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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Nov 24. 2023

무교인 내가  코인노래방에서 찬송가를 부른 이유



<브런치 프로젝트> 1,2기의 모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모임을 앞둔 그녀들의 들뜬 담화에 대하여는 앞선 글에서 다룬 바 있다.


https://brunch.co.kr/@msh7682/43



물밑에서 부산스러운 우리 1기 단톡방에 제안이 들어왔다. 그날 모임에서 1, 2기가 함께 서프라이즈로 선생님께 노래를 불러드리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곡명은 '당신을 향한 노래'.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었다. 링크를 타고 가서 들어보았다.

음음~~ 나나나~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응? 찬송가...?

의아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이미 단톡방에서는, '이 곡은 ccm이라 기독교가 아닌 사람들은 거부감 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조심스럽게 동의하는 의견들과, 다른 곡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어진 여러 의견 중에는, '2기가 주도하여 아이디어를 내고 곡을 선정하고 우리에게 손을 내민 것이니 그것을 뒤집기도 뭣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에 여러 작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그 모임에는 수많은 인원이 함께하니, 대세에 따르되 노래를 잘 모르거나 하고 싶지 않으면 립싱크를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한 마디로 스무스하게 묻어가도 그만이다. 게다가 서프라이즈의 주인공인 선생님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하니 많은 이들이 더욱 수긍을 했다.


겸손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의견에도 귀 기울일 줄 안다. 그렇지만 본질을 잃지 않고 전체에 스며들 줄도 안다. 톡방의 대화를 지켜보며 나는 이 안에 몸 담고 있음이 새삼 뿌듯해졌다.

소속이 정체성을 보여줄 때가 있다.

'태어나 보니 가족'이라든지, 너무 어릴 때 선택했으며 그 소속 인원이 '불특정다수'에 가깝다시피 한 '직장'이라는 거대한 조직은 내가 이제와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이니 논외로 한다. 다만 '그 외의 나의 소속'은 허투루 혹은 되는 대로 둘 것이 아니다. 소중한 내 인생을 위해 두드리고 거르고 골라야 할 필요가 있음을 살아가며 또렷이 느낀다. 분명하고 다행인 사실은, 지금 이 소속 안에서 나는 긴장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이다. 이들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는 한, 나도 그들처럼 깊은 사람이라는, 그들과 더불어 명랑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건전하지만 무겁지 않은 토론의 결과에 따라 움직이고 싶어졌다.

어디로? 코노, 코인 노래방으로.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ccm'이라는 음악'을 듣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얼핏 알았지만 관심 없었다. 세상에는 아름답고 근사한 음악이 넘쳐나니까,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 노래에 기울일 마음도, 필요도 없었다.

음, 근데 머선 일? 자꾸 들으니 좋다야? 멜로디 라인이 세련되고 따스하네?

코인 노래방으로 향하는 길에 음원을 반복 재생해 들었다. 타고난 음악 감각으로 곧 흥얼거리게 되었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은경쌤께서)~ 바라보시며~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뭐를? 브런치프젝을, 얘들아를~~) (*개인적으로 이 부분 좋음)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크게 들숨 마시고 준비) 내가 너를(고음 발사) 사랑하노라~(*얘들아 전체 오열각) (선생님 등 뒤로 날개 돋아나며 사방으로 빛이 고르게 뻗침 효과)

사랑해요~ 축~~해요~ (자, 준비. 장렬하게 고음 질러)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사랑을 드~려요~ "



종교가 달라 뭣하다면 내 멋대로 대체하면 될지니. 무교인 나는 '하나님' 대신, 나의 하나님 '은경쌤'으로 유연하게 음운과 운율을 맞춰본다.

어느 곳에 크레셴도(점점 세게)와 데크레셴도를 주어야 할지, 어느 부분에서 어떤 감정으로 표현해야 할지, 눈물은 어드메서 터질지 정도가 얼추 견적이 나왔다.

준비가 되었다.




코인노래방에 들어서니 '무인으로 운영하는 시간입니다'라는 안내가 붙어있다. 주인도 없는데 손님도 없다. 왠지 기분이 좀 그렇다. 기분이, 너무 좋다.

단 돈 몇 천 원으로 전세 냈다. 이래 봬도 고음불가, 감성충만 내 노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생각에 조금 흥분된다.

제목으로 검색하니 한 곡이 조회된다. 시작 버튼을 누른다. 응? 반주가 왠지 낯설다. 단톡방에서 공유되어 내가 들은 곡은 흥겨운 동요 버전이었는데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는 반주는 잔잔한 발라드며, 배경으로 깔리는 영상은 교복 차림의 십 대 남녀 학생의 풋풋한 로맨스다. 머릿속으로 그린 것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역시 특유의 음악적 감각으로 금세 적응하고 불러본다.



                                                                            


아...

어려운 노래인 건가, 이 집 에코가 약한 것인가.




 


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MBTI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직장에서도 역시 화젯거리였다. 옆자리 후배가 물었다.

"주사님은 MBTI가 뭐예요?"

"나? INFP."

"아, 그거죠? 자신만의 신념이 뚜렷하고 가치관이 독특한 사람!"

그녀는 딱 맞췄다는 듯 신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부정하기에, 나는 적잖이 그런 사람이다.



