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산책을 하다가 하늘을 봤는데, 새들이 줄을 지어 열심히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황지우 시인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렇게 하늘을 보면서 감탄을 느끼던 것도 잠시, 바닥을 보니 산책로에 엄청난 양의 하얀 새똥이 가득한 것이 아닌가! 나는 그걸 보고 문득 과거의 어떤 일을 떠올렸다.
2018년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동아리 선배와 좋은 자리를 물색하기 위해 어린이 대공원을 살피고 있었다. 돗자리를 깔아놓고, 사람들과 밥을 먹기 위해서다. 날씨는 무척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공원엔 사람도 무지막지하게 많았다. 우리는 답사할 겸(게을러서 당일 날 답사를 했다^^;;) 먼저 와서 돗자리를 깔아 두고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와 나는 따로따로 앉아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 침묵을 깨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질척)
뭐야, 하고 나는 뒤를 돌아봤다. 선배는 나한테서 뭔가를 감추려는 듯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선배와는 다소 어색한 사이였으므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웠다. 그가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나는 조용히 물었다.
"... 무슨.. 일 있어..?"
"어.. 머리 위에 새똥... 떨어져 가지고.."
웃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참았다. 그 일을 떠올리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새들은 굳이 날아가면서 똥을 쌀까. 심지어 하늘에서 똥을 싸면 맞는 사람들도 많은데. 진짜 이기적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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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만, 설마 이걸 노리고?
언젠가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상사가 너무 싫은데, 내가 대놓고 욕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탕비실에 있는 살찌는 과자 드시라고 맨날 갖다 드린다니까. 살찌는 줄도 모르고 맛있게 드심 ^^"
"ㅋㅋㅋㅋ 소심한 복순가? 귀엽네."
사회초년생이 된 내 친구들은 상사 앞에서 무력하다. 상사가 사적인 감정으로 그들을 대하더라도, 그들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어떤 상사는 상습적으로 자기 일을 떠넘기고 지각을 밥 먹듯이 하면서, 어느 날 하루, 친구가 1분 늦은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핀잔을 줬다고 한다. 그날도 과자를 열심히 갖다 드렸다고 한다.
새똥은 그런 게 아닌가. 친구가 상사에게 드리는 고열량의 탕비실 과자처럼. 새들은 말로 할 수 없는 불만들을 그렇게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 아닐까. 네놈들 때문에 우리가 살 수가 없다고. 그러니 똥이나 먹으라고...
생태계는 너무나 파괴되었고, 탄소중립 선언을 외치며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멸종위기에 처한 종은 너무나 많고,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봄날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코로나는 사실, 자연의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사람들이 아무거나 잡아먹고, 아무거나 파괴하고, 더 편한 삶을 살기 위해 환경을 아프게 해서 역병이 창궐한 거라고. 코로나가 <노아의 방주>급 되는 재앙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물론 저들 중에는 나도 포함된다.
산책로에서 새똥을 열심히 피해 다녔다. 혹시나 새들이 내게도 새똥을 선사하지 않을까 하여 후드 집업에 있는 모자를 쓰고 열심히 달렸다. 새가 혹여나 날아가면서 쌀 똥을 피하면서도, 그들에게 미안해졌다. 사람한테 새똥을 선사함으로써 분이 풀린다면 나 역시 그들의 똥을 존중할 것이다.
출처: Unsplash, Nila Maria
p.s. 우스갯소리로 쓴 글이었는데 결말이 전혀 안 웃기다. 새가 왜 날아가면서 똥 싸는지 궁금해서 생명과학과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쓸데없이 또 친절하게 알려준다. 고마워해야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