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사랑하기
과연, 인생에 한 번인 결혼이라는 사건 앞에서는 약간의 과소비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워낙 짠돌이 기질이 있는 제게는 적당한 수준의 소비로 심리적인 마지노선이 있기는 했지요. 일단 열심히 살아온 우리에게 빡빡한 관광보다는 느긋한 휴양을 선물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럽은 패스하고 휴양지로. 몰디브는 너무 비싸고, 괌은 너무 흔하고, 그래! 하와이로 가기로 했죠. 호놀룰루가 위치한 오아후 섬이 주도인데, 그 외의 섬에는 추가비용이 들어가서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핑계는 이동시간이 아까워~였지만 내심은 짠돌짠돌...
이때가 아니면 언제 타보리! 과감하게 렌터카는 지붕 없는 무스탕 오픈카를 빌렸습니다. 호텔은 신혼여행이니까 평상시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할레쿨라니 5성급 호텔! 호텔 정말 예쁘더군요. 비싼 호텔은 다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호텔 조식도 정말 맛있었죠.
대신 식사는 조금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맛집, 멋진 레스토랑 이런 거 눈 딱 감고 패스. 적극적으로 데니스 식당을 애용했습니다. 무난한 맛과 20불 아래의 메뉴로 느끼한 미국의 맛을 확인했죠. 현지 맥도널드와 스타벅스도 빼놓을 수 없으니 곳곳을 누비며 다녔습니다.
그룹 투어가 아니라 개인이 직접 예약한 것들이라 원하는 장소만 딱 찍어서 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쇼핑도 자주 했는데, 프리미엄 아웃렛을 제외하면 메이시스 백화점, 월마트 등 일반적인 마트 쇼핑에 더 가까웠죠. 그래도 한국에서 보기 힘든 상품 구성에 이것저것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하와이에서는 멋진 풍경과 바다를 찍어야지~ 하며 작지만 알찬 오아후 섬을 돌아다녔습니다. 와이키키 해변은 물론이고 유명한 해변은 3곳 정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호텔이 워낙 아늑해서 호텔 해변과 수영장에서도 오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호텔 프런트 근처에는 현지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여러 가지 액티비티의 홍보 책자가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탐이 나는 건 루아우 디너 바비큐 파티였습니다. 하와이 전통 춤 공연도 보면서 해변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 거죠. 얼른 예약을 걸었습니다. 고래 관광은 별로 끌리지 않더군요.
드디어 루아우 디너파티 예약일 오후! 백 명이 넘는 커플들이 우르르 모여서 버스로 이동하고 백사장에 내렸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백인이라 조금 의아하긴 했어요. 일단 아시안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직 그녀와 나뿐. 아, 이젠 결혼했으니 아내와 나.
어디선가 봤던 춤. 여성들이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비키니 톱과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고 손을 물결처럼 흔드는 춤 있잖아요? 그거부터 시작해서 북을 치면서 흥겹게 날아다니고, 전쟁을 준비하는 비장한 춤까지. 정말 열광적인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사회자가 안내합니다.
“자~ 여기서 신혼여행 오신 분?”
우리 커플을 비롯해 50여 명의 손이 올라갑니다.
“축하합니다!!! 결혼 10주년에도 꼭 다시 오세요~~~”
우리는 반드시 10주년에 하와이를 오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럼 10주년으로 오신 분?”
10여 명이 손을 드네요.
“20주년으로 오신 분? 30주년으로 오신 분? 40주년으로 오신 분?”
20주년, 30주년에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지만 40주년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혹시, 50주년이나 그 이상 있습니까?”
설마~ 했는데 한 할아버지 할머니 커플이 손을 번쩍 듭니다! 우와~~~~~ 결혼 50주년이라니. 우리 부모님도 아직 결혼 35년 되셨는데 저기는 정말 대단하구먼! 게다가 마이크까지 받아서 말하는 걸 들어보니 그 커플은 50년 전에 하와이에 신혼여행을 왔었다고 하네요.
하와이에서 가장 감명 깊은 순간이었습니다. 50년을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꾸준하게 사랑을 하고 가정을 지켜온 그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 미국처럼 이혼이 흔한 나라에서 극히 보기 드문 커플이라 디너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셨습니다. 70대가 되어도 하와이 여행을 같이 할 건강까지!
그래 저렇게 사랑하자. 어렵고 화나고 아쉬운 순간들이 있겠지만, 저렇게 오래도록 사랑하자. 서로에게 찐 친구가 되어주자. 다시 다짐하는 우리 부부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