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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Oct 17. 2023

첫 연주가 기가 막혀

피아노 취미생의 도전

일주일이 지났다.

어중이떠중이 내 인생에서 가히 역사로 꼽을 만한 기회,가 있었던 날.

그런데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과거를 미화해 주곤 하는 고마운 마법을 부려줄 시간. 어떤 의미로든 잔뜩 팽창했던 가슴을 다스려줄 시간 말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했나 보다. 담담하게 그날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내 안은 잔잔해졌다.


아몰랑. 결론부터 말하련다.

폭. 망.이었다. 아하하하하!

어유 시원허다. 가슴이 뻥 뚫리네 그냥!!!!!!!!

이로써 이 글은 백 퍼센트 화자 입장의 글, 하소연으로 가득한 청승맞은 글이 될 예정이다.






그렇지. 당연히 떨릴 것이라 예상했다. 선생님께 제안을 듣자마자 얼어붙었으니까. 이전 글에도 고백했듯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알게 된 후 평생 나를 괴롭힌 무대공포증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직장을 잠시 쉬며 감 떨어진 시간과, 피아노 취미 특유의 열정이 그만 망각을 도왔다.

독방 연습 일 연차 초보 피아노 연습생이 다수 앞에서 연주한다는 것은 결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도시에 부쩍 늘어난 성인 피아노 학원에서야 정기적으로 '향상 연주회'를 하고, 피아노 동호회에서도 연말 즈음 공간을 대관하여 크고 작은 연주회를 열기도 하지만, 이곳 소도시에는 성인전문 피아노 학원도, 동호회도 없으니 여의치 않은 환경이다. 아마추어라고 똑같은 아마추어가 아닌 바, 아마추어 콩쿠르는 언감생심, 어림도 없다.

그 때문인지 덕분인지, 망설임은 잠시 뿐, 불을 보고 달려드는 한 마리의 나방과 같이 결국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연습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연습했다.

선생님과 함께하는 포핸즈(FOUR HANDS) 곡 네 곡은 일찍이 확정했고, 솔로곡 연주 여부는 당일날 결정해도 된다고 하셨다. 다시없을 기회라는 생각에 솔로곡에도 욕심을 내보았다. 배우던 솔로곡을 혼자 연습했고, 공연 사흘 전쯤 촬영한 연주 영상을 선생님이 보시고 '오케이, 올리자' 하시면서 솔로곡도 최종 확정되었다. 공연까지 기간이 길지 않아 이미 배웠거나 연습 중인 곡으로 선정했기에 사실 곡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았다.

유일한 걱정이라면, 늘 실전에서 무너졌던 그간의 전적에서 기인한 트라우마였다.


전날 선생님과 만나, 두 연주자의 호흡이 중요한 포핸즈 곡을 최종 점검했다. 연습을 마치고 집까지 꽤 긴 거리를 부러 걸어왔다. 며칠 사이 꽤 선선해진 공기와 흐렸다 개고 있는 하늘이, 벌써 시동을 거는 긴장된 나를 차분하게 달라주는 것 같아 기분이 괜찮았다.






D-day. 온 가족이 오전부터 준비를 해서 나섰다.

차로 40분 거리 옆 도시의 대학교 캠퍼스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아빠 공연 시간까지 캠퍼스에서 점심을 먹고 놀기로 하고, 그들의 힘찬 파이팅을 받으며 나는 혼자 대기실에 내렸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한 바람에 대기실에 있는 피아노로 여유 있게 연습할 수 있었다. 선생님과 다른 공연자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대기실에서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간단하게 먹었다. 다들 두 개를 다 먹었지만 나는 하나만 먹고 남겼다.

"시간이 됐네요. 가볼까요." 



가족을 비롯 관객들이 죽 앉아있는 것을 보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선생님이 나 말고 또 한 명의 학생과 포핸즈 곡을 마친 후,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내게 와 귀띔하셨다.

"앰프가 바로 뒤에 있어서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네요. 너무 놀라지 마세요."


너무 놀랐다.

앰프한테 잡아먹히는 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연주자 바로 뒤에 설치된 앰프 덕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이런 세심한 자리 배치라니, 고오-맙습니다?

엄청난 음량에 압도된 동시에 소리의 이질감도 큰 장벽이었다. 이 소리가 진정, 내가 치고 있는 소리가 맞는 걸까. 귀를 의심했고 동공은 요동쳤다. 이래서 리허설이 필요한 거구나.

어쩌랴. 이미 순서는 시작되었다.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단이 났, 아니 일은 벌어졌고, 흘러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관객이 눈에 들어왔다.

평생을, 앞이 막힌 업라이트 피아노로만 연습해 왔다. 학원에서든, 우리집에서든 독방 연습이 전부였다. 앞에 뭐가 없이 이토록 훤하게 뚫린 공간에서의 연주라니. 유튜브로 피아노 연주 영상 감상을 즐겼고 더러는 실제 공연도 보러 다녔지만, 내가 보고 상상한 무대라면 그랜드 피아노를 놓고 연주자는 마치 관객과 내외하듯 옆태를 보이며 연주하는 이 흔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INFP는 '조용한 관종'이라들 한다. 기본적으로 은근한 관심을 원하면서 공공연하게 주목받으면 못 견디는 소심자. 초록초록한 너른 잔디밭에 단출한 전자키보드를 사이에 두고 관객들과 마주한 여기 대문자 INPF 연주자는, 지금 몹시 견디기 힘들다. 마주한 게 아니라 대치한 기분이랄까. 아니다, 대치하기에 지금 나는 너무 쭈굴하다.