종교도, 정치도 가치관과 신념의 범위라고 한다면 주저할 것 없이 떠오르는 각각의 일화가 있다.



대학교 3학년 때 다른 학교로 편입했다. 원하는 학과와 점수가 맞아떨어지는 학교에 지원하기에 급급했지, 그 학교가 기독교 학교인지 어쩐 지는 몰랐다. 기독교 학교답게 '채플'이라고 하는 필수 교양 수업이 있었다. 교수님의 말씀은 목사님의 그것처럼 들렸고, 무대에 함께하는 학생들이 부르는 찬송가는 비기독교인에게는 생소하고 다소 거부감도 드는 게 솔직한 인상이었다. 1학점짜리인가 0.5학점짜리인가에 불과하며 주 1회 한두 시간만 버티면 되는 거였음에도 당시 나는 참으로 뾰족하고 모가 난 아이여서, 싫다 생각하는 건 하지를 않았다. 내가 이 학교에 온 것은 원하는 학과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인데 왜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하지?라고 속으로 따졌다. 진짜 이유를 알려는 노력은 배제한 게으른 합리화였는지도 모르고.

매일 잤다. 처음에는 양심상 졸다가 나중에는 엎드려 잤다. 그러다가, 안 갔다. 학과 점수는 제법 잘 받았으면서 채플은 결국 N. 패스하지 못했다.

내가 가치를 둔 소수의 것에만 열중을 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쳐다도 보지 않는, 참으로 좁은 시야와 지독한 편식이었다.




아빠가 퇴직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고향에서 지역 의원으로의 출마를 선언하셨다. 엄마로부터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당혹스러웠다. 아빠가? (엄마도 아니고?)

내가 아빠에게 진정성 있는 응원을 보내지 못한 이유는 여럿 있었다. 여기에 또한 나의 가치관이 개입되어 있다.

비슷한 인구와 규모의 다른 지역에서 공무원이 된 나는 지역의원, 특히 아빠가 출마하려는 고향이나 내가 일하는 곳처럼 작은 지역 군의원에 대하여, 특히 그들의 존재와 역할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는 중이었다. 선량한 내 아빠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만, 우리 아빠가 앞장서서 자신이 속한 조직의 병폐를 뜯어고치며 선구자가 되리라 기대할 수 없는 마음은 별개였다.

더 크고도 힘든 이유는 정당이었다. 본가가에 있을 때 아빠와의 유일한 트러블은 정치였다. 그렇다고 정치 이야기를 활발히 나눈다든지, 아예 으르렁거리고 싸운다던지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다만 아빠는 특정 정치 성향의 티브이 채널을 그렇게 틀어놓으셨는데,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현대사에 관심이 많고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을 읽고 자랐으며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금방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자극적으로 떠들어대고 반대 당을 비상식적으로 비난하는 그 채널의 '소음'을 견디기 힘들었어서,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얼른 달려가 끄거나, 이거 안 보면 안 되냐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빠의 딸이다. 공가를 내고 가족과 함께 선거 운동을 도왔다. 업무에 임하는 자세로, 어쩌면 그보다 더 '기계적으로' 열심히 했다. 선거 기간 동안 영혼은 잠시 내려두고 뛰어다녔다.

주민들에게 후보를 찍어주세요, 한 표를 부탁합니다, 굽신거리며 다니는 게 힘든 게 아니었다. 새벽부터 일몰까지 쉬지 않고 뛰어다니느라 땀에 절어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괴로웠던 건, 아빠가 공천받은 당의 선거 잠마를 입고, 그 당의 일원으로서 지지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도시에서는 후보 그 인물이나 공약을 따져 투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지방은 안 그렇다. 군의원에 출마한 후보자는 기억하기도 힘들 만큼 수가 많고, 주민들은 누가 누가 나왔는지 다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당을 보고 찍는다. 빨간 점퍼를 입은 우리에게 대체로 어르신들은 우호적이었지만 부모님 집에 다니러 온 자녀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 온도차가 극명할 수밖에 없던 격변의 시기였다.


내 사랑하는 아빠를 응원하지만 선거의 승리를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는 자신이 혼란스러웠다. 신념과 행위를 별개로 두는 게 가능한 걸까,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걸까, 고민한 때였다. 그 때 선거 운동에 열심을 다했던 심정은, 시간의 끝을 보고 달린 것이나 다름 없었음을 고백한다.

아빠가 당선되지 않았을 때 나는 아빠가 낙심하지 않을지 염려하면서도 한편 다행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같기는 무슨. 그때 나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종교 모임이 아닌데 스승님 헌정곡으로 찬송가를? 잠시 의아했지만, 또 그다지 힘들이지 않게 받아들였다.

노래 선물을 받을 상대의 기쁨만 생각하니 문턱이 낮아지다 못해 허물어졌고, 인생 처음 듣고 부르는 ccm인지 찬송가인지에 나는 퍽이나 매력을 느끼고 말았다.

무턱대고 싫다 하며 나만의 가치관이다, 신념이다 주장한 건 아니었을까. 내가 보고 아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그것만이 옳은 것처럼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떠올려본다.


본받고 싶은 좋은 사람들의 기운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낯선 노래를 불러제끼며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 미안했어요. 그래도 아빠 닮아서 나 음감은 좀 쏴라있네."



※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문박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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