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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Sep 26. 2023

같이 연주하실래요, 제안을 받았다

바로 지난주 레슨 때였다.

선생님이 피아노 수업을 하고 있는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다음 달에 축제가 열리는데, 거기서 연주 무대를 맡게 되었다고 하셨다. 특이할 만한 소식은 아니었다. 개인 레슨 외에도 연주회나 강의를 병행하며 꾸준히 자기 계발하시는 것을 오래 봐왔으니 말이다. 

'그렇구나.'

무심히 듣고 있던 내게 못지않게 무심하게 보탠 선생님의 한마디는 다만 예사롭지 않았다.


"같이 연주하실래요?"


? 선생님? 선생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선생님을 몇 번을 불렀는지.





직관으로든 영상으로든 흔히 보아온, 규모가 큰 정식 연주회는 아니다. '가을 문화제'라는 타이틀로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성악, 기타, 하모니카, 시낭송, 실용음악, 패션쇼 등 다양한 무대가 열리고, 그중 하나로 피아노 공연이 포함된 것이다. 선생님 단독 공연에 더하여, 두 명의 학생이 각각 선생님과 함께하는 '포핸즈(four hands)' 연주로 구성할 거라고 설명하셨다. 선생님의 열 두 제자 중 내가 제격이라며, 그래서 먼저 제안하는 거라는 말씀에 우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결코 헛되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피아노를 다시 시작할 무렵, 초심자 특유의 포부에 가득 찬 나머지 아마추어 콩쿠르를 꿈꾼 적도 있었다.(이봐, 김칫국을 좀 마셔야지) 당연히 몇 번의 클릭 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추어 콩쿠르의 아마추어는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아마추어의 탈을 쓴 준프로들의 연주를 보며 '흥칫뿡'이라는 세 글자를 내뱉고 마음을 접었다.

(습관처럼 사전을 찾아본다.)

흥칫뿡 :
화남, 삐치을 표현하는 의태어. 진짜로 화가 났다는 의미보다는, 삐쳤으니 달래 달라는 애교가 섞인 투정의 뉘앙스가 더 강하다. (출처 : 나무위키)

그렇다. 그쪽 세계 어딘가를 향한 소심한 삐침과 질투를 표현한 말이긴 하다. 하지만 실상은, 질투조차 가당치 않은 넘사벽의 세계였던 것이다.

(응? 넘사벽?)

넘사벽 :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아우리 노력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격차를 줄이거나 뛰어넘을 수 없는 상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두 가지 이상의 사물 또는 인물을 비교할 때 한쪽이 너무나도 우월해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출처 : 대중문화사전, 나무위키)

여기, 한마디가 굳이 보태어 있다.

'자신의 무력감을 표현하기 위해 잘난 상대방을 두드러지게 과장해 보이는 경우 사용한다.'

하. 당신(!)의 정확한 설명 덕분에 무력감을 느낀다, 즌짜~



욕심 없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주 1회 레슨 받고, 나머지 날에 혼자 연습했다. 익숙한 곡을 더 쉽게 편곡한 교재였고, 한 곡당 두 바닥 짜리의 짧은 분량이었다. 악보를 읽는 데는 문제없었지만 이미 굳은 손놀림에는 문제가 많았다. 그래도 내 손으로 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로 퍽 신이 났다. 오랫동안 꿈만 꾸어 온 것을 실행으로 옮긴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게다가 연습할수록 소리가 좋아지는 과정은 매 순간 감동이었고 말이다. 에누리 없이, 하면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는 데서 오는 성취감이란. 마치 내 안에 닫혀있고 굳어있던 어느 공간을 톡 건드려 터뜨린 양 신선하고 뜨거웠다. 영 안 될 것 같던 부분이 지난한 연습 끝에 되었을 때의 짜릿함, 답답함을 견디고 될 때까지 해낸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이런 감정들 모두가 실로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성실한 학생이었다. 초급이니 확실히 뭔가 근사한 태는 안 나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그저 꾸준히 연습했다. 연습이 잘 되어 있어서 수업 때마다 진도를 쭉쭉 나간다며 선생님은 칭찬하셨다. 더, 조금 더 가르쳐주게 만드는 학생이라는 말을 들었다. 칭찬은 문박사를 춤추게 했다.




