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적인 표현 중에 이런 표현이 있잖아요. 어렸을 적 태산 같아 보이던 부모님의 뒷모습이 성인이 되면서부턴 한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는 표현이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못된 친구한테 한 대라도 맞고 집에 오는 날이면, 그 길로 엄마는 양 소매를 걷어붙이고 그 못된 친구에게 달려가 본때를 보여줬고, 가족들을 태우고 운전하다 난폭 운전 차량을 맞닥뜨리면 아빠는 운전자에게 성난 곰보다 사납게 호통을 쳤습니다.
한 때는 이들의 영웅적인 면모가 영원할 거라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이들과 동등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시간이 빨리 흘러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당연하게도 제 시간과 그들의 시간이 동등하게 흘러버렸어요. 마블 속 캐릭터에 비유하자면 늙지 않는 ‘토르’가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 그대로 늙어버린 ‘캡틴 아메리카’에 더 가까웠던 거예요.(어벤저스 ‘엔드게임’ 편 참고)
못된 친구에게 달려가 혼쭐을 내줬던 엄마의 관절은 이제 닳아버려 무언가를 짚지 않고서는 앉은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되었고, 난폭 운전 차량 주인을 향해 사납게 호통 쳤던 아빠의 성대는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해 밤마다 기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어요. 집에 들어오는 도어록 소리를 듣지 못해 가까이 가 인기척을 내지 않으면 놀라실 때가 많아졌고, 온갖 종류의 병원에 들어가는 비용은 늘어갔고, 또한 세금 고지서를 보는 뒷모습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무리 싸움 뒤 냉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제 방에 큰 벌레들이 등장할 때마다 한 달음에 달려와 퇴치해주며, 전구 수명이 닳으면 갈아주기도 하며, 세상이 유독 제게 잔인하게 군다고 여겨질 때마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든든한 집이 되어주십니다.
이 모든 걸 보고 있노라면 저는 이들을 한물 간 ‘슈퍼 히어로’보단 그냥 ‘부모’라고 부르고 싶어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