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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파크 Nov 09. 2022

[당신의교도관]5. 이 또한 주님의 뜻이겠지요?

우리 주님을 위해, 새로운 삶을 위해, 희망을 위해 노래합시다. 아멘!

  접견(면회)이 예약된 수용자를 접견실로 데려가는 일을 하다보면 교도소의 이곳저곳을 드나들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수용자들은 접견이 잡혀있다고 하면 기대감에 부푼 표정을 짓는다.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이곳에서 유일하게 가족이나 친구, 소중한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접견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수용동 철문을 열고 자 접견 갑시다,라고 말하면 대기 중인 수용자는 

예 교도관님, 대답하며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종종 걸음으로 달려 온다.

혹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미결 수용자들은 긴장한 얼굴로 부장님, 혹시 수사재판인가요?라며 묻는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이들에게 검찰 수사관들이 찾아오는 그 시간은 부담이 되나 보다.

줄 맞춰 걷고 있는 수용자들을 뒤에서 보다보면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오리 무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대강당에서 종교 집회에 참석 중인 수용자를 데려올 차례였다.

문을 열자 가로로 긴 의자들로 빼곡히 채워진 널찍한 대강당 중앙 무대에 서있는 목사님과 좌우로 늘어선 악기 연주자들, 의자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용자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경건한 배경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고 목사님은 슬퍼 보이기도 하고, 엄숙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강건해보이기도 하는 교도소 종교 행사에 어울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용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강당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스러운 분위기에 나는 자뭇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수용자를 꺼내 바로 나가야 했으므로 빠르게 그들 사이를 지나 전광판 조절기가 있는 벽으로 향했다.


 빠른 걸음으로 수용자들을 지나며 몇몇의 얼굴을 보았다.

평온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감은 수용자, 두 손을 모은 채 미간을 찌뿌리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수용자, 거의 구겨진 얼굴을 두 손에 뭍고 동요하는 수용자, 각기 다른 모습으로 어딘가에 계신 주님을 찾고 있었다.

일부는 목사님의 연설이 잠시 멈출 때마다 아멘, 아멘, 거의 울먹이듯 읊조렸다.

그 얼굴이 너무나도 진지하여 나도 모르게 아멘을 같이 외칠 뻔 했다.

강당의 노르스름한 조명이 수용자들의 굴곡진 얼굴에 닿아 부서지며 수용자들의 어깨께에서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기독교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총을 받고 있는 중인 건가?

영화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처럼 새삶을 살고 싶은 걸까? 

영화 <<밀양>>의 살인범처럼 예수님께 구원을 받고 밀려오는 충만함에 감격하고 있는 중일까?


 강당 한켠의 기계에 수용자 번호를 입력하자 무대 위 전광판 모니터에 수용자 번호가 나타나며 깜빡깜빡 거렸다. 

그것을 보고 집회 중인 수용자가 접견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전광판을 통해 부른 수용자가 계속해서 오지않자 수용자를 찾으러 나섰다. 


 내가 발걸음을 떼자마자 목사님은 연설을 마쳤고 이내 찬송가의 전주가 흘러 나왔다.

목사님이 안정된 음색으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중간에 음악이 뚝 끊어졌다. 

음향오류였다.

1,2 초간 정적이 흘렀다.


xxxx번! xxxx번!


갑작스러운 정적 속에 오직 나만 수용자 번호를 외치며 작은 소요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목사님이 차분하고 유려한 목소리로 당혹감이 깃든 침묵을 걷어 냈다.


 ......주님께서 제가 찬송을 다시 하길 원하시나 봅니다.

 이 또한 주님의 뜻이겠지요, 여러분?


그러자 수용자들은 혀뿌리보다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감동을 느끼며 외쳤다.


아멘! 아멘! 아멘!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 중.


몇몇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선창했다

그러자 다른 수용자들이 시간 차를 두고 아멘을 외쳤고, 곧이어 아멘의 물결이 이어졌다.


이윽고 내가 찾던 수용자가 휠체어를 돌려 나를 향해 다가왔다. 

다시 시작된 찬송가가 울려퍼지고, 몇몇 어린 양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장면을 뒤로 한 채 나는 호다닥 휠체어를 밀며 대강당을 빠져 나왔다.

뭐 이런 코미디가 다 있나, 소리를 죽이고 마스크 속에서 입으로만 웃었다.


이곳엔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많다. 

예수님은 만인에게 사랑을 주시는 분이니까 이들도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나 보다.


 접견 중인 내용을 확인하는 것도 교도관의 업무다.

또 다른 범죄를 공모하고 있지는 않은지, 거짓 사실을 유포하고 있지는 않는지 등 수용질서와 교정교화를 흐리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어머니와 접견 중인 한 젊은 수용자의 대화를 잠시 감청했는데 평범한 사람들처럼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건강을 챙기라고 말하고 있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는 충격적인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남겨진 어머니의 삶을 다룬다.

어머니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알고 지내던 이들은 물론 모르는 이들에게 언어적, 물리적 돌팔매 질을 당하고, 운영하던 사업도 망한다. 

마치 자신이 죄 지은 사람인듯 좁은 방 한칸에서 숨어지내던 여자는 용기를 갖고 새 직장에 취업하고 아들에게 면회 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한 인간의 범죄는 피해자는 물론이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비틀고 망가뜨린다.

접견 중인 어머니가 네가 정신차려야 내가 살지,라고 말했던 것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은 오늘도 교도소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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