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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스토리 Feb 26. 2019

002. 그게 무엇이든 처음은 항상 설렌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가슴이 시리도록 뛰었다.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저 멀리 바다를 보았다. 여기서 보는 바다는 동해는 아니었지만, 물은 어디든 흐르니까, 어쩜 한 번쯤 마주했을 바다일지도 모르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공원은 휑했다. 흐린 하늘과 바다만이 나를 반겼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익숙한 짠내가 났다. 



‘러시아 바다도 다를 게 없군.’



이른 아침 나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한 바퀴를 뛸 셈이었다. 

다행히 기차역 근처 숙소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해양공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고, 그 뒤로 이어진 아름다운 아르바트 골목을 지나 소비에트 전사 광장까지, 열심히 달렸다. 


유독 동상이나, 기념비, 광장이 눈에 많이 띄었다. 공원의 휴식 개념과는 확실히 다른, 모임의 소집 또는 시위 느낌이 물씬 나는 광장들, 확실히 사회주의 여서 그런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에트 광장에서는 블로디 보스톡 항이 그대로 보여서 어제 저기로 들어왔네 라고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중심가만 본다면 충분히 걸어 다닐 만한 거리여서, 나는 아침 조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여행 1일 차다운 것을 하기로 했다. 걷기, 보기, 먹기, 사진 찍기와 같은 거 말이다. 사회주의 나라에서 어쩐지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버거킹에 가서 간단한 점심을 먹는데, 아이러니했다. 그 흔한 맥도널드는 아직 들어오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금각교(골든브리지)가 보인다는 독수리 전망대로 향하기로 했다. 



 ‘이 길이 맞을까. 어떻게 전망 포인트에 가는데 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지.?’

지도를 보고 가는 길은 어쩐지 험하고 공사현장도 많았다.


 여행은, 아니 인생은 쉬운 길로만 인도하지 않는다. 


벌써 깨닫게 되는 진리. 쌩쌩 달리는 큰길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오르막길은 왜 끝이 없는지. 걷는 것에 자신이 있는 나였지만, 슬슬 지치기 시작할 무렵, 탁 트인 전망대에 도착했다. 



높은 곳에 있으니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전의 흐린 날씨에서 이제는 청명한 하늘이, 햇살이 바다로 떨어져 반짝이는 황금빛 블라디보스토크 전경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저 바다가 금각만이고, 다리 이름이 금각교인가 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블라디보스토크 작은 시내의 위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멀리 계속 보면 대한민국도 있을 텐데. 내 조국 나의 사랑하는 나라도 있을 텐데..’



독수리 전망대에서 내려올 때는 푸니쿨라를 이용했다. 푸니쿨라라는 용어도 낯선데, 글로 설명하자면, 경사면을 운행하는 한 칸의 기차 같은 느낌이려나. 이상하리만치 놀이공원에 온 듯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푸니쿨라에 탑승했다. 힘들게 올라 간 전망대에서 탁 트인 전망에 기분이 환기되고, 내려갈 때는 이렇게 편하게 푸니쿨라로 한 번에 슈웅 가니, 더 즐겁고 재미있었으리라. 


인생 거참 별거 없다.
힘든 것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될 때 이토록 신이 나다니 말이다. 



짧은 사색 후 어느덧 도착한 푸니쿨라의 아랫동네에는 잘 조경된 공원과 푸른 녹지에 태평양함대 군사 역사박물관과 기념비 등이 있었다. 사실 군에 대해서 조금 더 지식이 있었다면, 박물관 구경도 재미있었을 텐데, 내 관심사와 떨어져 있어서 그냥 걷기로 했다. 어제의 쓸쓸함은 어느새 설렘으로 바뀌었고, 한참을 걸어가니, 꺼지지 않는 불꽃도 보였다. 러시아의 극동 군사 본부여서 인지, 곳곳에 이렇게 군사적인 의미를 갖는 개선문, 기념비, 함대들을 보니 불과 70년 전만 해도 전쟁통이었을, 오늘은 '평화로운' 블라디보스토크를 걷는 기분이 남달랐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찾은 아르바트 골목에는 한국 해군사관생도들이 상당수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오늘 막 도착한 것 같은 이들에게 블라디보스토크는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해사에 다니는 친구가 있어 아주 오래전 진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지금 바로 그때의 느낌을 받았다. 어쩐지 블라디보스토크가 더 친근해졌다. 아르바트 거리는 깔끔했고, 주위로 이쁜 상점들이 있어서 커피를 마시기도, 크레페를 먹기에도 좋았다. 어느덧 해는 어두워지고, 길을 따라 아침에 들렀던 해양공원에 가서 사슴고기 샤슬릭(러시아식 꼬치)과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면서 공원을 찾은 이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휑했던 아침의 공원과는 달리, 야경을 보려고 온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과 작은 놀이기구를 타려는 아이들 동반 가족들의 산책들이 이어졌다. 사랑을 속삭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양공원.



‘어쩜 사는 게 이렇게 똑같을까. 얼굴과 언어는 달라도,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구나. ‘



세계 일주를 하면서 점점 더 이러한 진리를 마주하겠지. 책으로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경험을 받아들이며 내일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것을 생각했다. 


어쩌면 누군가의 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는 횡단 열차는 꼬박 7일이 걸리고, 총 990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서사적인 철도 여정이다.


물론 나는 그중의 3분의 1쯤인 3646km를 달려서 울란우데까지만 가기로 했지만, 말이 3646km 지, 비행기가 아니라, 육로로 이 거리를 이동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 침을 한번 꼴깍 삼킬만한 어쩌면 '각오' 같은 것을 해야 하는 일 일지도 몰랐다. 



‘세상에,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50km로 치면, 8배나 되는 거리를 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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