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가방을 싸며

by 향긋한

"산후 우울증 그거 사람 잡는다던데, 조심해 알겠지?"

"산후 우울증 때문에 자기가 낳은 아기도 안 예뻐 보인다더라"


주변의 우려와 걱정을 듣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도대체 산후 우울증이 뭐길래 이렇게 야단들이지?'

하고 말이죠.

아직 출산 가방은 싸지도 않았고

아기도 뱃속에서 잘 놀고 있는데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만 하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조금씩

출산 이후의 상황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어요.


먼 곳에 살고 계시는

친정 엄마 없이

혼자 육아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아기를 보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아기를 만나는 설렘 대신

두려움으로 아기를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산후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어요.


아기가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두 가지였어요.

'시간' '장소'

아기와 대부분의 시간을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집에서 아기와 함께 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하나 둘 생각해 보기 시작했어요.

신랑이 퇴근하기 전까지

혼자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하루에 단 1시간 만이라도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이런 저의 계획은 출산 후

친정 엄마와 모자동실 병원에서

아기를 돌보며 와장창 산산조각 났지만요.


갓 태어난 아기는 상상 이상으로

자주 깨고, 자주 울었어요.

1시간 넘게 자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고

재우면 깨서 울고,

또 재우면 깨서 울기를 반복했어요.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육아 헬이구나'하고

총알 한 발 없이 전쟁터에 떠밀려 나간 기분이었죠.


산후조리 기간이 끝나고

온전히 혼자서 아기를 돌보게 되었을 때,

아이의 울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온종일 아이의 울음에 반응하며 보내는 하루하루는

초조함과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육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운맛이었어요.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잠깐 집 앞에 나가

금방 사 오던 소소한 일상도

이젠 쉽지 않은 일이 되었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없다는 생각에

어디도 자유롭게 외출 할 수 없다는 슬픔에

점점 가슴이 답답해지고

누군가 뒤에서 급히 쫓아오는 것처럼

조급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신랑에게 육아가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것으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기와 함께 하고 있는 시간에서도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아기의 울음에 반응하느라

모든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방법.


아기가 모유를 먹고 잠든

짧은 시간 동안

잠든 아기 옆에서

책을 읽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혹여 작은 소음에 깨어날 수 있으니

모유 수유하기 전,

아기가 잠드는 침대 옆에

읽고 싶은 책들을 두고

아기가 잠들면 바로 책을 펼쳐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딱 15분만 전공서적을 읽어보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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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잠들면

수유 쿠션 위에 책을 올려 두고

수유 쿠션을 책상 삼아

전공 서적 책을 읽었어요.


육아와 전혀 관련 없는

책 읽는 15분은

마음에 날개를 달아 준 것 처럼

자유롭게 훨훨 나는 기분이었어요.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지 않아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어제와 달라진 것 하나 없는 환경에서

작은 15분으로 하루의 주도권을

되찾은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모유를 먹고

곤히 잠든 아이 옆에서

15분 동안 전공서적 3장을 읽으며

하루에 단 15분 만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면

언제, 어디에서도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15분의 보물을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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