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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May 05. 2020

눈에 넣어도 안 아프지만 내어놓기엔 자랑스럽지 못한 딸

 발단은 최근 엄마와 작은 고모의 통화였습니다. 일상적인 얘기가 오가던 도중, 고모는 기습적으로 폭탄을 던지셨습니다. 


“그래, 나영이는 요즘 뭐하고 지내니?”


 첫 브런치 글에 적었듯이, 학기는 끝냈지만 졸업은 안 한 애매한 대학생 신분인 저에게 제 백수라이프는 꽤나 예민한 주제입니다. 고모는 바로 “취업은 아직 안 했지? 요즘 젊은이들 취업하기가 그렇게 힘들다더라. 젊은이들이 문제야 아주”라며 연속으로 폭탄을 던지셨어요. 


 요리하며 전화를 받았던지라 하필 스피커 폰을 틀어두셨고, 하필 그때 부엌에 나온 저에게 통화내용은 무방비로 노출됐고, 엄마는 급히 고무장갑을 벗고 스피커폰을 끄셨습니다. 표정은 노련한 중년 여배우처럼 아무런 일 없었던 척 혼신의 연기를 다하셨지만, 이어진 어설픈 화제 돌리기에 전 조용히 방에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젊은이들이 문제야’ 다음에 ‘아 그런데 형님, 요즘 큰 형님 댁에서 싱싱한 미나리를 얻어왔어요.’는 어울리는 대답이 아니었거든요. 


 엄마가 작정하고 절 상처주려 한 건 아니지만, 그 날은 하루 종일 엄마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 기침처럼 울컥울컥 치솟는 걸 참느라 힘들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것저것 도전해보는 딸이 단지 백수라는 이유로 자랑스럽지 못한 거냐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어린애도 아니고 다 커버린 저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줄 이유가 없었던 거예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그럴 이유를 만들어 드리지 못했던 거겠죠. 제 향후 계획을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나를 떳떳하게 여겨달라는 생각을 조금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자식 관계도 사람 간의 관계이기에 정답은 없겠지만, 제가 만약 부모 입장이라면 내 자식이 목표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해주면 더 잘 믿고 지지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저희 가족은 서로 터놓고 토론하며 대화하지 않기도 하고, 또 저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얘기하기엔 낯간지러운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진 혼자 조용히 하고 싶은 일을 하다 결과가 생길 때 그때서야 얘기하곤 했어요. 하지만 이번 어버이날을 노려 단기적인 계획이라도 제 계획을 말하는 자리를 가질까 해요. 대화가 많지 않은 집안이라 얘기하는 것도 날 잡아서 하게 되네요. 


 백수’라는 타이틀이 뭐길래 부족함 없이 사랑받는 제가 스스로를 부족하게 여기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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