포핸즈 곡들은 선생님이 작은 미스들을 커버쳐주는 활약을 하신 덕에 그럭저럭 마쳤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홀로 남겨졌다.

빛이, 나는, 솔로~ 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나 내 작디작은 심장은 튀어나갈 듯 미쳐 날뛰고 있다. 갑작시리 외로움을 느낀다.


페달을 찾으며 연주를 준비한다. 으음? 페달 위치가 이상하다. 페달은 피아노의 오른발 쪽에 달려있는 게 보통인데 이 망할 친구는 어째서인지 페달이 왼쪽에 붙어 있다? 내가 왼손잡이도 아니며, 이미 오른발에 익숙해져 있는 페달질을 '비록 낯설지만 왼발 해 보지' 하며 유연하게 대처할 줄나는 모른다. 왼쪽에 붙은 페달을 오른발로 눌러 밟느라 어쩔 수 없이 몸이 조금 꼬아졌다. 다소 우스꽝스럽고 어색한 자세로 솔로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은 괜찮았다. 내심 불안해던 부분은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그런데 웬걸, 완벽하게 연습되었다고 걱정하지 않은 부분에서 연신 실수가 나오는 게 아닌가. 예상 밖의 상황에 또 당황하고 만다. 

보면대에 악보가 떡하니 펼쳐 있는데 왜 콩나물은 보이지를 않니. 악보를 넘기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세 장을 이어 붙인 악보였다. BTS의 얼굴이 새겨진, 아끼는 마스킹 테이프로 정성껏 작업한 이 에미, 아니 아미는, 그러나 슬프게도 너희의 얼굴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악보를 놓고 치는 연주라도 암보가 된 상태가  대부분이다.  암보는 반복된 연습으로 자연히 얻어지는 결과이니, 실전에서 연주를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이미 절로 외울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악보를 놓는 것은 심리적인 면이 크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외우다시피 한 것도 신나게 까먹고, 안전빵으로 놓은 악보는 보이지도 않는다.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하이라이트에서 같은 부분을 세 번이나 틀리고 나니 내 머릿속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의 카오스. 친절한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 준다.



망했다는 생각을 하니 멋쩍게 헛웃음이 나며, 오히려 편해졌던 건지 모르겠다. 그때부터는 끝까지 연주를 마쳤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마지막 순서로 이어진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며 애꿎은 하늘만 그리 올려다보았더랬다.

오늘따라 어쩜 하늘은 그리 파란지, 캠퍼스 풍경은 어쩜 그리 근사한지. 처음 듣는 쇼팽 <마주르카>의 선율을 또 뭐 그리 아름다운지. 모든 게 소박하게 예쁘고 완벽하여서 슬펐다.


 





이틀 후에야 연주 영상과 그날의 사진을 보았다. 특히 나의 연주 영상을 흐린 눈으로나마 볼 수 있었는데, 그 새 아물었나 보았다. 자책하고 좌절했던 기억에 비해서는  낫, 그 정도는 아니었네, 싶은 생각하고 있다. 역시 시간이 필요하.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영상과 사진을 훑다 보니 당시에는 알아채지 못한 감동 포인트를 두 개나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연주한 솔로곡은 처음에는 잔잔하고 느리게 시작하고 도입부를 지나면 갑자기 리드미컬하게 빨라지는 재즈풍의 곡이다. 영상 속에서 그 부분에 관객들의 손뼉 소리가 들렸다.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는 소리였다. 물론 그때의 나는 그분들이 즐기려지 말지, 들렸을 리 만무하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점점 더 빨리 치며 내빼기 바빴. 실수 연발인 초보 연주자를 격려해 주려는 마음이 느껴져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다 또 발견한 것은 사진에 잡힌 관객석의 아이. 사마씨가 멀리서 찍은 바람에 다른 관객들 사이에 앉은 우리 아이 셋이 면봉처럼 보였다. 귀여운 모습을 자세히 보려고 손가락으로 확대, 확대하다 멈칫했다. 확대된 첫째의 모습을 보고 본격적으로 왈칵 터져버렸다. 눈은 엄마에게 고정한 채였고, 눈매는 살짝 미소가 지어져 있었으며, 응원을 가득 담아 보내는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애틋하고 따스했다. 엄마가 아이를 바라볼 때 그런 얼굴일 것 같은 표정을, 나는 아이에게서 받았다.






기대했고 준비했는데 잘 해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에 매몰되었었다.

주변에는, 믿어주고 이끌어준 선생님과, 여유 있게 보아준 성숙한 관객,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퍼부어주는 내 가족이 있는데.

그리고 무섭지만 우야든동 겪어낸 나도 있는데.




누가 보면 콩쿠르나 독주회 후기라도 되는 줄 알 것이다. 호호.

아닌 게 아니라 마치고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나만 꽃다발을 안고 있어 꽤 우습다. 우리 가족에게 받은 꽃다발이니 북 치고 장구 치는 상황이다. 좀 오버인가. 그러나 가볍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기대도, 노력도, 실망도 모든 게 진심이기에 가벼울 수 없다. '마흔 넘어 가지는 취미'라는 것은 때론 인생을 바꾸기도 하니.

첫 연주 영상은 그 소중함의 무게만큼이나 깊이 넣어 둘 생각이다.

훗날 찬란한  after를 위한 before 자료로 빛을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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