우리를 브런치 세상으로 이끈 이은경선생님은 프로젝트 강의에서 이 말을 하셨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뭐가 있어야 돕지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대로 수첩에 받아 적었었다.

게으름이 나고 스스로 타협하려고 할 때가 많았다. 글쓰기뿐 아니라 매사에 타협할 것은 널리고 널렸더라. 그때마다 이 말이 나를 잡고 돌아오게 했다. 뭐가 있어야 돕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회를 만들고, 용기 내어 시작하고, 지속하려 애쓴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런 기회가 내게 온 것이리라. 그렇지 않았으면 내게 올 리 없는, 그동안 그래왔듯 꿈에만 그칠 일들이다.






말을 듣었을 때 입을 못 다물게 좋았으면서도 즉시에서 대답하지 못했다. 고마움과 기쁨 못지않게 두려움이 내겐 있다.

나는 다수 앞에 나서면 눈앞이 까매지고 머리는 하얘진다. 흔히 무대공포증이라고 한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마주 바라보며 발언하는 것은 내겐 꿈꿀 수도 없는 과감함이다. 선천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이를 경험한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1학기 반장을 뽑는데, 지원 방식이 아니라 추천을 받아 그들에 대해 투표를 했다. 왜인지 당사자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어쩌다 보니 내가 당선(!)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로부터 최다 득표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내성적인 나는 반장 생각이 추호도 없었음에도 결국 아무 못 했다. 앞에 나와 당선 소감을 말하라는 선생님 말씀에 쭈뼛쭈뼛 나갔지만, 머리가 하얘진 아홉 살 어린이는 그만, 울고 말았다. 오줌을 천만다행이었다. 새 학기의 기운이 가실 때까지 짓궂은 남자애들은 나를 울보반장으로 불렀다.

애석하게도 나이가 든다고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찾은 방책이 자료를 열심히 준비해서 읽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명했다. 그나마도 목소리가 떨려와서 대학교 과제 발표 시간에 교수님이 급히 중단시킨 일마저 있었다.

"자네가 우는 줄 알았지."


직장에서는 더더욱이다. 남의 돈 버는 게 쉽지 않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지름길은 아니지만 내가 또 깨우친 방법은 이거였다. 연습만이 살 길. 자동으로 줄줄 나올 정도로 연습을 했다. 무대공포증을 모르는 사람에 비한다면 배는 더 연습을 했을 거다. 그래도 미치겠어서 몰래 청심환을 사다 먹기도 했다. 순전한 노력으로 부딪히고 해냈지만, 극복한 개운함은 아니었다. 매번의 미션이 트라우마 같았다.

휴직한 지 일 년이다. 그나마의 경험도 감이 떨어졌다는 생각에 선뜻 대답이 안 나왔다. 캐주얼하고 작은 무대라고 해도, 내게는 도전이다. 상상만으로 이미 울렁거리는 내가, 이거 해낼 있을까.



 





저녁 식탁에서 가족에게 제안받은 사실과 고민을 털어놓을 때, 딸내미가 자리에서 튀어 오를 듯 소리쳤다.

"엄마, 무슨 말이에요! 당연히 해야죠!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 줄 알고요!" 

허. 딸아. 엄마 울 뻔했다?

"응. 하고 싶으면 해."라는 뜻뜨미지근한 대답을 한 사마씨는 덕분에 가르침을 받아야 했고.

"들었지? 이렇게 하는 거야."


아이의 화끈한 반응에 그만 개안한 기분이다. 이토록 명쾌해지다니! 아무래도 나는 누군가로부터 이런 확실한 반응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요즘 오랜 정을 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는 아이다. 그 어린 것이, 내 고생은 내 것이고 엄마의 기회는 축복해 준다는 태도라니. 어느새 훌쩍 큰 아이를 본다. 나보다 더 기뻐하고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말로 위안을 주는 아이에게 나는 보답하고 싶다. 이 아이가 주는 응원의 에너지가 너무도 강렬하여서 나는 왠지 평생 짊어진 트라우마까지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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