 같아요. 오히려 그 시간에 조금 더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백화점도 다른 것들도 많이 둘러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번 후쿠오카 여행에서는 명품 가방 소유욕이 조금 강했던 거 같아서 그 부분이 아쉽습니다. (반지랑 휴대폰에 비해서 명품백이 좀 많이 강했어요)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귀걸이를 사고 싶어서 20만 원짜리 귀걸이를 살까 말까 들었다 내려놓은 이후로, 일반 귀걸이 판매점에 가서 8천 원짜리 귀걸이를 끼고 마음에 들었던 적이요. 결국 제 소비가치는 구매 도중에 가장 높아지고, 구매 이후에는 가격과 관계없이 그 물건이 주는 온전한 행복을 누리는 거 같습니다.


아차차.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어요. 저희는 결국 명품 가방 값어치만큼 이번 여행경비를 썼어요. 누군가는 여행을 가는 대신 명품 가방을 사는 소비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저희는 물성보다는 경험이라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이 더 귀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방 하나를 가지고 평생을 들 수는 없지만, 이런 여행 기억이 조각조각 남아서 제 인생의 소중한 한편을 평생 차지한 거 같아서 기쁜 마음이 커요.


다음 여행하는 장소에서는 조금 더 성숙한 마음을 가지고 여행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또 기대가 됩니다. :)



** 2024년에는 브런치 연재하는 것에 조금 더 각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항상 조금 더 발전된 모습으로 글 쓰는 불리가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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