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우리는 성장한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한 달이나 되었다. 제일 걱정이었던 아내님이 상당히 안정되었다. 아니 예전보다 더 에너지 넘치고 바빠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 같다. 장모님께서 우리 동화를 참 좋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내님이 목표로 한 '그림동화작가'에 도전하는 일에 집중하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아이들을 모두 등원시킨 후 집안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쏟고 있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고 손도 느리고 색감도 정하기 어렵다고 자신감 없어하지만 내가 볼 때는 정말 귀엽고 예쁜 그림들이다. 분명 잘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
어제는 통화를 하는데 한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던 아내님이 울먹거렸다. 처남이 예전에 장모님과 함께 걷던 산책길을 걷다가 오열했다는 이야길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문득 장모님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한다. 특히나 아내님이 그림을 그리고 작업하는 방은 장모님이 항암치료를 위해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쓰신 공간이었다. 때문에 그림을 그리다가도 문득 장모님 생각이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도 장모님이 자주 가셨던 산책로를 지나치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들렀던 마트를 갈 때도 문득 눈물이 난다고 했다. 다만 그 횟수가 줄어들고 익숙해질 뿐 슬픔이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평생 잊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역시 문득 장모님이 생각나고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집에서 자주 달리는 배롱내 코스는 장모님과 함께 산책하던 곳이다. 내가 반대편에서 달리고 있을 때 나를 향해 아이처럼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겨울철 찬 공기를 맞으며 달리는 나를 걱정하시던 모습도, 내가 사드린 운동화를 아껴 신던 모습도, 생전 처음 입어보신다는 운동레깅스가 편하다며 고맙다고 하시던 모습도 문득 생각이 난다.
오늘은 에고형님 포스팅을 보다가 문득 눈물이 났다. 아내님은 쌀국수를 상당히 좋아한다. 추운 겨울철에는 특히 쌀국수를 찾는 날이 잦았다. 한 번은 장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가는 길에 쌀국수를 먹은 적이 있다. 평소 음식 조절을 하시던 장모님께서 국물도 거의 남기지 않을 정도로 쌀국수를 잘 드셨다. 맛있다며 엄청 흡족해하셨다. 아내님도 장모님이 그렇게 쌀국수를 좋아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 후로 장모님이 오실 때는 가끔씩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자주 먹으러 가자고 말씀드리면 음식 조절해야 한다고 대답하셨지만, 본인 때문에 굳이 쌀국수를 먹으러 가는 불편함과 불필요한 지출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장모님의 배려였다. 본인이 제일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우리를 먼저 생각하셨다.
지나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쌀국수를 보니 좋아하는 음식을 조금 더 자주 사드리지 못한 게 하는 후회가 된다. 건강을 위해 좋아하는 음식도 마음껏 드시지 못하게 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어쨌건 이제는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죄송한 마음이 들 때마다 슬픔에 잠겨있을지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잘 지내시길 기도할지 선택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했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아내님에게 말했다. 아내님도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문득 그리워하며 눈물이 날 때도 있겠지만,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