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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리 Dec 19. 2023

첫 기념일, 가짜꽃을 받았습니다.

곧 부부, 같이 일해요 (13)

배경에 있는 사진은 '진짜 꽃'입니다.


오늘은 서비 씨와 있었던 재밌는 일화 중 하나를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전국의 엔프피 여자친구들은 공감할 테지만, 저는 남자친구가 있으면 꽃을 너무 받고 싶었어요. 깜짝 꽃 선물이 정말 낭만 있다고 생각하고 서비 씨에게 부탁합니다. 


"기념일에는 꼭 한번 꽃을 받고 싶어요. 그것도 깜짝으로"


서비 씨는 따뜻한 로봇입니다. 마음은 따뜻하지만 머리는 t인 로봇이라서 가끔씩 저렇게 입력을 해달라고 말하더라고요. 서비 씨는 로봇처럼 제 주문을 머릿속에 입력해 놨고 '불리에게 꽃을 사준다.' '그것도 깜짝으로 사주어야 해'라는 생각을 계속 지니고 있었나 보아요.


저희는 같이 일하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저를 속이고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보아하니 아주 어려운 미션을 줬었네요. 그래도 서비 씨는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던 거 같습니다.


주말에 근교로 여행을 다닐 때는 제 차를 서비 씨한테 주고 아침에 저를 태우러 오는데 (동선상 그게 편함) 그때 전화가 오길, 이제 출발한다는 얘기를 조금 늦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집에서 조금 늦게 나섰다보다 싶었고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차에 올라타고, 고속도로로 넘어가는 도중에 손을 조수석 뒷주머니에 넣더니 "짠~" 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1차 성공입니다. 꽃이 네 송이가 있었고 포장지에 예쁘게 쌓여 있었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고속도로에 올라타고, 꽃을 계속 들여다보았는데, 조금 이상한 부분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꽃이 봉우리와 줄기 부분이 연결되는 방식이 제가 아는 방식과 달랐고, 부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실리콘이었어요. 꽃에 냄새를 아무리 맡아봐도 냄새가 나지 않고, 이제는 꽃을 꼬집어 보아도 물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가짜꽃이었습니다. 저는 튤립 네 송이를 받았는데 가짜 튤립이었어요.


꽃을 사도 어떻게 조화를 살 수 있는 거지 싶어서, 어떻게 꽃을 얻었냐고 물어보았어요. 사실 서비 씨는 '꽃'을 사는 데에만 급급했지 당연히 꽃집에서 산 꽃인데 조화일리는 없다고 생각했나 봐요. 꽃집을 아무리 돌아도 일요일이라 열려있는 곳이 없어서 겨우 찾은 곳이 '전화해서 비밀번호 받아서 들어가는' 꽃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처자 꽃을 사 왔는데, 조화였던 거죠.


일단 둘 다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어떻게 살 때 그걸 확인하지 못할 수가 있었는지, 고속도로에 올라탈 때까지도 내가 인지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예쁜 꽃이 평생 시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꽃은 지금까지도 제 책상 한편을 지키고 있습니다. 평생 시들지 않은 채로 저랑 함께할 거예요.



그 후에도 꽃은 한번 더 선물 받았습니다. 예쁜 건 역시 빨리 시들더라고요. 그래도 어떤 꽃이든 받는 건 기분 좋으니까 깜짝으로 자주 사달라고 했습니다. 가짜 꽃이어도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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