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로스터리 커피와 '서울숲 콜렉트' 블렌드.
쉬운 어떤 것을 만든다는 건, 꼭 필요한 기본만 남기는 작업이다. 우리는 그 생각을 커피에도 옮겨보기로 했다. 원두는 카페의 기본이다. 하지만 기본일수록 어렵다. 같은 생두라도 누가, 어디서,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그 기본을 조금 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누가,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원두를 볶았는지 찾아보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맛만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온도와 철학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커피는 향이 좋았지만 우리 공간과 어울리지 않았고, 어떤 커피는 밸런스가 좋았지만 마음이 닿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원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 볶는 사람들의 생각을 고르고있었다.
서울이 아닌 곳, 각자의 방식으로 커피 볶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도시마다 다양한 로스터리가 있었고, 커피에 담긴 생각도 다양했다. 우리는 그 다름을 한 잔씩 모아, 콜렉트의 다양한 계절을 만들었다.
“이번엔 어디 로스터리로 가볼까?”
계절이 끝날 때 시작하는 질문이었고, 새로운 계절을 시작하는 질문이었다.
처음엔 고소하고 부드러운 커피로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 그대로 ‘익숙하고, 쉬운 커피’. 그다음엔 조금 낯설지만, 한 번쯤 이야기할 수 있는 맛 '약간의 산미'를 선택했다.
“이건 어디서 온 커피예요?"
“네, 이번엔 대구에서 온 커피예요."
콜렉트는 바다 건너 멀리 있는 나라가 아닌 쉽게 찾을 수 있는 지역 로스터리를 먼저 이야기했다. 시간이 흐르며 서울숲 손님들의 입맛도 달라졌다. 커피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우리는 조금 더 깊은 커피를 소개하기도 했다.
커피와 함께 건넨 건 작은 카드 한 장이었다. 원두의 이름, 로스팅한 카페 그리고 한 줄의 메모가 담겨있었다.
‘밝은 톤의 고소함과 카카오의 단맛.’ 그 정도의 설명이 콜렉트가 소개하는 커피의 언어였다. 가게 안에서 우리가 커피를 설명하는 방식도 그 카드처럼 단순했다. 견과류의 고소함인지, 과일류의 산미인지 정도만 덧붙였다. 설명이 짧아질수록, 그 속에 손님들은 각자의 경험을 이어 붙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찾는 커피의 기준은 조금씩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고소함과 산미의 균형, 한 모금 뒤에 남는 향의 길이 등 미세한 차이를 두고 다음 계절을 위한 커피를 고민하고 있었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주변 카페 사장님들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좋은 커피’ 보다 서울숲 분위기 그리고 우리가 쌓아온 시간에 맞는 커피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향점이 구체적으로 변할 수록 누군가의 원두로 그 지향점을 대신할 수 없었다. 서울숲의 공기처럼 밝고, 고소함 뒤에 은은한 단맛이 남는 커피 '서울숲 콜렉트 블렌드'는 수많은 계절의 향을 모은 결과였고, 우리가 지향한 ‘쉬운 커피’의 다른 이름이었다. 마지막을 예정하고 만든 커피는 아니었지만 '서울숲 콜렉트 블렌드'는 결국 콜렉트의 마지막 원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