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행
택시를 타고 나가르코트를 가는 길에 저 멀리 카트만두가 보였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도시가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는데 산 위로 올라갈수록 별이 내 밑에 있는 거처럼 느껴졌다. 아름답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겠지만 무섭도록 빠르게 올라가는 택시와 우중충한 날씨 탓에 오히려 멸망 직전의 모습 같았다.
나가르코트는 해발 2,200m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여행객들은 서늘한 기후와 멋진 풍경을 보러 온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서 내리자마자 오랜만에 시원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상쾌한 기분도 잠시 괜스레 으스스 한 시내 분위기에 서둘러 호텔로 갔다. 중심부를 벗어나니 가로등 하나 없어 휴대폰 플래시를 이용해야 했다.
나가르코트에서의 일정은 딱 하나다. 설산 보기. 나가르코트 어디에서든 설산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네팔 여행을 10월 초는 아직 우기이고, 우기에는 구름이 많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2박 3일 동안 한 번쯤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는 않았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호텔 옥상에 가보았다. 아직 6시도 되지 않았는데 헛된 기대로 가득한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있었다. 아쉽게도 구름이 많아 저 멀리 설산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이 멋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치 구름 바닷속에 주변에 있는 산이 섬처럼 있는 거 같았다. 시간이 지나니 구름 틈을 타고 햇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이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면 비현실적이라고 말했을 거 같은 풍경이었다.
오늘은 트래킹 코스를 가볍게 걷기로 했다. 아침부터 많았던 구름은 더 많아지더니 아예 시야를 가려버려 바로 앞밖에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길도 점점 질어지고 풀숲을 가로질러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비수기이다 보니 관리를 하지 않은 듯했다.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아 뒤돌아가는데 일행이 내 신발에 벌레가 붙어 있다고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니 거머리였다. 내 신발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꼿꼿이 서 있었다. 놀라 무작정 신발을 벗어버렸는데 일행이 용감하게도 거머리를 때 주었다. 이번 여행에서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만나버리다니. 혼자가 아니었다면 신발 한 짝을 나가르코트에 버리고 올 뻔했다.
풍경은 구름 때문에 안 보이지 트래킹 길은 도저히 갈 수가 없지 할 일이 없어진 우리는 시내를 어슬렁 걸어 다녔다. 나가르코트의 시내는 치트완 보다도 작았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익숙해질 즈음 누군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호기심이 많은 네팔 사람인 Raj는 한국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알고 보니 동생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고, 첫째 딸을 한국에 유학 보내고 싶어 했다. 우리는 Raj가 내온 차를 마시며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나가르코트에 있는 내내 틈만 나면 저 너머를 바라봤지만 한 번도 설산을 보지 못했다. 우기의 나가르코트는 구름으로 가득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뜻밖의 대화들이 더 반가웠고 평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